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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내, 딸을 사랑하는 성차별주의자?

  • 이 기사는 미 대선 전에 발행되었습니다. – 역주

최근 여성 유권자는 15%p 차이로 클린턴을 선호하고, 남성 유권자는 5%p 차이로 트럼프를 선호한다는 설문조사가 발표되었습니다. 버락 오바마와 미트 롬니가 맞붙은 2012년 대선 당시의 성별 간 지지 후보 격차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선거에서 성별 간 차이는 너무 당연한 현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크게 놀란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와 같은 결과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습니다. 이번 선거 운동을 통해 트럼프는 자신이 현대 미국 대통령사에서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여성혐오적이라는 것을 스스럼없이, 반복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도 많은 여성들의 반감을 샀죠. 하지만 그 여성들의 아들들, 아버지들, 남편들은 왜 이 문제를 그만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일까요? 부인이 트럼프의 언행에 치를 떠는데도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는 남편들이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인종이나 문화가 다른 집단이 의미있는 교류를 나누면 소수에 대한 다수의 편견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지만, 어쩐 일인지 젠더 문제에 있어서는 이런 효과가 적용되지 않는 듯 합니다. 세상 거의 대부분의 남성들이 적어도 어머니, 자매, 부인 정도와는 의미있는 관계를 맺고 있을텐데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는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요?

프린스턴대 심리학/공공정책 교수인 벳시 레비 팔럭(Betsy Levy Paluck)은 젠더 편견은 인종에 대한 편견 등 다른 편견들과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남녀 간의 긴밀한 관계는 질적으로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접촉이나 편견도 다른 형태를 띤다는 것이죠.

성차별은 양면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대적 성차별(hostile sexism)과 온정적 성차별(benevolent sexism)이라는 개념은 1996년 심리학자인 피터 글릭(Peter Glick)과 수잔 피스크(Susan Fiske)가 처음 도입했습니다. 적대적 성차별은 말 그대로 공격적이고 명백하며 폭력적인 종류의 성차별로 남성과 여성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는 시각을 기저에 깔고 있습니다. 여성은 언제나 남성을 이용해 먹으려하고, 기만을 통해 특별 대우를 받으려고 한다는 시각이죠. 글릭과 피스크는 조사 대상자의 성차별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설문을 개발했는데, “여자들은 남자들이 자신에게 해주는 것을 감사히 여기지 않는다”, “많은 여성들이 고용 등에서 평등을 명분으로 특혜를 원하고 있다”와 같은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적대적 성차별주의자로 보았습니다.

온정적 성차별은 다릅니다. 가부장적 세계관 속에서 여성을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여기죠. 물론 그 이유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여성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로 보이는 것도 온정적 성차별일 수 있습니다. “남성이 아무리 성공해도 여성의 사랑이 없으면 인간으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 “훌륭한 여성을 얻은 남자는 그녀를 떠받들어야한다”, “남자라면 여자에게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해주기 위해 스스로의 안위를 희생해야 한다” 등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바로 온정적 성차별주의자입니다. 실생활에서의 예를 원하신다구요? 트럼프의 성추행 고백 영상을 보고 “아내와 딸들”을 언급한 모든 트윗이 이에 해당합니다.

글릭은 온정적 성차별을 남성들이 젠더 위계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여성과 긴밀한 동반자 관계, 합의에 따른 성관계 등을 맺기 위해 문화적으로 진화된 성차별의 형태로 보았습니다. 즉, 젠더에 따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앞서 언급한 것들을 누릴 수 있도록 내 여자를 보호하고 내 여자에 의해 거듭나는 존재로 자신을 포지셔닝한다는 것이죠. 여성을 탄압하는 존재가 아니라 백마 탄 왕자, 공주를 지키는 기사로 말입니다.

온정적 성차별이 때로는 여성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유일한 선택지가 적대적 성차별일 때의 얘기지만요. 럿거스대학의 심리학자인 로리 루드먼(Laurie Rudman)은 “지금과 같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은 나를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사랑받고 예쁨받는 온정적 성차별을 최상의 선택지로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자리이긴 하지만, 학대받고 강간당하고 악마화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죠.

글릭을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은 젠더 역할이 공고하게 정해져있는 가정 내에서의 일상적 교류는 오히려 여성혐오 완화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성을 자신의 아래로 보는 틀 속에서도 얼마든지 엄마나 부인과 애정어린 일상적 교류를 이어갈 수 있으니까요.

성차별의 양면성이 트럼프 현상을 해석하는데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적대적 성차별과 온정적 성차별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머리 속에서도 두 가지는 얼마든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여자를 싫어하는게 아니야, 나는 저 페미니스트들이 싫고, 힐러리 클린턴이 싫어, 성격 더러운 커리어워먼들, 남자를 휘어잡으려고 하는 여자들이 싫은거야, 라고 생각하면 적대적 성차별입니다. 트럼프가 사기꾼 힐러리를 감옥으로 보내자고 말하면 지지자들은 클린턴이 여자라서 내가 클린턴을 싫어하는게 아니다, 사기꾼이라서 싫은 것 뿐이다, 라고 생각하겠죠.” 글릭의 설명입니다.

즉 부인과 딸이 싫어해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남성들의 마음 속에는 착한 우리 엄마, 우리 아내, 우리 딸을 향한 온정적인 성차별, 이들과 달리 주제를 모르는 여성들을 향한 적대적 성차별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트럼프 유세장에서 “쌍년을 꺾자(Trump that bitch)” 티셔츠를 입고 적대적 성차별주의를 불태우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족들과 평화롭게 저녁식사를 하는 남성들의 심리에 대한 설명입니다. (뉴욕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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