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차단 헤드폰을 쓰고 랩탑 앞에 앉은 새라 허위츠(Sarah Hurwitz)는 영부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떠올립니다. “넘어가는 부분이 좀 매끄럽지 못한 것 같은데요?”, “이 분들의 명예를 기리기 위한 표현으로 더 좋은 것이 없을까요?”와 같은 말들이죠. 영부인의 연설문 작가인 허위츠가 오바마 부부를 위해 일한 지도 8년, 영부인의 연설문만을 담당한 것도 이제 7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간 미셸 오바마가 공식 석상에서 했던 말은 대부분 허위츠가 직접 썼거나 다듬은 것입니다.
“연설문을 쓸 때면 머리 속에 영부인이 말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글을 쓰게 됩니다. 영부인이 지난 8년 간 어마어마한 양의 피드백을 하셨고,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계시기 때문이죠.”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38세의 연설문 작가는 부통령 앨 고어 시절 연설문 담당 인턴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대선을 앞둔 경선 당시에는 힐러리 클린턴의 캠프에서 일하고 있었죠. 클린턴의 경선 패배 인정 연설 이틀 후, 허위츠는 오바마 캠프에서 일자리 제안을 받았습니다. 새 직장에서 그녀에게 주어진 첫 과제는 미셸 오바마의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용 연설문이었습니다. 당시 미셸 오바마의 이미지는 애국심 부족에, 언제나 화가 나 있는 엘리트주의자였습니다. 허위츠는 경선 과정에서 자신이 클린턴을 위해 썼던 연설 때문에 새로운 상사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두번째 만남에서 그들은 무려 90분 간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나의 배경과 가족은 이러하며, 나의 가치관은 이렇고, 전당대회에서는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두 사람은 연설문 초고를 주고받으며 수정을 거듭했습니다. 시카고의 노동자 가정에서 자란 어린 시절, 정치에 냉소적이었던 시절을 거쳐, 남편이라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당시 연설문은 오바마의 인기도 상승에 크게 기여한 히트작으로 남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영부인 보좌진에 연설문 작가가 포함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1300여 회의 대중 연설을 했던 엘리노어 루즈벨트에게도 개인 연설문 작가는 없었죠. 최근 들어 영부인들도 명확한 내용을 담은 연설을 하고 주목을 받는 일이 많아졌지만, 연설이 정책이나 정치에 관한 연설인 경우는 드뭅니다. 오바마-허위츠 팀은 정치적인 내용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을 피하면서도, 부드러운 제안과 같은 절제된 형식으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2015년, 전통적인 흑인 대학인 터스키지 대학의 졸업식에서 연설했던 미셸 오바마는 전세대 활동가들의 업적에 부담을 느끼는 졸업생들에게 미국의 첫 아프리카계 영부인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졌던 이중의 부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어떤 영부인이 될 것인지, 어떤 사안에 중점적으로 관심을 둘 것인가와 같은 질문 외에도, 공포와 편견에서 비롯된 반응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내 목소리가 너무 크지는 않은지, 너무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지, 남자의 기를 죽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지, 반대로 너무 부드러워 보이지는 않는지, 너무 엄마같아 보이지는 않는지, 충분히 직장 여성처럼 보이는지도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이 연설문을 담당했던 타일러 레첸버그(Tyler Lechtenberg)는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이전에 미셸 오바마의 연설문 작가로 일했습니다. “미셸 오바마는 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연설, 감정적인 중심이 있는 연설을 좋아합니다. 통계와 수치를 들먹이는 연설 말구요.”
허위츠도 미셸 오바마와 일하면서 그녀의 개인사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연설문 작가로서 그녀의 일은 매번 연설문에서 이런 개인사를 새롭게 변주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화들을 찾아내 사용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백악관 연설문 작가로서 유명세를 타고 헐리우드까지 진출한 동료들과 달리, 허위츠는 자신을 크게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일해왔습니다. 그녀는 현재 이스트윙의 사무실에서 유일한 부하직원인 데이비드 카벨(David Cavell)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영부인의 연설문 작가는 결코 널널한 자리가 아닙니다. 영부인이 연단에 서야하는 중요한 이벤트가 끊이질 않죠. 유대교에 대한 수업을 듣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 개인 생활의 전부지만, 그나마도 갑자기 좋은 구절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러닝머신을 멈추고 내려오는 나날의 연속입니다. 변호사 생활을 했던 미셸 오바마의 철저한 시간 관리 덕분에 그마나 숨쉴 틈이 생깁니다. 영부인은 중요한 연설을 미리미리 준비하고 외우고 연습하기 때문에, 막판에 급히 무언가를 수정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요.
최근 허위츠는 영부인과 함께 뉴멕시코의 미국 원주민 학교 졸업식에 동행했습니다. 영부인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허위츠는 자신이 쓴 연설문임을 잊을만큼 감동했다고 말합니다.
“영부인의 연설을 들으며 흑인 노예의 후손이 원주민 학생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이 아이들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했고, 아이비리그에 진학한 졸업생도 상당수다, 이런 장면이 나올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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