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세계스포츠

러시아 스포츠계의 조직적인 도핑을 만천하에 알린 부부

800m 달리기 종목의 러시아 육상 대표선수 율리아 스테파노바(Yuliya Stepanova)는 실력보다도 ‘내부고발자’로 최근 더 큰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러시아 반도핑기구(Rusada)에서 일했던 남편 비탈리 스테파노프(Vitaly Stepanov)와 함께 러시아 육상계에 만연한 도핑 실태를 폭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죠. 이들의 고발로 시작된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제육상경기연맹(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thletics Federations, IAAF)은 러시아 육상 대표팀 전체의 올림픽 출전을 금지하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고, 결국 리우 올림픽 육상 경기는 러시아 선수들 없이 치러지고 있습니다.

과거 러시아 대표팀의 일원으로 어쩔 수 없이 금지약물을 복용하긴 했지만, 내부고발을 통해 스포츠의 순수성을 지키는 데 기여한 공로를 참작해 중립국 깃발을 달고라도 리우 올림픽 출전을 허락해달라던 스테파노바의 요청을 지난 7월 24일 국제올림픽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IOC)는 끝내 기각했습니다.

오늘은 다음 스토리펀딩 7화에 후보 목록으로 올렸던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기사 “The Marriage That Led to the Russian Track Team’s Olympic Ban”에 IOC의 스테파노바 올림픽 출전 불허 결정에 대한 부부의 반응을 덧붙여 소개합니다. 스테파노바를 올림픽에 보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이 빗발쳤지만, 끝내 그녀의 올림픽 출전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부부의 용기 있는 내부고발 덕분에 러시아 육상계의 조직적인 도핑이 알려졌다는 기사는 많이 났지만, 뉴욕타임스 기사처럼 그 배경에 얼마나 극적인 이야기가 있는지를 생생하게 짚은 기사는 찾기 어렵습니다. 기사 제목 아래 소개된 한 줄 요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금지약물을 복용한 육상 선수와 반도핑 기구 직원, 파경 직전까지 간 결혼 관계를 지켜내고 러시아 국가 차원의 조직적인 도핑을 만천하에 알리다.

6월의 어느 화창한 아침, 러시아 중거리 육상의 간판스타 율리아 스테파노바가 훈련에 한창이다. 800m를 3분 이내에 여섯 번 반복해서 뛰고, 이내 100m를 전력 질주로 다시 여섯 차례 뛰는 훈련이었다. 율리아 곁에는 남편 비탈리 스테파노프가 속도를 맞춰주며 함께 훈련하고 있다. 선수는 아니지만, 마라톤을 세 시간 이내에 완주한 적이 있는 비탈리는 좋은 훈련 파트너이기도 했다. 다섯 번째 세트를 마친 뒤 200m가량을 가볍게 뛰며 숨을 고르는 동안 비탈리는 힘이 든지 비틀거린 반면, 율리아의 일정한 보폭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전혀 힘들지 않은 듯한 표정에 질끈 묶어 내린 금발 머리카락이 좌우로 흔들렸다.

율리아는 곧 있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맞춰 몸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미 지난해 세운 기록으로 올림픽 출전권은 따냈지만, 남편 비탈리와 함께 러시아 육상팀의 조직적인 금지약물 복용 사실을 폭로해 국제육상경기연맹이 러시아 육상 선수단 전체의 올림픽 출전을 금지하면서 브라질에 가는 길이 막힌 상태였다. 그녀의 남은 희망은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오륜기를 달고 난민 선수들과 함께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그녀에게 예외를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연맹의 결정을 기다리며 율리아는 미국의 한 작은 도시에서 조용히 훈련하고 있었다. 도망치듯 러시아 육상계를 떠나 온 율리아와 비탈리 부부는 현재 사는 곳이 알려지기를 꺼렸다. 미국에 머무는 자신들과 두 살 난 아들의 평화로운 일상은 물론 러시아에 있는 다른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엄마한테도 저희가 머무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려드리지 않았어요.”

율리아가 말했다.

부부는 마지막 여섯 번째 세트에 돌입했다. 비탈리는 온 힘을 다해 달리며 간신히 율리아를 앞서갔다. 하지만 율리아는 결승선을 200m 남겨놓은 지점에서 기어코 남편을 앞질렀고, 끝까지 속도를 떨어트리지 않으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힘이 든지 허리를 숙여 손으로 허벅지를 짚은 채 거친 숨을 내쉬던 비탈리가 아내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었다. 100m 전력 질주는 생략하고, 간단히 조깅으로 회복훈련만 하고 오늘은 정리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 눈치였다.

율리아는 잠시 유혹에 빠졌다. 상체 운동의 여파로 아직 등이 뻐근했고, 어느덧 햇볕이 쨍쨍 내리쬔다. 기침이 심하게 들어 고생하는 아이도 빨리 보러 가야 한다. 게다가 이제는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운동을 마치고 나서 뭉친 근육을 풀어줄 마사지사도 없고,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냐, 100m 세트도 마저 뛰어야 해. 자자, 얼른 준비해.”

금지약물을 복용하던 시절에는 훈련이 이토록 힘들지 않았다. 율리아는 모든 게 훨씬 쉬웠다고 회상한다.

“스테로이드와 적혈구 생성 촉진 인자인 (에리스로포이에틴(erythropoietin)을 뜻하는) EPO를 복용했던 첫해를 아직도 기억해요.”

2007년의 일이었다. 당시 21살이었던 그녀의 800m 기록은 고작 여덟 달 만에 2분 13초에서 2분 4초대로 단축됐다.

이후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적발돼 2년 동안 대회에 뛰지 못했던 율리아는 어느덧 29살이 되었다. 율리아는 이제 약물의 도움 없이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며 눈 덮인 산이 보이는 고산지대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러시아 대표팀 코치들은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훈련하는 걸 싫어했어요. 운동의 효과를, 훈련의 대가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죠. 대신 그들은 소위 ‘약발’에 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죠.”

 

지난 6월 17일,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온 러시아 육상 대표팀의 국제대회 참가 금지 결정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육상 대표팀이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투여하고 도핑 검사를 교묘히 피할 수 있도록 샘플을 위조하는 등 조직적으로 개입해 왔다는 세계 반도핑기구(World Anti-Doping Agency, WADA)의 조사 보고서가 발표된 뒤 내린 결정이었다. 특정 선수나 지도자가 아닌 러시아 육상연맹이 관리하고 러시아 대표팀에서 훈련한 선수 전원에 해당하는 징계로, 발표 시점에서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에서도 러시아 육상 선수를 볼 수 없게 됐다. 뒤이어 국제올림픽위원회도 육상뿐 아니라 모든 종목 선수들이 더욱 철저한 검사를 통과하고 올림픽에서 뛸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옮긴이: 이후 전 종목에서 러시아가 퇴출당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IOC는 한발 물러서 올림픽 출전 여부를 종목별 경기연맹에 일임했습니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애초 러시아 육상 대표선수지만, 미국에서 훈련해 도핑에 가담하지 않았을 거라고 판단한 멀리뛰기 종목의 다리야 클리쉬나에게는 올림픽 출전을 허락했었지만, 약물 검사기록을 재검토한 뒤 출전을 금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러시아의 조직적인 도핑 혐의가 세상에 알려진 건 2014년 독일의 한 TV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덕분이었다. 다큐멘터리는 러시아 체육부 관계자와 코치, 선수들이 복용이 금지된 경기력 향상 약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결정적인 장면을 내보냈는데, 이 영상을 몰래 촬영한 것이 바로 율리아 스테파노바였다. 방송 직후 전 세계적으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세계 반도핑기구는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해 지난해 11월 러시아가 거의 모든 종목에 걸쳐 정부 기관인 체육부 주도로 금지약물 복용을 관리, 투여하고 이런 사실이 들통나지 않도록 뇌물과 협박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해 왔다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내부고발자 율리아의 이름은 100번도 넘게 등장한다. 이후 러시아 반도핑기구 소장을 지냈던 그리고리 로드첸코프도 러시아의 조직적인 개입을 인정했는데,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직접 스테로이드 성분을 섞은 칵테일을 제조해 선수들에게 마시게 했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에는 도핑 검사에 사용되는 소변 샘플을 바꿔치기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조직적으로 만연한 부정이 세상에 드러나기까지의 길고 긴 과정은 2009년 여름, 율리아와 비탈리의 첫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7살이었던 비탈리는 새로 생긴 러시아 반도핑기구(Rusada)에서 금지약물 교육과 검사를 맡은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러시아 반도핑기구의 출범은 소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온 푸틴 대통령의 작품이기도 했다. 2009년 체복사리(Cheboksary)에서는 러시아 전국체전이 열렸는데, 당시 비탈리는 반도핑기구 부스에 자리를 잡고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금지약물 관련 설명서나 기념품 따위를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비탈리는 800m 경기에 참여하러 온 율리아와 처음 만났다. 몇 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지만, 둘은 서로 호감을 느꼈고 율리아는 비탈리에게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일주일 뒤 둘은 율리아의 이모가 살던 모스크바 근교의 도모데도보(Domodedovo)라는 작은 마을에서 첫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원래는 차를 마시거나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차 안에 앉아 나누던 이야기가 길어져 그냥 줄곧 차 안에 있다가 헤어지게 됐다. 율리아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반도핑기구는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 사실을 은폐하고 두둔해주는 기구예요. 저는 거기서 일하는 비탈리가 당연히 모든 걸 알고 있을 줄 알았죠. 러시아 사람 치고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니까요.”

율리아는 비탈리에게 코치들은 어떤지, 훈련은 어떤지 이야기를 하다가 주사를 어떻게 맞고 약은 어떻게 복용하는지도 말했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러시아의 도핑 관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율리아는 자신은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처럼 경기력 향상 약물의 도움을 받아가며 훈련에 매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비탈리는 깜짝 놀랐다. 많은 러시아 운동선수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약물의 힘을 빌려 왔고, 러시아 반도핑기구가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다는 의심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조직적인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반도핑기구에서 1년 넘게 일하면서도 까마득하게 몰랐기 때문이다. 비탈리는 율리아에게 반도핑기구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깨끗하고 정정당당한 스포츠 세계를 만들고, 모든 선수가 동등하게 검사를 받도록 해야 하며 세계 반도핑기구가 정한 원칙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율리아는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선수들이 누구나 다 도핑을 하므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우리도 도핑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 코치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러시아 반도핑기구가 이를 묵인하고 도와주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비탈리는 자국 선수들의 약물 복용을 앞장서서 두둔해주는 반도핑기구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율리아는 비탈리의 순진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날 데이트가 끝날 때쯤 우리 둘은 이렇게 의견을 모았어요. 어차피 우리가 무얼 어찌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 신경 끄자고 말이죠.”

율리아는 말했다. 비탈리도 그때를 회상하며 덧붙였다.

“아무런 힘도 없는 둘이 차 안에서 괜히 열 올린 거죠, 뭐.”

하지만 비탈리는 집에 돌아온 뒤에도 율리아가 한 말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바로 그가 직장 내에서 멘토처럼 따르던 상사와 면담을 요청했다.

“도핑부터 조직적인 은폐까지 상사에게 율리아가 제게 했던 말을 빠짐없이 이야기했죠. 도대체 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이 정말 사실인지 물었어요.”

비탈리는 아마 30초도 더 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상사와 그 방에 흐르던 침묵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윽고 입을 연 상사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꺼내며 화제를 돌려버렸다. 그러고 나서 비탈리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자네, 부디 내 말을 잘 새겨들었으면 좋겠네. 그 여자랑은 다시 안 만나는 게 좋을 거야.”

비탈리는 그 순간 율리아가 해준 말이 전부 다 사실이라는 걸 확신했다.

 

율리아는 쿠르스크(Kursk)라는 곳에서 나고 자랐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발음하기 어려운 동네 이름만큼이나 힘겨웠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 있었다.

“술에 취했을 때면 엄마를 때렸어요. 언니들도 때렸고, 제게도 손찌검을 했죠. 술만 입에 안 대면 좋은 사람이었어요. 아빠는 공장에서 일했고, 우리 집에는 작지만 뒷마당도 있었고 돼지, 닭도 키웠죠. 보름 정도는 (술만 안 마시면) 아무 걱정 없이 잘 지나갔지만, 그러다가 술만 마시는 날이면 어김없이 폭력이었어요. 저는 늘 두려웠어요. 그저 어서 빨리 커서 지긋지긋한 동네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율리아는 14살이던 2000년 TV에서 시드니 올림픽 중계를 보게 된다.

“올림픽 무대에 선다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하고 그때부터 꿈을 꾸게 되었죠.”

스포츠를 좋아했던 율리아지만, 주변에서 어떻게 해야 운동선수가 되는지 알려주는 이도, 보고 따라 할 만한 롤모델도 없었다. 직업학교에 진학한 율리아는 난방 기술을 배웠다. 교내 운동회에서 500m에 출전해 3위를 차지했는데, 메달은 1등에게만 주어졌다.

“그때 그 메달이 그렇게 갖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훈련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17살이 되어 본격적으로 코치 밑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코치는 한때 3,000m 이상 장거리 장애물 달리기 선수 출신이었다. 율리아는 코치의 주 종목에도 도전해봤고, 다른 장거리 종목도 접해봤지만, 중거리 종목, 그중에서도 특히 800m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유망주의 자질은 늘 있었지만, 율리아는 늘 출발이 늦었고 또래 선수들에게 늘 뒤처졌다. 좀처럼 자신감이 붙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운동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같이 운동하는 다른 친구들에게서 처음으로 그 얘기를 들었어요. 훈련장 식당에 모여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들이 알약과 주사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선수들은 누구나 다 한다고 하면서, 이 두 가지의 도움 없이 국가대표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도 했어요. 약물 없이는 미래도 없다고요.”

코치들은 여자 800m 종목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최소한 2분대 안쪽으로 기록을 단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2분 안에 800m를 뛰려면 특정한 훈련을 해야 했는데 이 훈련은 약물의 도움 없이는 소화하기 어려웠다. 코치들은 약물의 도움 없이 낼 수 있는 최고 기록은 2분 5초 정도라고 잘라 말했다.

율리아는 코치 블라드미르 모크네프에게 자신도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약물을 복용하기로 한 것이다.

“코치는 제가 아직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훈련이 부족하다고 했어요. 이제 막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했으니,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거라면서요.”

그러던 2006년, 그녀는 폐 감염을 심하게 앓았다. 모크네프 코치는 이때 율리아를 치료하는 의사를 설득해 스테로이드 성분이 든 약과 테스토스테론을 처방하도록 했다. 그와 함께 율리아의 금지약물 복용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모크네프는 그런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녀는 어떤 운동을 얼마나 했는지를 기록한 훈련 일지, 모든 연습 기록과 투약 일지를 꼼꼼히 정리해 왔다.

“처음에 약을 먹을 때는 너무나 두려웠죠. 정말 먹어서는 안 되는 걸 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중죄를 짓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약물이라는 게 그렇게 요란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다른 달리기 선수들도 전부 다 이 약을 먹었어요. 무엇보다 그 효과가 절대 무시 못 할 수준이었거든요! 이게 사실 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약물을 먹고도 훈련은 똑같이 열심히 해요. 그런데 기록이 눈에 띄게 좋아져요.”

율리아는 2013년 세계 반도핑기구에 제출한 서면 진술서에서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맞기 시작하자마자 2분 13초 정도였던 800m 기록이 2분 8초 47로 단축됐다고 진술했다.

“2007년 여름 코치는 제게 처음으로 튜리나볼란(Turinabolan, 1970, 80년대 동독 스포츠선수들이 사용했던 근육증강제의 일종으로 현재는 금지약물)이라는 알약과 EPO를 주사했어요.”

기록은 2분 3초 47까지 단축됐다.

“원래 제 기록은 연령대 상비군에서 7위 정도였어요. 2007년 5월 12일부터 26일까지 보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튜리나볼란을 먹었어요. 코치들은 알약으로 섭취한 튜리나볼란은 약 40일 동안은 도핑 검사에 걸린다고 주의를 시켰어요.”

율리아는 또 같은 해 5월부터 10월까지 이틀에 한 번꼴로 EPO 피하 주사를 맞았다고 진술했다.

“EPO는 마지막 주사를 맞은 날부터 아흐레 정도까지 검사에 걸릴 수 있다고 했어요. 도핑 검사는 전국 대회를 비롯한 대회가 열리는 동안 불시에 계속되는데, 훈련을 비롯한 이 모든 금지약물 복용, 주사 등이 대회 기간에 절대 도핑 사실이 적발되지 않도록 철저히 계산된 계획에 따라 이뤄진다고 했죠.”

2008년 겨울에도 율리아는 2007년과 마찬가지로 금지약물을 복용했다고 썼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했는데, 이번에는 금지약물은 아니었습니다. 제 개인 기록은 2분 1초 96까지 단축됐습니다. 저는 제 연령대에서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20~23세 국가대표 상비군에 들었습니다.”

이듬해,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그녀는 계속해서 조금씩 더 약물에 의지해야 했다.

“더 많이 훈련할수록, 기록을 더 단축하려면 제 몸이 더 많은 약물의 힘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때론 금지약물을 복용한 뒤 근육이 너무 수축해 뛰지 못할 정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혈액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지기도 했고요. 저는 그저 다른 모든 운동선수도 이런 어려움을 겪으며 운동하겠거니 하고 꾹 참고 훈련에 임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배나 엉덩이의 근육에 주사를 놓고, 적혈구 생성 촉진 인자인 EPO는 팔에 있는 정맥에 주사를 놓는다. 율리아는 가장 많이 약물을 투여했을 때 많게는 하루에 세 번까지 주사를 맞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다수 코치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예를 들어 율리아의 경우는 모크네프 같은 가까운 코치만 약물을 포함해 선수의 몸 상태를 관리했다. 모프네프가 같은 곳에 주사를 너무 많이 놓는 바람에 율리아의 엉덩이에는 큰 물혹이 생기기도 했다.

“그 뒤로는 주사 놓는 법을 스스로 익혀서 제가 직접 주사했어요.”

약물의 도움을 받아 좋은 기록을 내는 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국가대표가 되자 여러 정부 기관에서 급여가 나왔다. 그저 열심히 훈련해서 달리기만 하면 한 달에 우리돈 450만 원 정도를 벌 수 있었다. 러시아 물가를 생각하면 절대 적지 않은 돈이었다. 율리아는 거의 일 년 내내 전지훈련을 가거나 대회에 참가하느라 다른 나라를 여행했다. 결국,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 살던 동네를 벗어나고자 했던 꿈을 이룬 셈이었다.

 

“그러니까 저희가 차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 끝에 괜히 무모한 짓일랑 하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던 그 첫 데이트가 8월이었죠. 그리고 두 달 뒤에 저희는 결혼했어요.”

비탈리는 웃으며 기억을 더듬어갔다.

2009년 가을 신혼부부는 이집트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율리아는 계속 자신이 국가대표가 되는 게 꿈이며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도 약물의 힘을 빌릴 생각이라고 비탈리에게 말했다. 비탈리는 물었다.

“혹시 도핑을 안 하면 지금 같은 기록을 낼 수 없는 거야?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

율리아는 쏘아붙였다.

“다른 방법이라니 무슨 소리야? 자기가 코치야? 뭘 안다고 그래?”

부부는 사사건건 의견이 갈렸다.

12월, 결혼 두 달 만에 부부는 자신들의 결정이 성급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뜻을 모았다.

“러시아의 이혼 제도는 좀 특이한 구석이 있는데요,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으면 정말 간단하고 확실해요.”

비탈리가 말했다.

“그러니까 관공서에 가서 이혼하겠다는 서류를 제출하면, 한 달 정도 그 결정에 관해 생각할 시간을 줘요. 한 달 후 정해진 날짜에 두 명 가운데 최소한 한 명이라도 관공서에 와서 이혼하기로 한 생각이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도장 찍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요. 하지만 한 달이 지났을 때 두 명 다 나타나지 않으면, 그러면 애초에 제출했던 서류는 파기되고, 이혼은 없던 이야기가 되죠. 부부는 계속 부부로 남는 겁니다.”

율리아가 12월 말 전지훈련에서 돌아왔을 때 둘은 이혼 신청 서류를 내러 관공서를 찾았다. 그러나 하필이면 연말연시라 관공서가 문을 닫았다. 비탈리는 이를 하나의 계시라고 생각했다.

“좀 더 같이 지내보면서 다시 한번 원만한 결혼 생활을 해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죠.”

하지만 율리아는 마침내 세르게이 포르투갈로프 박사의 지도와 처방을 받기에 이르렀다. 포르투갈로프 박사는 러시아 체육계에서도 경기력 향상 금지약물 전문가로 통한다. (지난해 11월 세계 반도핑기구의 조사 보고서에도 포르투갈로프 박사는 “금지약물의 공급책일 뿐 아니라 도핑 검사를 조작하고 때때로 선수에게 직접 주사를 놓기도 한 인물”이라고 적시돼 있다)

“전에 먹던 약물과 EPO, 테스토스테론 모두 그대로였어요. 달라진 게 있다면 제가 약물에 훨씬 잘 적응해 기록도 더 단축된 것이었겠죠.”

비탈리는 그때부터 러시아 반도핑기구의 부패를 소리 내 지적하고 세계 반도핑기구 관계자에게 러시아 스포츠계에 퍼진 의혹에 관해 비밀리에 정보를 건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때 이미 제가 아내인 율리아를 만나러 경기장에 가면 코치들은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대놓고 투명인간 취급했죠.”

결국, 2011년 초 비탈리는 러시아 반도핑기구에서 해고됐다.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이 이유라고 했다. 율리아도 코치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음을 감지한다. 비탈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제가 러시아 반도핑기구에서 일할 때 뇌물도 받지 않고 코치들과 도핑을 눈감아주는 데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제가 해고된 뒤에도 체육부나 협회에 있는 사람들은 모난 돌이었던 저를 다 알고 무척이나 싫어했어요.”

이 때문에 부부싸움은 더욱 심해졌다.

“이혼하자, 그만두자, 다 집어치우자는 말을 안 하고 넘어간 주가 없을 걸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이 시기를 갈라서지 않고 넘어왔는지 저희도 이해가 안 갈 정도니까요.”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율리아는 허벅지를 다쳤다. 올림픽 무대에 서는 꿈을 4년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고자 코치도 바꾸고 2016년 리우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잡았다.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에 힘들어하던 남편은 율리아가 결혼 생활에서도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 것이라 짐작했다.

“새 코치를 선임하고, 다음번 올림픽을 목표로 다시 출발하는데, 그다음은 사사건건 다투기만 하는 남편 차례겠구나 생각했죠.”

연말연시 연휴인 12월 30일 부부는 다시 관공서를 찾았다. 이번에는 문이 닫혀있지 않았고, 이들은 이혼 서류를 제출했다. 한 달 조금 넘게 다시 한번 생각해볼 시간이 주어졌다. 이혼을 최종 확정하는 날짜는 이듬해 2월 8일로 잡혔다. 그리고 율리아는 전지훈련을 떠났고, 비탈리는 모스크바에 남았다.

“이번에는 진짜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집에 있던 아내의 물건을 전부 정리해서 쿠르스크에 있는 장모님 댁으로 보냈죠. 저도 지칠 대로 지쳤고, 더는 이 결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어요.”

그러던 2013년 2월 초에 율리아는 국제육상경기연맹으로부터 2년간 출전금지 징계를 받았다. 혈액 검사에서 세계 반도핑기구가 금지한 약물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이유였다.

“저는 희생양이 된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코치님이 하는 말을 한 번도 거역해본 적이 없어요. 시키는 대로 훈련하고 시키는 대로 약을 먹었죠. 그런데 코치들은 징계가 결정되고 나서도 그냥 이를 받아들이라는 말밖에 안 하더라고요. 2년 동안 근신하면서 혹시나 허튼소리는 밖에 흘리지 말라고 했죠. 이 기회에 푹 쉬고 건강관리 잘하면서 지내면 2년 동안 급여는 계속 나올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2년 뒤인 2015년부터 다시 리우 올림픽을 준비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율리아가 받은 충격과 당혹감은 이내 분노가 되었다. 율리아는 세계 반도핑기구에 제출한 서면 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징계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그 순간, 제가 여태껏 알고 있던 세계는 바로 산산이 조각났습니다. 러시아의 다른 선수들, 코치들이 계속해온 그대로 금지약물을 복용하며 운동하기 위해 내가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가 처음 훈련을 받은 어린 시절부터 철저히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화를 참으며 생각했다.

“세 가지를 생각했어요. 첫째, 2년 동안 근신하면 다시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코치와 체육부 관계자들의 말은 거짓말이다. 둘째, 한 번 더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적발되면 그때 나는 평생 선수 자격을 박탈당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아직은 법적으로 부부관계로 남아있는 남편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지만 도핑과의 전쟁에 자신을 내맡겨 왔다.”

율리아는 전지훈련지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러시아 체육부 관계자와 면담이 예정돼 있었다. 아마도 관계자는 율리아가 받은 징계의 세부사항을 검토한 뒤 징계가 풀리는 대로 바로 다시 약물을 복용하고 훈련을 재개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속해줄 것으로 보였다. 모스크바에서 할 일은 하나 더 있었다. 2월 8일에 맞춰 관공서로 가서 이혼 서류에 마지막 도장을 찍는 일이었다.

비탈리와 율리아는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만나자마자 바로 관공서로 가서 도장을 찍고 헤어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2009년 첫 데이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차 안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율리아는 자신에게 내려진 국제육상경기연맹의 징계, 자신이 지금껏 저지른 실수들, 그리고 코치들의 배신에 관해 낱낱이 털어놓고는 그동안 남편의 생각이 옳았음을 인정했다. 율리아는 또 비탈리에게 곧 러시아 체육부 관계자와 면담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도 말했다.

부부는 율리아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좁혀보았다. 먼저 율리아가 체육부 관계자와 면담에 가 조직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입증할 수 있는 대화 내용을 스마트폰으로 몰래 녹취하는 방법이 있다. 녹취만 있다면 비탈리는 이를 세계 반도핑기구에 제출해 러시아 체육계의 명백한 잘못을 고발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녹취를 시도하는 건 율리아가 비탈리의 가망 없던 싸움에 가세해 어쩌면 확실한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쥐여주는 셈이었다. 아니면 예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무모한 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관공서로 가서 오늘부로 남이 되는 선택지도 있었다.

율리아는 비탈리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관공서 대신 체육부 관계자를 만나기로 한 사무실로 갔다. 율리아 스테파노바는 그렇게 내부고발자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훈련을 마친 뒤 나는 율리아, 비탈리 부부와 함께 그들이 사는 월세 500달러짜리 아파트를 찾았다. 2014년 12월 독일 방송에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 일주일 전쯤 다큐멘터리가 몰고 올 어마어마한 파장을 고려해 부부는 갓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러시아를 떠나 독일로 몸을 피했다. 그들은 베를린에서 1년 정도 살았고, 2015년 비탈리에게 일자리 제의가 왔을 때 미국으로 건너왔다. 결국, 일자리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그대로 미국에 살기로 했다. 집값이 비싸지 않고 율리아가 고지대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비탈리는 일자리를 찾고 있고, 가족은 그동안 모아둔 돈과 그들을 후원해주는 이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땀을 씻어낸 율리아는 이내 감자와 돼지고기를 넣은 그레이비 스튜를 끓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다가도 남편이 대신 답을 해주면 율리아는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비탈리는 이제는 사이가 정말 좋아졌다고 말했다.

“으르렁대던 시절은 진작에 끝났죠. 금지약물 때문에 우리가 이혼까지 갈 뻔했지만, 결국 금지약물과 싸우는 과정에서 저희 결혼관계도 다시 살아났죠.”

대단히 외롭고 힘겨운 싸움이었다. 둘 사이에 돈독한 신뢰가 싹트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비탈리는 체념한 듯 웃으며 지금도 러시아 육상계에서 자신들은 역적이라고 말한다.

“아무도 저희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아요. 저희가 꽤 많은 것의 명성에 먹칠하긴 했죠.”

아마 이번 스캔들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스포츠에 엄청난 투자를 해온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일 것이다. 그러나 비탈리와 율리아 부부도 갖은 고초를 겪었다. 당장 독일 방송에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뒤 그들은 살해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하조 제펠트(Hajo Seppelt)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부부가 참고 견뎌야 했던 온갖 중상모략과 비난, 협박, 위협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여전히 러시아에서 ‘공공의 적’입니다.”

쿠르스크에 있는 율리아의 어머니도 이웃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한다. 병원 간호사는 그녀에게 “어떻게 그런 몹쓸 배신자를 키웠느냐?”고 쏘아붙였다. 러시아 중부 우랄산맥 근처에 있는 첼랴빈스크(Chelyabinsk)에 사는 비탈리의 아버지도 아들과 며느리가 나라를 팔아먹은 간첩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TV 뉴스를 접했다.

하지만 러시아 밖의 세계는 부부의 용기와 결단력에 찬사를 보냈다. 1972년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이자 미국 반도핑기구의 첫 번째 사무총장을 지낸 프랭크 쇼터(Frank Shorter)는 스테파노프 부부가 스포츠계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했다며 정직한 땀방울을 흘리는 이 세상 모든 운동선수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말했다.

미국 반도핑기구의 수장인 트래비스 타이가르트(Travis Tygart)도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 고국의 스포츠계에 퍼진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자 정의를 위해 일어선 그 용기는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깨끗한 스포츠, 정직한 스포츠의 가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율리아와 비탈리 부부에게 큰 빚을 진 겁니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올림픽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리아는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게 약물을 투여한 코치나 체육부 관계자들에게 화가 나는 건 아니에요. 그보다도 저 자신에게 화가 나죠. 왜 처음부터 잘못된 관행에 발을 들였을까, 왜 처음부터 막지 못했을까? 오랫동안 잘못을 저질렀던 제 모습을 떠올리면 그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뉴욕타임스)

원문보기

 

* IOC는 러시아 선수단의 올림픽 출전 여부는 각 종목 경기연맹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발표하면서, 과거에 도핑으로 적발됐던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스테파노바도 이에 따라 리우에 갈 수 없습니다. IOC는 성명서에서 스테파노바 부부의 노력에 사의를 표하면서 대신 부부를 올림픽에 특별 초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비탈리는 IOC의 무책임한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습니다.

“IOC는 내부고발자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겁니까? 율리아가 대단한 특혜를 요구한 것도 아니잖아요? 불가항력으로 가담한 도핑을 폭로한 대신 이제 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있으니, 올림픽 무대에 서는 꿈이라도 이룰 수 있게 해달라고 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IOC는 올림픽에서 뛰는 건 허락할 수 없다며 VIP 관중석 티켓을 제시했어요. 우리를 돈으로 사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 스테파노바는 본문에 나와 있듯이 신변 안전을 위해 정확히 어디에 머무는지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있지만, 최근 스테파노바 선수의 이메일 계정과 반도핑기구에서 관리하는 선수 정보 입력 시스템이 해킹당한 것으로 알려져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Recent Posts

[뉴페@스프] 공격의 고삐 쥔 트럼프, TV 토론으로 승리 방정식 재현할까?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3 일 ago

“‘기생충’처럼 무시당한 이들의 분노” vs “트럼프 지지자들, 책임 돌리지 말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가 "진보 진영의 잘난 척"에 대한 반감이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다줄 수 있다는…

4 일 ago

[뉴페@스프] “‘진짜 노동자’의 절망,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미국 대선의 진짜 승부처는 여기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5 일 ago

이번 대선은 50:50? “트럼프도, 해리스도 아닌 뜻밖의 변수는…”

미국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 결과는 여전히 예측하기 어려운 팽팽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특히…

1 주 ago

[뉴페@스프] 이야기꽃 피우다 뜨끔했던 친구의 말… “조금씩 내 삶이 달라졌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1 주 ago

[뉴페@스프] 스벅 주문법이 3천8백억 개? 창업자 호소까지 불러온 뜻밖의 악순환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1 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