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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시티, 축구, 스포츠, 자본주의, 그리고 경쟁과 평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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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미클트웨이트, John Micklethwait, 블룸버그 편집장 – 레스터시티의 우승 이야기를 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레스터시티 골수 팬) – 이하 미클

> 매년 제가 같은 내기에 돈을 거는 건 꽤 유명했어요.

존 미클트웨이트는 현재 블룸버그의 편집장입니다. 그 전에는?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장이었죠.

(스덥) > 그럼 런던에서 일하셨으니 런던에 사셨겠네요?

(미클) > (한숨) 그렇죠. 런던에 살았죠…

미클트웨이트 씨는 레스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자랐습니다. 아직도 그 동네에 집이 있죠. 오랫동안 미클트웨이트 씨가 연례행사처럼 빠지지 않고 꼭 하던 것이 있으니, 바로,

(미클) > 1990년대 중반부터 저는 축구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우승팀을 맞추는 내기에 돈을 걸어 왔어요. 매년 잊지 않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이 8월 11일이 제 생일이거든요. 늘 그맘때쯤 시즌이 시작하니까 매번 제 생일 즈음에 돈을 걸었죠. 이코노미스트에서 일하는 내내 매년 여름 잊지 않고 돈을 걸었고요.

(스덥) > 20년 가까이 매년 잊지 않고 시즌 시작 전에 레스터시티의 리그 우승에 돈을 걸어오셨다는 거죠?

(미클) > 그렇다니까요. 20년 동안 거의 돈을 딴 적이 없죠.

앞서 영국 도박업체들이 레스터시티의 리그 우승 배당률을 5,000 대 1로 잡았다고 말씀드렸죠.

(미클) > 제가 왜 그랬을까요? 이직과 함께 미국으로 와버렸잖아요. 그래서 8월에 영국에 없었고, 그만 매년 치르던 그 연례행사를 깜빡하고 말았어요.

(스덥) > 보통 한 번에 얼마 정도 돈을 거셨죠? 20파운드?

(미클) > 네, 최근 들어서는 20파운드(약 3만4천 원) 걸었죠.

(스덥) > 이거 꽤 가슴이 쓰린 질문이 될 것 같지만, 매년 해오던 대로 돈을 거셨다면 지금쯤 10만 파운드(약 1억 7천만 원)를 따셨겠군요?

(미클) > 네. 말해 뭣하겠습니까마는, 10만 파운드를 받았겠죠.

(스덥) > 제가 궁금한 건 사실 이겁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내기에 돈을 걸었다면 손에 넣으셨을 10만 파운드와, 절대 적은 돈은 아니죠. 그렇지만 또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그런 떼돈인 것도 사실은 아니긴 하고요. 아무튼, 그 10만 파운드와 평생 매년 빼먹지 않고 내기를 걸었다가 정작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 내기에 당첨되었을 그해에만 깜빡하고 돈을 못 걸었다는 웃픈 이야기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어떤 걸 택하시겠습니까?

(미클) > 글쎄요, 일단 올 시즌 축구를 보면서 제가 돈 거는 걸 깜빡했다고 해서 레스터시티가 우승 못 하기를 바란 건 전혀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들 수가 없어요. 평생을 응원해온 팀이니 그냥 본능적으로 이 팀이 무조건 잘 되기를 바라고 응원하게 되는 거죠. 멍청한 제 모습을 털어놓는 거라 조금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사실 한 가지 더 솔직히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는데요, 레스터가 계속 1위를 달리는 시즌 내내 저는 계산을 잘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20파운드 걸었으면 1만 파운드를 땄을 텐데’하고 있었죠. 네, 10만 파운드가 아니라 1만 파운드라고 생각했어요. 곱셈을 잘못한 거죠. 당연히 1만 파운드도 엄청 큰돈 이지만, 아무튼 자릿수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그러는 거예요. “아빠, 5천 대 1이면 10만 파운드를 딸 뻔한 거 아녜요?”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정말 진심으로 속이 쓰리더라고요.

(스덥) > 20파운드 건 손님에게 10만 파운드를 내줬어야 하면 도박업체들이 파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많잖아요. 실제로 도박업체들도 다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비상이라는 이야기도 많고요.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혹시 데이터를 좀 보신 게 있으시다거나 아니면 그냥 직감적으로 도박업체들이 정말 울상일 것 같으세요? 아니면 반대로 속으로는 웃고 있을 것 같으세요? 왜냐면 또 반대로 5천 대 1의 배당률에 돈을 건 사람이 정말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 별로 손해를 본 게 없다는 말도 있거든요.

(미클) > 어떻게 아셨죠? 뒤에 하신 말씀에 완전히 공감합니다. 믿을 만한 기사나 자료를 보면요, 도박업체들은 언제 가장 손해가 크냐면, 유력한 우승 후보가 예상대로 우승했을 때, 많은 사람이 2대 1, 혹은 3대 1의 배당률에 돈을 걸었을 때 그 돈을 치러야 할 때가 제일 손해가 큽니다. 경마에서 배당률의 원리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1등 할 가능성이 작은 말에는 사람들이 돈을 잘 안 걸잖아요. (시즌 전에) 레스터시티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할 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많은 돈을 건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한 가지 더. 사람들은 레스터시티 우승을 보고, 또는 예상치 못한 말이 갑자기 1위를 차지하면 배당률이 낮은 팀이나 말에도 돈을 걸어볼까 생각하게 되죠. 도박업체들은 장기적으로 앉아서 돈을 더 벌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도박사들이, 도박업체들은 계속해서 우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영국의 대형 도박업체 가운데 하나인 코랄의 존 힐이 한 말을 들어보죠.

(존힐) > 도박업체들은 레스터시티가 우승을 확정하는 날 무려 2천만 파운드(약 340억 원)를 잃게 생겼습니다. 코랄은 영국 전역에 1,800여 개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고객도 대단히 많죠. 주로 경마와 축구가 주요 상품이지만 최근에는 크리켓에 베팅도 시작했고요. 날씨를 두고도 베팅을 합니다. 영국인들은 날씨를 예측하는 걸 또 좋아하거든요.

존 힐은 코랄 고객 가운데 레스터시티의 우승에 돈을 건 고객은 총 114명이라고 밝혔습니다. 돈을 건 시점에 따라 배당률이 좀 달랐지만 대개 1천 대 1 이하였죠.

(존힐) > 영국의 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이변이 아닐까요? 아니 전 세계적으로 봐도요. 과거 사례를 살펴봤더니 2003년 오픈(브리티시 오픈 골프 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한 벤 커티스에 책정됐던 배당률이 300대 1이었더라고요. 경마에서 베팅을 중개할 때도 보통 가장 낮은 배당률이 250대 1 언저리예요. 그러니까 5천 대 1은 정말 어마어마한 거죠.

그나저나 도박업체들은 배당률을 어떻게 결정할까요?

(존힐) > 매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저희는 각 팀의 전력을 분석하죠. 대개 최근 우승을 했거나 우승 경쟁을 했던 강팀들의 우승 확률이 높게 점쳐지고 배당률도 그에 따라 책정되는 게 보통입니다. 레스터시티는 이전 시즌에 간신히 강등을 면했고, 올 시즌도 강등권 전력으로 분류됐죠. 5천 대 1이라는 가격표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공공정책을 가르치는 찰리 윌란(Charlie Wheelan) 교수는 배당률이 대단히 과학적으로 책정되는 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윌란) > 자, 라스베가스에 가서 도박을 할 때는 어쨌든 우리가 확률을 정확히 알고 하게 됩니다. 룰렛을 할 때는 빨강, 검정의 확률을 계산하고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블랙잭을 할 때도 어떤 카드가 나올 확률이 얼마인지 알면 숫자의 합이 21을 넘을지 안 넘을지를 계산해서 그 확률에 돈을 거는 식이죠. 각각의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알면 기댓값을 구할 수 있는 겁니다. 또 다른 방법이 바로 지난 기록을 수천, 수만 번 훑어보는 겁니다. 그를 토대로 확률을 추정하는 거죠. 문제는 레스터시티의 성적을 예측하는 데 참조할 만한 경기 기록이 수천 번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지난 20년 데이터를 모아봤자 수백 게임 정도 될까요? 문제는 그때그때 선수들이 다르고, 같은 선수라도 전성기 때와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을 때가 다릅니다. 전술의 상성에 따라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요. 그러다 보면 결국 근거로 삼을 만한 과거 기록 자체가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면 과학적인 분석 대신 인간의 판단이 개입하게 됩니다. 심하면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보다 감에 기대어 승패를 예측하기도 합니다.

5천 대 1이 어느 정도 확률이냐면,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죽을 확률이 그 정도입니다. 다른 식으로 말해볼까요? 5천 대 1은 우리가 올 시즌 20개 팀의 전력으로 5천 년 동안 리그를 열면 그 가운데 1년은 레스터시티가 우승한다는 뜻입니다. 이 확률이 정말 과학적이라면 올해 레스터시티의 우승은 5천 년에 한 번 나올 법한 대사건인 셈이죠. (프리코노믹스)

(5부는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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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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