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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차별의 세상이 도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 칼럼니스트 로즈 핵만(Rose Hackman)의 글입니다.

제가 지면에 젠더 이슈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제 지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남성으로부터 흥미로운 피드백이 들어옵니다.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고, 나아가서는 목소리를 빼앗겼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최근 가디언에 기고했던 글에는 한 독자가 요즘은 “진보적인 여성들” 앞에서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으며 “보수적인 여성들”과 함께 있을 때만이 남성들과 함께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이야기나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며 불평하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말이었지만 그냥 넘어갔죠. 하지만 가방끈도 길고 일터에서도 잘 나가며 대체로 진보적인 한 남성 친구의 이메일을 받고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친구가 보낸 이메일에는 여성이 남성을 두들겨 패는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포스트 페미니스트 세상”을 묘사한 비디오라는 설명이었죠. 답장에서 저는 여성이 여전히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약자의 처지에 있음을 보여주는 각종 통계를 인용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 비디오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알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그 영상만큼은 아니어도 여성주의적 진보로 인해 각종 이중잣대가 생겨났고 그것이 부당하다고 말했죠.

저는 최근까지도 이제 세상에 불평등은 사라졌고 오히려 고통받는 성은 남성이라는 주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 주장은 남성권리 운동가나 골수 여성혐오자들의 구호에나 등장하는 극소수의 의견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글에 대한 일관적이고 꾸준한 피드백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이런 정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남성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기로 했죠.

“남성들이 일반적으로 누려온 것들이 도전받는 상황인 겁니다. 온 세상이 남자들만의 탈의실이었을 때는 무슨 말을 해도 면책권이 주어졌지만 이제 그렇지가 않으니 쉽지가 않은 것이죠.”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남성/남성성 연구소 소장인 마이클 키멜(Michael Kimmel)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를 나눴던 남성들(대화 의지가 있고 솔직하며 여성을 노골적으로 멸시하지 않는 친구들이죠)은 말을 함부로 할 수 있고 없고의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이었습니다. 좌절감의 깊이는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시애틀에 사는 32세 정육업자 탐 커스는 조용히 앉아 젠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게 된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최근까지는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충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많다면서요. 일단 인식을 하게 되자 그런 상황을 보게 되면 같은 남성으로서 부끄럽고 화가 나기도 한다고요. 하지만 탐 역시 구조적인 문제, 자신이 딱히 기여하지도 않은 문제에 왜 자신이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남자가 편하게 밤길을 다니는 것도 사실이고, 일자리도 더 쉽게 구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제가 만든 것이 아닌걸요. 태어날 때부터 특권이 주어졌지만, 내가 특권을 더 크게 만든 것도 아니고요.” 그는 여성 친구나 잠재적 애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종종 자신의 경험이 존중받지 못하고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하잖아요.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들도 그 사람들이 선택한 게 아니라 그렇게 태어났으니 타인이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요. 그렇게 치면 저도 마찬가지죠. 내가 원해서 백인, 남성, 이성애자로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탐은 ‘네가 백인 남자라 이해를 못 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젠더나 인종이 억압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특권 얘기를 하자면 저도 할 말이 많아요. 인종이나 젠더보다 더 큰 구분선은 계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패배감은 여러 사람에게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국제개발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36세의 투자 전문가 이시와르 치카라는 미국에서 대학 학위를 따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아지고 있다는 수치를 들면서 “여성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농담이 아닙니다. “정보화 시대가 오면서 힘보다는 머리가 우선인 세상인데, 학교도 못 다니고 배운 것도 없는 남자들이 불쌍할 지경”이라고 말을 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의 변화가 여성에게는 좋은 것이겠지만, 남성에게는 어떨지 알 수 없다는 것이죠. 제가 인터뷰했던 다른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이시와르 역시 역사적으로 남성이 특권을 누려왔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상실이 더욱 크게 와 닿는다는 것이죠. “권리의식이라는 것 때문이에요. 태어나서부터 남성에게 유리한 편견이 있다고 배우며 컸는데, 빼앗기게 되니까 힘든 거죠.”

이러한 정서는 최근 백인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백인이 흑인에 비해 수입, 고용, 주택 보유, 건강 등 모든 면에서 우위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후반에 흑인들이 여러 권리를 누리게 되자 백인들은 상대적으로 권리를 빼앗겼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감정에는 근거가 없습니다. 인종 면에서, 또 젠더 면에서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니까요. 마이클 키멜 교수는 “수위가 높아지면 모든 배가 위로 올라간다”며 성 평등이란 공평하고 정의롭고 민주적인 것일 뿐 아니라,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더 행복한 세상을 가져다준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특권이 정상인 상황에서 특권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몸에 익은 것을 돌이키는 과정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과 조용히 듣기를 배우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오하이오주립대 트레바 린지(Treva Lindsey) 교수의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내 생각과 주장이 모든 대화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배워가는 것이지 입을 억지로 다무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31세의 디자이너 지망생 존 아코스타는 보수적인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이후 미국의 여러 도시를 경험하면서, 어릴 때는 올바르고 예의 있는 행동이라고 배운 것을 억눌러야 했다고 말합니다. “고향에서는 나이가 많든 적든 여성이 보이면 무조건 지하철 자리를 양보했어요.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죠. 남녀는 평등하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속으로는 ‘내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이유를 저 여자가 알아줄까?’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가구점에서 아르바이트했을 때도 여성 상사들을 대하는 방식을 새로 익혀야 했습니다. “(남자들은) 도움을 주려는 과정에서도 상대를 짜증 나게 할 수 있어요. “내가 너를 도와줄게.” 같은 식으로 말하기보다는 “당신이 상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세요.” 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26세의 자전거 배달부 호세 올리베라스는 여성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페미니즘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구애의 공식을 재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사하는 것도 안 되고, 칭찬도 하면 안 된다는데 그럼 백마 탄 왕자님이 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가까워지려는 노력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됐다 싶으면서도 짜증 나죠.”

35세의 데이터 엔지니어 버튼 윌리엄스 역시 비슷한 좌절감을 느낍니다. 여전히 남자가 문을 열어주고 가방을 들어주기를 기대하는 여자들도 많은데, 어떤 여자들은 바로 이런 행동들을 불쾌하게 받아들이고 문제 삼는다는 것이죠. 잘해 보려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되니 혼란스럽다는 것입니다. “여권 신장이니 뭐니 다 찬성이에요. 하지만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아예 공식에서 남성을 빼버리려는 것 같아요.” 여성들이 예전만큼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다 보니 남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 버튼의 생각입니다.

키멜 교수는 지난 두 세대에 걸쳐 젠더 부문의 변화가 어지러울 정도로 빨리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특히 남성들의 분야에 여성이 진출한 경우, 남성들은 이를 “침범”이라고 여기고 남성이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낍니다. “역사 속에서 여성들이 동등한 권리를 주장했던 순간부터 남성들은 이를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였어요.”

정육업자 탐은 함께 가부장제를 몰아내고 성 평등을 추구해야지, 모계 중심의 신세계를 건설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넘겨짚기”는 서로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여자에게는 친절하니까 직장 생활이 편할 거다, 이런 말은 절대 하지 않아요. 여성의 입장이 이럴 것이다, 라고 넘겨짚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백인 이성애자 남자는 이럴 거야, 하고 넘겨짚는 것도 똑같이 나쁘죠.”

키멜 교수와 린지 교수는 이런 남성들의 감정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비록 인터뷰 대상 중 트럼프 지지자는 한 명도 없었지만, 트럼프의 정치적 부상을 가능케 한 수사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은 자신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특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무언가 잃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문구죠. “우리의 나라를 되찾자거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하는 슬로건은 ‘권리의식’ 그 자체입니다. 사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뿐인데도 말이죠.” 키멜 교수의 말입니다.

“잃어버린 것, 되찾아야 할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잃어버린 게 뭐냐고 집요하게 묻다 보면, 인종이나 젠더와 관련된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린지 교수가 말합니다. 사실 트럼프 캠프의 슬로건 중에는 이 맥락에 딱 맞아떨어지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침묵하는 다수는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문구입니다. “(이런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사실은 별로 침묵하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린지 교수의 지적입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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