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차 뭉크(Yascha Mounk)는 어디서나 가장 비관적인 축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강의하는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서구 정치학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명제에 대해 대담한 의문을 품고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한 국가의 정치 체제가 한번 자유민주주의가 되면, 그 나라는 계속해서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명제입니다. 즉, 자유민주주의는 자체적으로 튼튼한 영속성이 있다는 가정이기도 합니다.
뭉크의 가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영속성을 인정하는 통념을 거스릅니다. 그는 현재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전 세계 곳곳에서 퇴보할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합니다.
뭉크는 2014년 “모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삶(Stranger in My Own County)”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습니다. 책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야 했던 저자 본인의 기억으로 시작합니다. 이어 현대 유럽 국가들이 새로운 다문화, 다민족 국가 정체성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는 상황을 고찰합니다. 뭉크는 많은 국가가 바뀐 국민의 구성에 걸맞은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곳곳에서 포퓰리즘을 앞세운 정치 세력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반발이 그저 새로운 정치적 조류의 등장일지, 아니면 좀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인지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과연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낼 만큼 튼튼한 체제인지에 대한 뭉크의 관심도 이런 연구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을 찾아보고자 뭉크는 호주 멜버른대학교의 정치학자 로베르토 스테판 포아(Roberto Stefan Foa)와 함께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뭉크와 포아는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튼튼한지 가늠할 만한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퇴보의 조짐
정치학에서 쓰는 개념 가운데 “민주주의의 공고화(democratic consolida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한 국가가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이고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어느 정도의 부가 쌓이면 그 민주주의는 쉽게 거스를 수 없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공고화된다는 뜻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민주주의 공고화 이론은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들로 인해 더욱 공고화되는 듯했습니다. 전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와 시민 자유에 관한 사안을 취합해 분석하는 감시 단체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의 데이터를 보면, 197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른바 “자유 국가”로 분류되는 나라의 숫자는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가 군부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이룩했고, 냉전의 종식과 함께 동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도 민주화가 일어났습니다. 북미와 서유럽, 호주 등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민주주의 역사와 전통은 깊이 뿌리를 내려 영원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2005년부터 프리덤하우스의 지표에서 세계적인 자유 지수가 낮아졌습니다. 일시적인 통계적인 오류 혹은 착시에 불과한 걸까요?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테러와 전쟁을 비롯한) 상당히 이례적인 사건이 세계적으로 일어난 여파일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실제로 정치 체제에 위기가 찾아와 정말로 자유가 감소한 것일 수도 있을까요?
뭉크와 포아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세 가지 변수를 고려한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뭉크는 이 공식이 일종의 건강 검진과도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민주주의에 어떤 병이 들어서 국가 전반에 심각한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문제 혹은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죠.
첫 번째 변수는 시민들의 지지입니다. 이는 시민들이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기준으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변수는 시민들이 군부의 통치와 같은 민주주의가 아닌 형태의 정부, 정치 체제에 얼마나 열려있느냐입니다. 세 번째 변수는 “기성 체제를 통째로 부정하는 정당이나 정치 운동”이 얼마나 지지를 얻고 성공을 거두느냐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약해지고 다른 두 가지 변수는 강해진다면, 즉 민주주의가 아닌 정치 체제에 대한 거부감은 줄어들고 기성 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세력이 득세하는 경우에 뭉크와 포아는 이런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약화(deconsolidating)”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약화하는 현상은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 독감에 걸리기 전에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는 정도라고 뭉크는 설명했습니다.
베네수엘라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베네수엘라는 1980년대 프리덤하우스의 지표상 민주주의나 정치적 권리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는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했고, 겉보기에는 이상적인 상황이 전개되는 중에도 이미 뭉크와 포아가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는 약화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퇴보했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1992년 우고 차베스와 그를 따르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끌어내리려 했습니다. 차베스는 1998년 포퓰리즘을 앞세워 대통령에 당선됐고 헌법을 개정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차베스 정부는 반대 의견을 뭉개버리고 정적을 색출해 투옥했으며 허술한 경제 정책을 강행해 나라 경제를 곤경에 빠트렸습니다.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직후의 폴란드도 흥미로운 참고 사례입니다. 당시 폴란드는 구 공산권 국가들 가운데 민주주의로 가장 모범적으로 이행한 사례로 칭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뭉크와 포아는 당시 이미 폴란드 정치 체제 전반에서 민주주의가 약화하고 있는 뚜렷한 조짐을 발견합니다. 2005년에 이미 폴란드 국민의 16%가 민주주의는 나라를 통치하는 데 있어 나쁜 정치 체제 혹은 상대적으로 나쁜 정치 체제라고 답했습니다. 2012년에 실시한 여론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22%가 군부의 통치를 지지한다고 답합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기존 체제에 반대를 외치는 정당들이 차곡차곡 지지율을 쌓기 시작했고, 이 가운데는 법과 정의당(Law and Justice)을 비롯해 폴란드 자위당(Self-Defense of the Republic of Poland), 폴란드 가족당(League of Polish Families) 등이 있습니다.
그 당시는 미열 정도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분명한 독감이 되었습니다. 법과 정의당은 지난해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고 민주주의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폴란드 정부가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침해하려 하자 관련 조사를 진행했고, 보고서에 “폴란드 정부의 시도는 단지 법치를 위협하는 수준이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경종을 울려야 할 때?
뭉크와 포아의 조기 진단 체계를 따르면 미국을 비롯한 많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약화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에 위기가 닥치기 전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호주, 영국, 네덜란드, 뉴질랜드, 스웨덴,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하는 시민의 비율이 크게 낮아졌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이런 경향이 더욱 뚜렷이 나타납니다.
권위주의나 독재 등 비민주정에 대한 지지 혹은 이를 용인하는 정도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유럽/세계 가치 조사(European and World Values Surveys) 데이터를 보면 군부의 통치가 좋거나 아주 좋을 것이라고 답한 미국인의 비율은 1995년에는 1/16이었지만, 2014년엔 1/6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이런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앞서 발표된 논문을 보면, 미국인 중에서도 나이 든 세대는 43%가 정부가 아무리 제 기능을 못 해도 군부가 통치해서는 안 된다고 답한 반면 이 비율이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19%에 불과했습니다. 유럽인들에게서도 세대 간에 비슷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존 체제를 부정하는 소위 ‘반체제, 반기득권 세력’의 득세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유럽에서도 프랑스의 국민전선, 그리스의 시리자,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등 좌우를 가리지 않고 기존 체제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으며 전면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이 높은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섣부른 결론은 금물입니다. 여기에 인용한 논문의 주장은 아직 널리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고, 방법론에서도 다른 데이터 분석을 통한 사회과학 연구와 마찬가지로 한계가 명확합니다. 여론조사 결과 또한 조사 대상에 대해서만 제한적인 함의를 가질 뿐이고, 해당 연구는 체제 전반의 안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 성장과 같은 요인은 제하고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뭉크와 포아의 우려에 대해서도 저명한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Ronald Inglehart)는 심각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또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도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약화하는 것과 민주주의 체제 전반의 불안정성이 늘어나는 것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반드시 민주주의의 약화를 부르는 현상이 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뭉크도 본인의 연구가 가진 한계를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밝히려 했던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냥 간과하기에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현상임이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뭉크는 특히 세세한 정치 과정에 신경이 팔리다 보면 이런 근본적인 위험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예를 들어 트럼프의 환경 정책이 다르겠죠. 그가 환경보호국(EPA)을 어떻게 할지도 몰라요. 이것도 중요한 사안이지만, 더 중요한 건 트럼프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죠. 다른 나라에서는 실제로 현실로 나타난 문제이기도 합니다. 설마 그러기야 하겠냐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돼요. 언론인이라면, 학자라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모두를 위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합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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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통치야말로 제대로된 정치체제입니다. 외국인이라고, 여자라고, 젊다고, 늙었다고, 가난하다고, 재벌총수라고 형벌이 감면되는데 군인이면 오히려 더 처벌을 많이 받는게 제대로된 체제일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못 사는 나라일 경우에는 똑똑한 사람들은 대부분 군인을 하는데 민주주의를 하면 똑똑한 사람보다는 멍청하거나 부패한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먹게 됩니다.
요근래 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체제로 취급받는건 우연히도 민주주의를 한 나라들이 선진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0년, 30년이 지나서 중국이 선진국이 되면 집단독재체제가 최고의 정치체제로 취급받게 될거입니다.
결국 민주주의는 이상에 지나지 않고 근본은 자본주의인 것 같다. 아무리 이상을 외쳐본다 한들 본문이나 아래 댓글처럼 자본주의에 근거해 발전했던 옛날을 떠올리거나 막연하게 독재를 하면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헛소리나 해대는 걸 보면... 결국 지금의 선진국들이 민주주의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다른 나라를 착취한 부 위에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향한 요구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부에 의해 본능이 충족되지 못하면 사회는 그저 소나 말을 부러워하는 노예를 부리는 주인들의 시대 밖에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