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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펀딩] 너무 평화로운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사랑에 관한 글을 묶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뉴욕타임스의 “Modern Love” 섹션에 올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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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남편과 나는 20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혼 이후의 과정이 너무나도 평온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콜로라도 산속의 작은 마을에 혼란을 일으키며 가십 아닌 가십 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집 앞에 차를 나란히 세워둔 모습이 종종 목격되었고, 일상적으로 식사를 함께하는가 하면, 아이들이 불편하게 엄마, 아빠의 집을 오가는 대신 어른들이 양쪽 집을 오가며 지냈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이웃들은 이혼 전후 크게 달라진 점을 알아챌 수 없었고, 나는 우체국 같은 곳에서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우리가 이혼한 게 맞다는 말을 되풀이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하도 여러 번 말해 대사도 술술 나옵니다.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서로를 좋아해요. 둘 다 충돌을 싫어하고 조용한 성격이죠. 누가 잘못해서 헤어진 게 아니에요. (적어도 저로서는) 그냥 관계가 자연스럽게 수명을 다한 것뿐이에요.

이웃들에게 이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이별이 항상 적대심과 증오로 가득 찬 과정인 것은 아니라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이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우리 인류가 이렇게나 진화했다고 말이죠.

또 이런 말도 합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이렇게 지낸다고요. 힘든 시기에 아이들 입장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그런 흔한 이유에 더해, 최근 몇 년간 아이들이 산불, 홍수와 같이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 때문에 이미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라면서요.

우리 지역을 덮친 다양한 자연재해를 함께 겪은 이웃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귓가에는 당시의 사이렌 소리와 헬리콥터 소리, 뉴스 속보가 아직도 맴돌고 있으니까요. 이는 우리가 이혼을 조용히 진행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런 대화가 끝나면 나는 차에 오르는 이웃들에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듭니다. 이혼이 가져온 아픔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최근 슬픔 반, 안도 반의 심정으로 주저앉아 내 결혼은 진부한 룸메이트 관계로 전락한 지 오래였고, 그랬기 때문에 감정적 소모 없이 이혼이라는 큰일을 치러낼 수 있었음을 새삼 실감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던 일 같은 것은 이웃들에게 털어놓지 않습니다. 사실은 침묵에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인데 말이죠.

내가 이웃에 털어놓지 않는 이야기, 내 혀끝을 맴도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부부싸움을 좀 할 걸 그랬어요. 온 골짜기가 다 듣게 싸워볼 걸 그랬죠. 남편과 나의 입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우리 둘 다 솔직한 대화에는 능숙하지 못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말이 옳았습니다. “내 혀가 내 마음의 분노를 말할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분노를 감추고 있는 마음이 부서져 버릴 것이오.” 나는 내 마음속의 분노, 쌓여가는 억울함, 상처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죠. 내게 관심을 기울여달라거나, 나를 보살펴달라는 요구도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가장 큰 아픔은 결혼 생활이 끝났다는 게 아니라, 우리의 관계가 애초부터 목소리를 높일 만한 가치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점차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영화에서건, 책에서건, 현실에서건 커플들을 볼 때면 그들이 싸우는 방식에 주목합니다. 식당에서도 몸을 기울여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강가 벤치에 앉아서도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가장 열심히 엿듣는 대화는 “진짜? 그 말밖에는 할 말이 없어?”, “그 정도 말로는 납득이 안 돼.”, “그건 말이 안 돼, 자기.”와 같은 대사가 포함된 대화입니다.

말하자면 상대를 밀어붙이는 종류의 대화죠.

이런 커플들을 보면 다가가서 안아주며 그런 태도를 고수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남편과 이런 식의 대화를 시도했을 때, 나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남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죠.

그날은 아주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집 안은 조용했고, 나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부엌에 서서 잡지를 읽고 있었고요.

직장에서 온종일 회의를 하느라 의자에서 일어날 일이 없는 남편은 늘 부엌에 서서 잡지 읽는 시간을 즐겼습니다. 그날 나는 문득 우리가 지난 10년간 소파에 나란히 앉은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신발 끈을 묶거나 스케줄을 확인하면서 잠깐 함께 앉게 되었던 적이라면 몰라도, 함께 앉아서 영화를 보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섹스를 하거나, 싸움을 하고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요.

갑자기 내 몸속에서는 분노가 끓어 넘쳤고, 남편을 말로 밀어붙여 보고 싶어졌습니다. 왜 그는 나와 함께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내지 않는지, 왜 나는 한 번도 남편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는지, 무엇보다도 왜 우리가 이 문제로 화끈하게 싸워본 적조차 없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부부 상담을 받아 봤지만, 우리가 사랑을 경험하고 주고받는 방식에 대해 가진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을 밝혀내기는 했죠. 최소한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신체 접촉이나 끌어안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달랐습니다. 남편은 저녁이나 주말에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는 외출을 좋아했죠. 남편은 두 사람의 몸이 가까이 닿아있는 느낌을 싫어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수록 우리 사이는 멀어졌습니다. 그 과정은 아주 조용히 진행되었죠. 때로는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입을 열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남편도 그랬겠죠.

하지만 결국 말을 꺼내지는 못했습니다. 입을 닫고 있어야 할 이유가 줄줄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나는 비이성적이고 징징대며 바가지를 긁는 아내처럼 보이기 싫었고, 남편은 피곤한 상태고, 집 안에는 아이들이 있으니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죠.

그날 나는 소파에 앉아, 부엌에서 잡지를 넘기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내 쪽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지만, 곧 잡지로 돌아갔죠.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내 몸속에 쌓여있던 분노와 한 번도 터뜨리지 못한 싸움이 한숨과 함께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숨 속에 뒤섞인 이 모든 감정은 눈에 보일 듯 생생했습니다. 물 위를 떠다니는 반짝이 같은 감정들이 마룻바닥으로 쏟아져 내렸고, 나는 약에 취한 것 같은 기분이 되었습니다. 햇살이 만들어내는 무늬가 갑자기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반짝임이 조용히 소용돌이쳤고, 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며칠 후, 나는 마침내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혼을 원한다고요. 우정 덕분에 20년을 버텼고 우리 둘 다에게 나쁘지 않은 관계였지만, 나는 그 이상을 원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며 우아하게 다가올 이별에 대처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으로 부모의 이혼이라는 힘든 일을 잘 치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확신했죠.

그는 소파 옆자리에 앉아 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 감정과 기분을 털어놓는 것이 어색하고 새로워서 목소리가 흔들렸지만, 결국은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마침내 이야기를 끝낸 나는 남편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마음을 굳힌 거야?” 그가 물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기다렸죠. 사실은 확신이 없었습니다. 나나 남편이 큰 반응을 보이기를 기다렸습니다. 이 대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화는 언제나처럼 조용히, 이성적으로 흘러갔습니다. 분노를 드러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그날 이후로도 고요함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나는 우리가 소리를 높이거나 화를 낼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분노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서로를 향한 사랑 때문이 아닐까 하는 가슴 아픈 생각도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니까요. 우리 둘 다 폭력으로 상처 입은 험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고요함 속에서 안식과 기쁨을 찾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사랑은 평생 가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침묵도 결국은 존중이나 애정, 사랑보다는 비겁함에 가까운 것이었죠. 속으로 숨기만 하고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던 나와 남편은 상황을 이렇게 만든 공범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까지 평온한 일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같은 집에서 그대로 지내고, 남편과 내가 순서를 정해 드나들며 아이들과 함께 머무릅니다. 숲은 다시 초록빛을 되찾았고, 지난 5년간은 산불도 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는 수다 떨기를 좋아합니다. 생각, 영화, 노래, 자신의 일과, 매너 없는 운전자들, 말들이 들판에 서 있는 멋진 풍경까지 무엇이든 이야깃거리로 삼습니다. 내가 나의 말이나 생각으로 받아치거나 밀어붙이지 않으면 오히려 화를 내는 성격의 소유자죠. 대화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웃으면서 대화에 응합니다. 때로는 복잡한 언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제 침묵에 끌리는 일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드라마 같은 인생은 딱 질색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혼자 슬며시 웃곤 합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고, 평화로운 삶의 방식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전 남편과 나는 여전히 산책을 하면서 서로의 근황과 아이들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다가 가끔은 주제 있는 대화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혹시나 우리가 그런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는지 보려고요. 하지만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대화는 어느새 명절, 앞으로의 일정과 계획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고 말죠. 추수감사절, 딸아이의 바이올린 연주회, 마을 회관에서의 주민 모임에 관한 이야기로요.

그렇게 걷다 보면 이웃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오겠죠. 우리가 너무나도 차분하고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으니, 혹시 다시 합친 게 아닌지를 물어올 것입니다. 어쩜 이렇게 품위 있게 갈라섰냐며 칭찬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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