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이야기를 하나 꺼내보겠습니다.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누가 뭐래도 인종 문제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다른 후보 지지자들보다 흑인들이 “게으르고, 폭력적이며,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트럼프 지지자 5명 중 4명은 미국에서 백인에 대한 차별이 흑인에 대한 차별만큼이나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지지자 중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은 39%에 불과합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트럼프 돌풍이 흑인들이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의 보호를 받는 불평분자들이라고 생각하는 백인들의 “인종적 분노”에서 비롯되었고 분석합니다. 트럼프 본인도 마찬가지죠. 누군가에게 함부로 인종주의자 딱지를 붙이는 것은 지양할 일이지만, 45년간 꾸준히 차별적 언행의 기록을 쌓아온 사람을 달리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몇 년 전 제가 “인종 문제에 있어 백인들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시리즈를 시작한 이유는 백인들이 인종 불평등 문제를 부정하는 상태에 빠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이런 분위기는 더욱 강화되었죠.
널리 퍼져있는 착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제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기까지 했으니, 더 이상 현재 흑인들의 문제를 과거의 불평등 탓으로 돌리지 말자. 차별의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 간 불평등은 여전히 만연하고 이를 입증할 근거도 많습니다. 포틀랜드 주립대와 애리조나대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길을 건너려고 하는 단순한 일상 속에서도 인종 차별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흑인 남성은 백인 남성보다 두 배나 많은 자동차를 보내고 나서야 길을 건널 수 있었죠.
2016년, 인종 차별은 더 이상 흰 망토를 쓴 분리주의자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이런 분들이 실제 트럼프 지지에 가세하고 있지만요.) 문제는 차를 몰고 건널목을 지나쳐 간 선의의 백인들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인종 간 평등을 지지한다고 믿고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차별을 지속시키는 행동을 하죠.
연구자들은 이런 무의식적 편견의 증거를 사방에서 찾아내고 있습니다. 스탠포드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교사들이 학생 징계를 결정할 때도 전형적인 “흑인 이름”을 가진 학생들에게 더 가혹하다고 합니다. 맹장염으로 응급실에 온 흑인 아동들은 백인 아동들보다 약한 진통제를 처방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죠.
인종 차별은 기업의 영리 활동에도 악영향을 주지만, 사장님들의 태도도 변함이 없습니다. 뉴욕시에서 가짜 이력서를 가지고 흑인 남녀에게 구직 활동을 하도록 하고 결과를 취합한 2004년 하버드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백인들의 서류 통과율이 현저하게 높았고 심지어는 전과 기록이 있는 백인이 전과 없는 흑인 구직자보다 면접 기회를 많이 얻었습니다. 한편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의 조사 결과, 차별적인 기업들이 문을 닫을 가능성이 컸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죠.
오늘날의 인종 차별은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현재 디트로이트에서는 어린이 인구의 9%가 납중독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의 부유층 자녀들 사이에 이런 문제가 있었다면, 진작에 국가적 차원의 조사와 보상위원회를 꾸리라는 요구가 빗발쳤을 것입니다. 진통제 중독이 흑인들 사이에서 더 만연했을 때는 징역형으로 엄벌하던 추세도, 진통제 중독이 백인들의 문제가 되자 치료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교육제도 역시 백인들이 주로 사는 교외 지역에는 좋은 공립 학교들이, 흑인 주민 중심의 도심 지역에는 삼류 학교가 들어서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대법원에서는 “전문가”가 흑인은 미래에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더 높다고 증언해 사형을 선고받은 일을 두고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런 게 인종 차별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인종 차별이란 말입니까?
많은 백인은 10대 임신율 같은 수치를 들며, 인종 간 격차가 흑인들 개개인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빈곤에서 비롯되는 여러 증상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흑인들은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죠. 오바마 대통령 같은 흑인 사회의 지도자와 교회 등이 힘을 모아 흑인 청년들이 학업을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독려하는 “마이 브라더스 키퍼(My Brother’s Keeper)” 같은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 우리 백인들은 이런 불평등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지는 데 있어 놀라울 정도로 소극적입니다. “개개인의 책임”이 그렇게나 중요한 것이라면 우리는 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 선거를 인종전으로 몰아가고자 한다면, 우리도 지지 말고 인종 문제의 복잡성을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백인들은 남에게 손가락질할 시간에 자기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는 데 좀 더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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