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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 새로운 드라마 여주인공들의 시대

아마존과 BBC3에서 방송 중인 드라마 “플리백(Fleabag)”의 주인공은 진심을 담은 성관계를 싫어합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망해가는 까페에서는 손님에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의 음식을 내놓고, 양어머니의 그림을 훔치는가하면, 오바마 대통령이 나오는 영상을 보며 자위를 하고, 자신의 항문 사이즈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으니 여러 사람의 취향에 두루 어필하는 드라마는 아닙니다. 피비 월러-브릿지가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플리백”은 6회에 걸쳐 이 비호감 여성의 인생을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플리백”은 여성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창작한 도발적인 반영웅 코미디들 가운데 하나죠. 여성이 쓴 작품이 부족했던 코미디 시장에 “플리백”과 같은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영국 영화 및 드라마 시장에서 여성 작가의 비율은 29%에 불과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나오는 작품 속에서 많은 여성들은 보조적인 역할이나 특정 스테레오타입을 연기하는데 그쳤죠. 여성은 작품 속에서 “누구누구의 배우자”일 가능성이 높고, 리더 역할을 맡는 경우는 남성의 절반에 그쳤습니다. 물론 “플리백”의 주인공은 리더라 칭하기 힘든 캐릭터죠. 그녀의 매력은 불완전성에서 나오니까요.

리나 던햄이 쓰고 주연을 맡은 HBO 시리즈 “걸스(Girls)”의 성공 역시 개성있고 복잡다단한 여성 캐릭터에 대한 수요를 입증합니다. 새로 나올 HBO 시리즈 “인시큐리티(Insecurity)” 역시 아이사 래의 유튜브 히트작 “어색한 흑인 소녀의 불운(The Misadventure of Awkward Black Girl)”이 TV 드라마 제작으로 이어진 경우죠. 9월 초 아마존에서 공개된 “원 미시시피(One Mississippi)”도 한 해 동안 이별과 어머니의 죽음, 암 진단을 모두 겪은 여성 캐릭터를 따라갑니다.

이처럼 불행하고 힘든 주인공의 삶을 다룬 최근 작품들은 과거 여성 캐릭터를 앞세웠던 “섹스 앤 더 시티”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는 다릅니다. 위축되지 않는 여성들이 자신의 사회 생활과 성생활까지 털어놓는 형식이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플리백”의 줄거리는 남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야기 속 핵심적인 관계는 플리백과 여동생, 플리백과 죽은 친구, 플리백과 양어머니 등 여성들 간의 관계죠.

“플리백”의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젊은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의 어이없음을 낱낱이 파헤칩니다. 한 에피소드에서 플리백과 여동생은 시골 별장에서 열리는 여성 전용 침묵 수련회에 참가하죠. 진행자는 참가 여성들에게 주말 동안 “생각을 자신의 해골 속이라는 감옥에 가두는 연습”을 하며 마음을 닦으라고 말합니다. 프로그램은 침묵 속에서 마루를 닦는 등 잡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편 옆집에서 열리고 있는 “더 나은 남자가 되자” 수련회는 참석자들이 자위용 인형에 대고 “걸레”라며 욕설을 퍼붓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는 일정으로 진행됩니다.

작가가 처음 “플리백”을 구상했을 때, 이 작품은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세울 모놀로그였습니다. TV 드라마에 연극적인 요소들이 녹아있는 이유죠. TV로 이 작품을 보는 시청자는 관찰자인 동시에 등장인물이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가 됩니다. 작가는 사회 생활이라는 하나의 연극과 우리가 연기하는 누군가의 모습, 그리고 생각하는 것을 말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항문 성교와 유두, 배설물에 대한 생생한 논의를 그대로 담고 있는 “플리백”은 대부분의 영국 코미디보다 적나라하고 과감합니다.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주인공의 자기파괴적인 행동에 심리적 원인이 있음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밝혀지는 비밀에 어떤 이는 거부감을 느낄 것이고 어떤 이는 공감할 것입니다. “플리백”은 분명 모두가 좋아할만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하지만 시청자에게 불편함을 선사하는 캐릭터, 성격이 더럽고,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 여성을 TV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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