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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펀딩] 아내의 죽음 뒤에 찾아온 내 인생의 두 번째 사랑, 상대는 남성입니다

* 스토리펀딩 1화에 올린 연재 후보 가운데 해리스 워포드 전 상원의원이 자신의 경험을 풀어낸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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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살이 되었을 때만 해도 나는 내가 남은 삶 동안 다시 사랑을 찾아 재혼까지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펼쳐진 20년의 놀라운 시간 속에서 내 인생의 두 번째 사랑 이야기가 쓰였습니다.

1996년 1월 3일 자정을 앞둔 깊은 밤, 병실의 적막 속에서 전화벨이 울려 퍼졌습니다. 나는 아내 클레어의 병상 옆에서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대통령께서 통화를 청하십니다.” 아내가 급성 백혈병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에 빌 클린턴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이미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대통령의 목소리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아내는 내 손을 잡은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우리는 부부로 48년을 함께한 평생의 동지였습니다.

아내의 죽음 이후 찾아온 봄은 유독 싸늘했지만, 나는 살아있음에 감사했고 친구들과 가족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공공 서비스와 관련된 일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내심 새로운 과제가 생긴 것이 기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남은 생을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내 인생에 클레어와 나누었던 종류의 사랑은 다시 없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 클레어와 나는 세상을 구하려던 열혈 청년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일을 하면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나는 전후 평화를 위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합을 지지하는 단체인 “학생 연방주의자(Student Federalists)”를 창립했습니다. 이후 공군에 입대해 복무하느라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는 클레어가 회장을 맡아 조직이 전국 규모로 성장하는 과정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후 우리의 사랑과 모험은 50년간 계속되었습니다. 1991년 내가 처음으로 상원의원에 도전했을 때 클레어는 일을 그만두고 선거운동에 뛰어들어 우리 캠프의 대승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4년 재도전에서 내가 아깝게 미끄러졌을 때는 나 대신 클레어가 후보로 나섰더라면 당선되었을 것이라는 날카로운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인생관을 지닌 채, 행복하게 반세기를 함께했습니다. 대공황 시기에 유년기를 보낸 것은 같지만, 우리 가족이 그 시기를 부유하게 보냈지만, 장인은 대공황으로 타격을 입었던 탓에 낙천적인 나와 달리 클레어는 회의론자 쪽이었습니다.

1963년, 우리 부부는 함께 철학자 마틴 부버의 예루살렘 서재를 방문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부버는 저서 “유토피아에의 길(Paths in Utopia)”에서 아이디어와 운명이 창의적인 시간 속에서 마주하면 다시 선하고 위대한 아이디어가 탄생한다고 썼습니다. 나는 그에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도 평화가 싹틀 수 있는 창의적인 시기가 곧 찾아오겠냐는 희망 섞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부버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클레어가 냉소적인 웃음을 던지며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런 때가 오려면 멀고도 멀었네요.”

아내의 말을 들은 부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창의적인 시기는 자주 찾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언젠가는 찾아오죠. 그리고 그런 때가 오면 당신의 현실주의적인 태도 덕분에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부버는 나에게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당신은 영락없는 낭만주의자군요. 당신 같은 낭만주의자 옆에는 클레어 같은 현실주의자가 꼭 필요하다는 걸 잊지 말기 바랍니다.”

클레어가 죽었을 때, 우리는 둘 다 일흔을 목전에 둔 나이였습니다. 또 한 번의 로맨스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5년 후, 플로리다 주 포트로더데일의 해변에서 나는 “창의적인 때”가 찾아왔음을 직감했고 이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때는 한낮, 선탠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볕을 쬐기 위해 아름다운 바다를 등지고 해안을 따라 선 콘크리트 건물을 향해 누워있었습니다. 나는 혼자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 중이었는데 그 모습이 해변을 지나던 두 사람의 시선을 끌었던 모양입니다. 두 사람은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고, 나는 그렇게 매튜 찰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매튜의 호기심 많고 사려 깊은 태도와 매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알아가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죠. 수십 년의 나이 차이에 하는 일도 전혀 달랐지만, 우리는 단숨에 친해졌습니다.

매튜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25세 청년의 영혼을 갖고 있었고, 나는 그 점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매튜도 나에게 “마음이 청춘인 사람”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제법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역 신문에서 스노우보드를 탄 채 대담한 공중 제비를 돌고 있는 매튜의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요.

우리는 미국 곳곳을 누볐고 나중에는 함께 유럽을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베스트프렌드 사이가 되었죠. 우리는 서로 첫눈에 끌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우리의 감정이 사랑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클레어 말고 다른 사람과 이런 감정을 나눠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아들딸들에게 매튜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용기를 내기까지는 3년이 걸렸습니다. 함께 여행을 다니고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담아둔 앨범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꺼냈죠. 우리는 이미 매우 진지한 사이였지만, 처음에는 둘러둘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나의 아이들도 매튜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매튜의 부모님도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리 관계가 아주 자연스럽지만, 이상한 일이라며 깜짝 놀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곧 서로를 향한 우리의 마음이 굳건하고 진지하다는 것을 알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함께한 지도 벌써 15년이 되었으니까요.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이성애자”, “동성애자”, “그 사이”와 같은 이름표를 붙여 구분하려 합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떤 성별의 인간을 사랑하는가로 나 자신을 정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멋진 여성과 부부로 반세기를 함께 했고, 그 후에도 두 번째 행복을 찾을 수 있었던 운 좋은 사람일 뿐입니다.

나는 살아생전에 결혼 평등이 실현되는 “창의적인 시기”가 찾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관심은 미국의 공공 서비스의 개선이라는 다른 사안에 있었고, 결혼의 정의와 같이 법과 대중의 인식 속에 깊이 뿌리내린 개념이 바뀐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비관적이었던 나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나란히 행진하던 시절, 나는 때가 맞아 떨어지면 십 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도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결혼을 할 수 있도록 결혼의 정의를 확대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입니다.

매튜는 클레어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평생 나의 원동력이었던 정치적 대의명분에 그는 큰 관심이 없고, 나 역시 매튜가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디자인이라는 영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힘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본능적인 감정 덕분에 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구절에서 새로운 감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머리와 두뇌의 도움이 있어도

우리는 얼마나 본능에 충실한 채 행복한가

저 위 빛을 향해 우리를 이끄는 최고의 인도자는

첫눈에 반한 사랑 같은 열정적인 편애이니”

나는 이런 열정적인 편애의 감정을 평생 두 번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이 아흔에 오바마 대통령이 “혼인의 존엄성”이라 명명한 결혼의 자유를 대법원이 판결로 강화해준 시대를 목도하는 행운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혼인은 개인의 타고난 성별, 성적인 선택이나 소망이 아닌 사랑을 기반으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매튜와 나는 이런 생각들을 마음에 새긴 채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4월 30일, 아흔 살의 나와 마흔 살의 매튜는 서로의 손을 잡고 결혼 서약을 나눌 것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겠다는 그 약속을 말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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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ope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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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밌게 읽었습니다. 익숙한 글이다 싶었는데, 화제가 되어서 4월 말에 한 번 읽은 기사더군요. 제가 인상깊게 읽었던 댓글 두개를 함께 소개할게요. 하나는 독자로 부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인용1), 하나는 뉴욕타임즈에서 추천한 댓글입니다(댓글2)

    Jbl (보스톤) 4월 25일

    이 이야기에는 뭔가 빠진 게 있네요. 보통 남성이라면 유명한 게이 여행지인 포트 로더데일 같은 것으로 여행을 가거나, 심지어 물 밖으로 나와서 50살 어린 남성에게 말을 걸지 않죠- 근데 그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게이와 만난 것이기도요. 잔인하게 굴려는 건 아니지만, 이 이야기에서 빠진 것은 해리스가 클레어와 부부관계를 유지하던 50년 동안, 그가 게이 크루즈 여행을 다니고 몰래 게이를 만나고 다녔던 부분입니다. 분명 해리스는 게이남성을 유혹하는(picking up)하는 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실제 게이인 제게는, 이 이야기에서 해리스 워포드 씨가 그의 성적지향이 75살의 어느날 갑작스레 찾아온 계시와 같았던 것으로 포장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그건 당신이 써내려 갈 이야기이지만, 전 당신이 말한대로 이 일들이 일어났을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아요.

    Glenda Fagan (알버키키) 4월 25일.

    많은 코멘트들은 그들이 매우 친밀한 관계로 발전한 것이, 함께 나눈 경험과 관심을 바탕으로한 3-4년 동안의 친구관계를 뒤로 한 것이라는 걸 잊은 것 같군요. 이건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 단순한 '꼬시기'같은 게 아니에요. 매튜도 위에서 누군가 얘기한 대로 바다에서 누군가를 "유혹"한 게 아니구요. 소위 꽃뱀같은 같은 사람들은 결혼이나 경제적 보상때문에 15년 동안 기다리면서 옆을 지키진 않아요. "왜 우리는 누군가와는 불꽃이 튀는데, 다른 사람과는 그렇지 않을까?", "왜 우리는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람을 사랑할까?" 이건 우주의 미스테리 같은 거에요. 비록 전 동성 간의 육체적 관계같은 건 겪은 적이 없었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니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열어두고 싶습니다. 우리 중 누가, 사랑이 우릴 어디로 인도할지를 알 수 있을까요?

    • Elliott SeokWon John님,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뉴욕타임스 독자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글을 소개할 때는 댓글들 가운데 같이 생각해볼 만한 댓글을 번역해 소개하는 것도 저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늘 생각은 하면서도 시간이 많지 않다는 핑계로 거의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직접 댓글을 옮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동성애를 아름답게 묘사했지만,
    한국에 이 흐름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고, 자연의 섭리가 있는데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만난다면 몇 년 후 세상에 남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소아성애자가 어린애와 관계를 가질 때도, 가정과 교실에서 폭력을 쓰면서도, 바람을 피우면서도,, 모두 '사랑'하니까 한다고 하지요.

    지금 미국에서는 소수 동성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남녀 화장실 구분도 없애려 하고, 영국에서는 남학생들 교복으로 치마를 입을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남자와 여자의 몸은 다른 거지, 차별이 아닌데
    뭐든지 같게 해야 평등이라고 합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이 한다고 한국이 따라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왜 사람사는걸 종교의 관점으로만 보나요? 한국에 이 흐름이 들어오는게 아니라,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되기 전부터 동성애는 존재해왔고요, 자연의 섭리라 하셨는데,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서 동성애는 나타납니다.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면, 이 사실을 무시하는것도 신에 대한 반항 아닐까요?

    소아성애는 정신병이고요, 폭력과 불륜을 사랑해서 그랬다는건 핑계고 갖다붙이기지, 진정 사랑해서 그런건 아니라는거 누가 모릅니까.
    비유가 잘못되었네요.

    미국은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을 위해 잘못된 인식을 바꾸려 노력하는 나라입니다.
    남녀화장실 구분을 없애려하는건 정체성 갈등과 성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린치를 줄이기 위해 실시하는거고요.
    네, 남녀의 몸은 다릅니다, 그렇지만 특정 성별이니까 특정 옷만 입어야한다는 강요는 차별이고 폭력입니다.
    선택의 권리를 동등하게 줄 때 평등해지는 거고요.
    (사족이지만 남자들의 고간은 시원하게 유지해야 정자운동과 성기능이 원활하다고하니까 남학생들이 치마입는게 나쁠것은 없겠네요)

    현재 성평등 운동에 있어서 가장 앞선 모습을 보여주는 나라로는 캐나다도 있습니다.
    캐나다는 총리가 앞장서서 성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을 지지하며, 이들을 위한 제도도 많이 도입하고 있지요.
    여권의 성별을 남/녀 He/She가 아닌, 제3의 성으로도 표기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다양성을 포용하고, 약자를 아울러 사회에 융합하도록 하는것이 바람직한 국가라고 볼 수있지요.
    어디에서나 다양성을 억압하고 획일적인 모습만 강요하면 그 집단은 망한다는게 사실입니다.
    이성애만 정상이고 동성애/무성애가 비정상인게 아니에요. 지극히 정상이고요, 이걸 억지로 막는게 비정상이죠.
    한국처럼 획일화되고 경직된 사회구조로는 다양성을 못 버티고 차별과 폭력만이 계속되겠죠.
    발전이 있으려면 변화를 수용해야하는게 당연한거고요, 그리고 구시대적인 기준을 강요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을거에요.
    선진국이 왜 선진국인지 좀 깨달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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