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주의 사회학의 창시자인 장 보베로(Jean Baubéro)는 2003년 학교 내에서의 히잡 착용 금지법에도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 그는 다른 이들을 단죄하지 않는 세속주의를 설파합니다.
부르키니(Burkini) 논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속주의를 옹호하는 움직임이 존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꼭 필요한 조치일까요?
분명히 딜레마입니다. 2015년 1월 샤를리 엡도 사태 이후 무슬림을 포함한 상당수 프랑스인에 대한 지하드의 위협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화국의 친구와 적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을까요? 부르키니에 대한 지금의 논쟁은 제 입장을 가장 포괄적인 세속주의로 이끌고 있습니다. 공화국의 적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니스와 아멜 신부의 살해 이후 많은 여성이 테러 주동자에 대한 항의 시위에 참여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심각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논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다수가 자신이 프랑스의 일부라는 느낌이 들도록 하며 공화국의 적을 고립시키는 것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눈에 거슬리는 사소한 기회를 포착하여 탄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에시(IS)는 이러한 상황에서 희생자인 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은 당신들을 배제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프랑스 공동체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같은 식으로 말이죠.
사람들은 히잡이나 부르키니를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논쟁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금지하지 않고도 논쟁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차이에 대한 관용,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입니다.
반(反)-부르키니 명령은 너무 성급했을까요? 아니면 균형 감각을 상실한 것일까요?
그들은 문제를 과장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1960년대 여성들이 몸을 충분히 가리지 않는다는 논란에서 이제는 여성이 너무 많이 몸을 가린다는 논란으로 옮겨 왔습니다. 제 누이들이 비키니를 입기 시작했을 때 저희 어머니는 딱히 편협한 분이 아니었음에도 이에 반대하셨습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무슬림도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에 저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무슬림 페미니스트도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함께 투쟁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장을 착용하는 방식도 여성들 스스로 종교 공동체에서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금지하는 일은 앞으로 더 발전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세속주의는 종교를 인권의 영역으로 가지고 나옴을 말합니다. 즉 해변에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옷을 입고 있을 권리도 있는 것입니다. 더 크게 보면, 이러한 종류의 논쟁은 사회-경제적인 문제인 동시에 문화적인 문제이기도 한 사회적인 불인정의 문제를 은폐합니다. 사람들은 강고한 세속주의와 유연한 세속주의를 대립시키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전략적으로 반(反)-생산적인 조치일 뿐입니다.
가족 아동 여성 인권부 장관인 로랑스 로시뇰(Laurence Rossignol)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부르키니를 단죄하였습니다.
공화국 장관으로서 국가를 대표하는 처지에 있는 로랑스 로시뇰은 도덕론을 펼치기보다 중립을 지켰어야 했습니다. 여성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을 모든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이를 구실로 스스로에 페미니즘적 순결성을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로시뇰 장관이 지속되고 있는 양성평등과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에 대해 조치를 취하기를 기대합니다.
부르키니를 둘러싼 논란은 테러 이후의 맥락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요?
부르키니 논란은 지난 2014년 8월, 해변을 걷는 얼굴을 가린 여성에 대한 나딘 모라노(Nadine Morano, 당시 공화당 의원)의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프랑스에 정착하기로 선택하였다면, 프랑스는 세속주의 국가이고 권리의 국가인 만큼, 우리의 문화와 여성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겠다면 다른 곳으로 갈 일이다!” 2015년 1월 이후의 맥락으로 인해 이러한 종류의 극단화는 더욱 악화되었고 선거 정국 역시 이러한 상황을 정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3월에도 무슬림 여성의 복장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서방 국가,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앵글로색슨 국가들은 상당히 강한 다양성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영국인은 자유로운 사람으로서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통해 하늘로 간다”고 볼테르가 적기도 했죠. 프랑스에서는 “구교도적이자 프랑스적”인 동질적인 정신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프랑스는 분할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1946년 헌법 이후로 “분할될 수 없는, 세속적인, 민주적이자 사회적인”이 프랑스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우리는 동질적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민주적이자 사회적”이라는 수사는 자주 접하지 못합니다. 즉 다양성을 그다지 포괄하지 못하는 다소 동질적인 개념이 우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위험할 수 있는 것들과 민주주의에 의해 용인될 수 있으나 조금 놀라울 수도 있는 요소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경계를 잘못 설정하고 있는 셈이죠. (리베라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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