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자(Syriza) 밀착 취재 – 그들이 선거에서 승리하기까지 (1)
2015년 2월 3일  |  By:   |  세계  |  No Comment

시리자(Syriza). 10년 전 총선에서 4%를 득표하는 데 그쳤던 군소 정당이 10년 만에 그리스 총선을 휩쓸며 전 유럽에 반(反) 긴축정책 연대 바람을 일으키고 좌파 정치 부활의 구심점이 되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으로 무장한 유럽중앙은행의 거침없는 통화정책 행보에 속절없이 주도권을 내줬던 유럽의 많은 사민주의 정당과 좌파 정당들은 너도나도 ‘시리자 배우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현대 유럽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급진 좌파 정권을 탄생시킨 시리자의 여정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경제위기 덕분에 자연스럽게 조성된 행운 덕분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지난 1월 한 달 가까이 시리자 총선 캠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실상 무너진 농촌 경제 공동체 속에서 좌절한 농부들에게 다가서는 시리자 당원들, 일자리를 통째로 중국 시장에 빼앗기고 신음하는 선박 노조원들과 대화하는 시리자 당원들을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상당히 보수적으로 치우쳐있는 주요 언론매체는 시리자를 극도로 혐오했고, 1월 초까지만 해도 어떤 여론조사에서 시리자의 지지율은 2%에 미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원들은 변하는 시대에 걸맞는,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젊은 패기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앞세워 설파했습니다. 긍정적인 자신감의 밑바탕에는 아주 밝고 소탈하면서도 신념에 끈기를 갖고 덤비는 시리자의 당수 치프라스(Alexis Tsipras)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치프라스 당수는 좌파 정치집단들의 연합체인 시리자의 의사결정 과정부터 바꿔냈습니다. 다른 기존 정당처럼 당 중앙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방식을 그림자 내각(선거 전에 집권했을 때 주요 장관직을 구성한 야당의 가상 내각) 위주의 의사 결정 구조로 바꿔냈습니다. 새 얼굴이 많다는 이유로 처음 치프라스 당수가 제안한 그림자 내각 명단에 이의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치프라스는 카리스마를 앞세워 이를 관철시켰고 결국 총선 승리라는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저를 비롯한) 언론인과도 유창한 영어로 상당히 다양한 분야의 정책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는 치프라스 당수는 동시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거리와 광장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시민들과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고 함께 셀카를 찍는 대중적이고 소박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소스(Assos) 지방에서 평생 포도 농사를 지은 56살 초카스(Giannis Tsogkas) 씨는 존재조차 모르던 시리자에 표를 준 이유를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우리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정치세력, 정당)가 필요했어요. 그리스 정부가 IMF에서 돈 빌려놓고, 그 다음부터는 거기서 시키는대로 우파 정책만 밀어붙였잖아요. 서민들은 자꾸 죽어나가고, 실제로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좌파는 뭐하나 서민들 안 지켜주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때 시리자가 우리 앞에 나타났죠. ”

농촌에 있는 포도밭, 레몬 나무의 2/3는 이미 버려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긴축정책으로 서민들에게 가중되는 세금은 늘어났는데, 각종 보조금은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많은 농부들은 이내 경작을 해봐야 돈을 벌기는커녕 손해만 더 커진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서민들의 가계 부채도 늘어났는데 채권자인 은행들은 상환을 압박한 결과 가계들은 잇따라 파산했습니다.

아소스 지방 한 마을의 작은 주점에서는 한 젊은 시리자 당원이 마치 볼셰비키 시대에 연설을 하듯 사람들 앞에서 목청을 높였습니다.

“도대체 왜 IMF가 우리를 못살게 구는 걸까요? 그리스에 햇살이 좋아서? 우리가 친절하고 순진해서? 아니면 그냥 남유럽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편견에 빠져 정말 우리를 경멸하기라도 하는 걸까요?”

더 중요한 건 사실 이런 선동적인 연설이나 구호가 아닙니다. 시리자는 서민들의 삶을 마주하며 고충을 듣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했습니다. 중도좌파(PASOK)난 중도우파(신민주당)는 이런 기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이미 유권자들의 관심사로부터 스스로 격리됐는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한 농부가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네 기자 양반들도 선거 때 되면 표심 살핀다 뭐다 해서 이런 촌구석까지 오잖아요. 시리자도 어쨌든 여기까지 부지런하게 찾아오더라고요. 우파든 좌파든 정당이라면 적어도 선거 때는 우리 얘기를 들어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뭐 오질 않으니 그쪽(기성 정당)에는 우리 얘기를 전할 통로 자체가 없는걸요.”

시리자가 주장하는 “긴축정책 반대” 계획의 성패는 그리스가 유럽 다른 나라에 지고 있는 400조 원 가량의 빚을 갚는 일정을 조절하는 데 달렸습니다. 하지만 무능한 기성 정당에 대한 심판은 유권자들의 각성만으로 충분했습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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