* CIA에서 10년 넘게 일했고 국가안보회의의 대변인을 역임한 네드 프라이스(Edward Price)가 이달 중순 CIA에 사표를 내며 워싱턴포스트에 보낸 글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칼럼 서두에 프라이스가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프라이스는 지난해 8월, 클린턴과 민주당에 총 5천 달러를 후원금으로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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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쯤 전의 일로 기억합니다. 저는 아버지께 중앙정보국, CIA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한 번 CIA는 영원한 CIA일 수밖에 없어. 괜찮겠니?”
아버지는 혹시나 제가 CIA에서 일하다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고 싶어도 그러기 쉽지 않을 정보기관의 속성을 언급하며 걱정하셨습니다. 저는 전혀 개의치 않았죠. 그때부터 이미 CIA는 제게 단순한 일자리 이상이었습니다. CIA에 들어가기 전부터 저는 이 일이 저의 천직이 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달 중순 사표를 내고 CIA를 나왔습니다. 공화당, 민주당을 불문하고 지난 두 정권 아래서는 겪지 않아도 됐던 내적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트럼프 정권을 위해 정보기관 직원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할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른 뒤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섣불리 내린 결정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대학생 때부터 CIA에서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국제관계학 전공을 살리면서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최적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을 시작한 뒤 저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다양한 문화권과 새로운 나라를 접하며 필요한 기술을 배웠고, 무엇보다 주어진 임무와 궁극적인 목적인 무엇인지를 항상 가슴에 새긴 채 일하는 자세를 익혔습니다. 저는 대테러 분석 전문가가 됐습니다. 실제로 전 세계를 누비며 테러 공격을 예방하고 저지하는 임무를 도왔습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둘 다 CIA의 분석과 조언을 대단히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밤을 새워가며 모으고 분석해 정리한 데이터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가 대통령에게 소개되고 작전을 세우거나 정책을 집행하는 데 밑거름이 될 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정보기관의 분석과 조언을 반영한 정책(Intelligence informing policy)은 백악관 안보 관련 정책의 근본 원칙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저는 특히 지난 3년 동안 국가안보회의(NSC, National Security Council)로 파견돼 일하면서 이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후보 시절부터 새로운 접근법을 암시해 왔습니다. 세 번째 대선 후보 토론에서 트럼프 당시 대통령 후보는 러시아 정부의 선거 관련 이메일 해킹 등 미국 선거 개입 의혹을 믿을 수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미국의 17개 정보기관과 관련 부처가 거의 이견 없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이를 그저 떠도는 뜬소문 쯤으로 취급하는 트럼프 후보의 태도는 믿기 어려운 장면이었습니다. 대통령 선거 유세 중에, 심지어 당선인 신분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은 2002년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오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CIA의 보고서를 줄곧 문제 삼았습니다. CIA가 여러 차례 해명하고 실수를 인정한 사안이자, 트럼프 본인이 당시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면서 정보기관의 분석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던 일입니다.
백악관에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 문제였습니다. 취임식 이튿날 대통령은 CIA 본부를 방문했습니다. 선거 기간 몇 차례 불거진 트럼프와 정보기관 사이의 마찰을 해소하고자 마련한 자리였겠지만, 이 자리를 망쳐버린 건 다름 아닌 트럼프 본인의 허세와 으름장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언한 연단 뒤에는 공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CIA 요원들의 명패가 있었습니다. 그런 자리에 서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정보기관 직원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자신을 촬영하는 카메라와 기자들을 향해 선거 유세 하듯 말을 이어갔습니다. 어제 취임식에 참가한 어마어마한 인파 보았냐는 자화자찬을 이어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에 당혹스러웠던 CIA 직원들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있든, 계속 같은 주장을 되풀이해 누군가를 끝내 속이려는 생각이든 한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가 대통령으로서 정보기관 직원들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공허한 자기 자랑에 열을 올리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과 그 뒤에 음지에서 묵묵히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 순직한 선배들의 모습이 너무 극명하게 대비돼 연설 내내 불편했습니다.
지난달 백악관이 지시한 국가안보회의 개편안을 확인한 직후, 저는 사표를 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앞서 제 파견 근무 기간을 마치고 CIA로 돌아간 상태였지만, 국가안보회의는 지난 3년 제 일터이기도 했죠. 개편안의 골자는 CIA 국장과 다른 정보기관장을 국가안보회의에서 제외하고, 대신 백악관 수석 고문인 스티븐 배넌이 회의에 배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공개적인 비판이 잇따랐지만, 백악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죠. “미국 우선주의”를 행동에 옮기기 위해 러시아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오랜 우방인 호주도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수 있는 게 미국 대통령의 권력이자 재량의 영역인데, 여기에 진실, 사실, 정보 운운하며 어깃장을 놓으려는 정보기관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티브 배넌과 스티븐 밀러 같은 백악관 참모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평생 정보기관에서 일해 온 이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 백악관 참모들이 정보기관의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건네기 전에 걸러내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저의 이번 결정이 저의 정치적 성향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공화당 행정부 아래서도 무한한 애국심과 자부심을 느끼며 일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백악관이 정보기관의 분석을 귀 기울여 듣고 신중히 검토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부시 대통령의 정책 가운데 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물론 있었습니다. 반대로 제가 열정적으로 일했던 프로그램을 오바마 행정부가 비판하며 서둘러 종료한 적도 여러 차례 있습니다. 정보기관 직원은 특히 업무와 관련된 사안에서 정치를 멀리하라고 훈련받습니다. 정치적 중립은 제게도 철칙과 같았습니다. CIA 본부는 워싱턴DC가 아니라 강을 건너 버지니아 주 랭글리에 있습니다. CIA와 백악관 사이에 흐르는 강은 지리적 경계이기도 하지만, CIA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정치가 개입해선 안 된다는 비유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정치적 차단막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정확히 거꾸로 적용해 정보기관을 배제한 채 정치를 하려 하고 있습니다.
CIA는 앞으로도 비밀 작전을 수행하거나 전 세계 주요 동맹국과 필요한 기밀 정보를 공유하는 등 계속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정말로 정보기관과 긴밀히 협력하며 튼튼한 신뢰관계를 구축할 생각이 있다면, CIA 고위직 몇 명을 자기 뜻에 맞는 인물로 물갈이하거나 언론에 대고 성명서를 읽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실제 임무를 수행하는 정보기관 직원들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 아닙니다. 때론 목숨 바쳐가며 얻어낸 정보기관의 정보와 분석에 합당한 존중을 표해달라는 겁니다. 다짜고짜 무시당하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으며 정책에 하나도 반영될 리 없는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누구보다 투철한 애국심을 갖고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의 희생과 노력을 헌신짝 취급하며 또 한 번 나라에 해악을 끼치는 셈이 됩니다.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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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에서 경찰과 군인은 좋은 대우를 받는데 정보부는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할 까요? 셋 다 나라를 수호하는 자랑스런 이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정보부도 그에 맞는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