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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정책고문, “트럼프의 안보 정책에 이의 제기 말라”

백악관 선임 정책고문 스티븐 밀러(Stephen Miller)는 지난 일요일 오전 시사 프로그램에 잇따라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거듭 옹호하느라 무척 바쁜 주말을 보냈습니다. 밀러는 우선 대대적인 부정선거 의혹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백악관이 충분히 갖고 있다고 말해 빈축을 샀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 명령을 가로막은 법원의 판결이 명백한 월권이며 대통령에 대한 도전”이라는 발언은 빈축을 사는 수준을 넘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망각한 듯한, 매우 우려스러운 발언이었습니다. 심지어 밀러 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에 관해 내린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will not be questioned)”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존 디커슨이 진행하는 CBS의 주말 시사 프로그램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에 출연한 밀러 고문의 발언 중 문제가 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디커슨: 원내 공화당 의원들을 만나보니, 공화당 의원들도 이번 (무슬림 입국 금지, 난민 심사 중지) 행정 명령으로 시작된 일련의 사태에서 백악관이 어떤 교훈을 얻었을지 궁금해 하던데요?

밀러: 글쎄요, 모든 미국인이 이번 사건에서 이거 하나는 뼈저리게 느꼈을 겁니다. 바로 사법부가 지나치게 거대하고 강력해지면서 정부 내부적인 균형이 깨졌고, 그 결과 사법 권력은 말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선출직도 아닌 시애틀에 있는 판사 한 명이 나라 전체의 법을 정하고 다시 쓴 거죠. 미쳤다는 표현 말고는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입니다. 리비아에 있는 외국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미국에 들어올 수 있느냐 마느냐를 시애틀에 있는 판사가 결정하다니요, 이런 월권은 미국 역사상 본 적이 없는 일이에요.

다른 건 몰라도 정부가 늦지 않게 대책을 내놓으리라는 건 확실해졌습니다. 곧 정부에 반대하는 언론을 포함해 온 세상이 알게 될 겁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에겐 우리나라를 보호하고 지키는 데 필요한 상당한 권한이 부여돼 있습니다. 여기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해선 안 됩니다.

이의를 제기하지 마라,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 비판받지 않겠다, 견제 대상이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Will not be questioned.”라는 마지막 저 표현을 쓴 건 실로 믿기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트럼프 대통령도 이미 여러 차례 에둘러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던 데 비춰보면 앞으로 얼마든지 되풀이될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밀러는 백악관 정책고문 자격으로 출연한 방송에서 백악관은 무슬림 입국 금지와 같은 행정 명령이 법원의 검토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똑똑히 밝혔습니다.

다른 방송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되풀이하긴 했지만, 밀러 고문이 표현의 수위 조절을 애초에 제대로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NBC 시사 프로그램 “밋 더 프레스(Meet the Press)”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방법원 판사가, 그러니까 시애틀에 있는 지법 판사가 미국 전체의 이민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지방법원 판사에게는 다른 나라 국민이나 미국에 들어와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또한, 시리아 출신 난민의 자격 심사를 보류하고 중지한 대통령의 결정을 물리고 방해할 권한도 없습니다.

폭스의 “폭스 일요 뉴스(Fox News Sunday)”에서 한 말도 비슷합니다.

이건 사법부의 명백한 월권이자 권력 찬탈입니다. 송사를 맡아 다툼을 중재하는 판사에게 주어진 역할을 스스로 어긴 겁니다. 우리는 이런 월권, 비법 행위에 맞서 싸울 겁니다. 또한, 앞으로는 이번에 발견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를 강구하며 정책을 추진할 겁니다.

법원의 적극적인 권한 행사를 향한 볼멘소리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정치인이 반기지 않을 만한 일을 한 판사에게는 어김없이 “활동가형 판사(activist judge)”라는 비아냥이 따라붙습니다. 법조문을 해석하는 본연의 업무를 내팽개치고 아예 법을 새로 만들려 한다는 직접적인 비난도 나옵니다. 특히 보수 단체가 판사와 자주 마찰을 빚곤 합니다.

밀러가 대통령의 모든 행정 업무가 아니라 특히 안보에 관한 사안이라 더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인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한 권한”이라고 표현했죠.

로버트 반스 기자가 정리한 것처럼 이민이나 국가 안보 문제에 관해서는 법원이 관례적으로 대통령과 행정부의 의견을 따랐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1952년 미국 하원은 대통령이 “미국의 이익을 침해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 “즉각 명령을 내리거나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간 동안 이민 목적 여하에 관계없이 모든 외국인의 미국 입국을 중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문제의 트럼프 행정 명령에도 이 법의 개정 내용이 명시돼 있다. 바로 “이민 비자를 발급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인종, 국적, 출생지, 주거지로 인해 특혜나 차별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리 안보에 직결되는 이민 관련 사안이라도 전권을 행사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조항은 미국 헌법상의 이른바 국교 금지조항(Establishment Clause)입니다. 1982년 대법원은 “미국에서는 특정 종교나 종파가 다른 종교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지 않는다.”고 다시 한 번 못을 박았죠.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법원의 최종 판결은 반드시 어느 한 쪽으로 정해져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계속해서 문제를 이번 사례에 국한한 몇몇 판사의 월권 행위 이상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밀러 고문의 연이은 방송 출연은 안보에 관한 대통령의 결정에 법원이 간섭하려 하지 말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거침없는 행보에 공화당 의원들 중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애리조나 주 출신의 제프 플레이크 상원의원은 밀러의 뒤를 이어 같은 프로그램 “페이스 더 네이션”에 나와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더 안전하게 하고자 고심하는 건 분명합니다. 저도 그 점을 충분히 알고 있고요. 모든 국민이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할 겁니다. 다만, 어떤 정책이라도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하겠죠. 현명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밀러는 근본적으로 다른 주장을 펼친 셈입니다. 즉, “대통령의 행위 하나하나에 합헌 여부를 따질 필요는 없다, 특히 국가 안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은 그 자체로 헌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특정 종교나 집단을 목표로 찍어내 배제하더라도 헌법을 이유로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가만 읽어보면 이야말로 초법적 권력을 휘두르겠노라 선포한 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트럼프 정부가 몇 번이나 더 비슷한 시도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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