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열린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 도중 영국의 축구 스타 출신이자 현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게리 리네커는 트위터에 “Pepe is such a dick!” (우리말로 옮기면 “페페 저 등신 같은 놈” 정도가 됩니다) 이라고 남겼습니다. 순식간에 수만 번 리트윗되고 난 뒤에 리네커는 한 번 더 트윗을 남깁니다. “Pepe is an enormous dick!”. (우리말로 옮기면 “아, 페페 진짜 쓰레기” 정도가 됩니다) 어제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 페페는 승부를 떠나 모든 축구팬에게 가장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습니다.
먼저 후반에 페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수비수 필리페 루이스와 살짝 부딪쳤을 때 어디가 진짜 아픈 사람처럼 운동장 위를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상황을 지켜본 주심에게는 별로 속아 넘어갈 일이 없는 테스트였습니다. 그러나 페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필리페 루이스의 손끝이 자신의 볼을 스치자마자 혼신의 연기에 돌입합니다. 순간 얼굴을 감싸고는 마치 눈을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클라텐버그 주심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인터넷에 유행했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두 차례 명백한 시뮬레이션 액션에 옐로카드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라운드 위의 페페는 계속 페페답게 활개를 치고 다녔습니다.
페페는 교체되어 들어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야닉 카라스코와도 한 차례 엉켜 넘어졌습니다. 또다시 똑같은 짓을 반복할 줄은 몰랐지만, 정확히 또 얼굴을 감싸고 어딘가 대단히 아픈 척하느라 애를 쓴 페페에게 옐로카드는 또 나오지 않았습니다.
페페는 연장전에 가서야 첫 번째 옐로카드를 받았습니다. 올 시즌 32경기에 출전한 페페가 받은 옐로카드 숫자는 고작 7장. 거칠기로 유명한 페페치고는 정말 적은 숫자입니다. 페페가 파울을 덜 하는 수비수가 됐다는 평과 심판 성향을 그날그날 잘 파악해 경고를 받지 않는 딱 그 선까지만 파울을 하는 법을 익힐 만큼 페페가 노련해졌다는 평가가 동시에 나옵니다.
우승을 확정 지은 뒤 밀라노 산시로 경기장을 환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는 페페의 모습은 수많은 축구팬에게 짜증을 안겼습니다. 물론 페페는 신경 쓰지 않았겠죠. 레알 마드리드는 11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중앙수비수로 선발 출전해 준수한 활약을 한 페페도 분명 승자였습니다.
지난 몇 년간 페페는 거칠고 지저분한 플레이의 대명사였습니다. 유명한 소설 속 악당처럼 비열하게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를 무마하곤 했죠. 같은 스페인 리그 팀인 헤타페의 하비에르 카스케로의 등을 축구화 밑바닥으로 찍어버렸고, 이어 후안 알빈을 거칠게 밀쳤습니다. 레드카드를 받고 경기장 밖을 빠져나오면서는 모두에게 욕설을 내뱉는 장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힙니다.
스페인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인 엘 클라시코에서는 페페가 출전할 때마다 거의 무슨 사건이 터졌습니다. 2012년에는 반칙을 당하고 쓰러진 메시의 손을 슬쩍 밟고 지나가기도 했죠.
지난밤 페페의 모습은 교묘하게 속임수를 쓰거나 반칙을 하려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더 이상 두고 봐선 안 된다는 절실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사후 징계를 내리면 된다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사후 징계가 가장 소용없는 경기입니다. 결승전에서 저지른 반칙으로 내년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예선 첫 경기를 결장하는 징계를 받는다 해도 페페는 물론 많은 선수가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겁니다. 넉 달이나 남은 내년 시즌 예선 첫 경기는 그저 한 경기에 불과할 만큼 지금 결승전이 중요하니까요.
심판을 속여 상대편 선수에게 어떤 카드를 받게 하려 한 만큼 똑같이 징계를 주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페페가 필리페 루이스나 야닉 카라스코에게 옐로카드나 레드카드를 주려고 데굴데굴 구르며 연기를 한 만큼 그 징계를 페페에게 내리면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심판이 현장에서 정확히 잘잘못을 가려내기가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압니다. 오심도 어쩔 수 없는 경기의 일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결승전만 해도 세르히오 라모스의 선제골은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어도 되는 상황이었고, 페르난도 토레스가 얻어낸 페널티킥은 보기에 따라 반칙을 유도하려는 동작으로 판단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페페의 행동만큼은 절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페페는 경기장에 서 있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경기장 곳곳을 샅샅이 비추는 중계 카메라가 늘어난 만큼, 심판이 보지 못한 장면을 카메라가 명백하게 잡아냈다면 이를 대기심이 주심에게 알려서 오심을 줄이자는 의견이 나옵니다. 저는 이 의견을 특히 지지하는 편인데, 그런 방법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걸 제 눈으로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독일월드컵 결승전에서 (어제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춘 젊은 감독) 지단이 이탈리아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찌와 충돌한 장면은 사실 경기장에 있던 많은 사람이 처음부터 보지 못한 장면이었습니다. TV 중계도 처음에는 이 장면을 놓쳤었죠. 심판이 경기를 멈춰 세웠을 때 잠시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야 누군가 심판에게 이어폰으로 상황을 알려주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경기의 흐름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축구에서 비디오 판독 도입을 막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경기 흐름을 최대한 끊지 않으면서도 오심을 막고 심판 판정의 정확도를 높이는 일. 두 가지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규정만 바꿔도 그 효과는 당장 나타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에게 “어설프게 심판 눈 속이려 해봤자 수많은 카메라가 상황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그 장면을 대기심이 보고 주심에게 즉시 알려줄 테니 지금 주심의 눈을 속여봤자 30초 안에 시뮬레이션이 발각되면 바로 퇴장이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만으로 효과가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 새로운 규정의 이름은 페페 규정(Pepe rule)이 되어야 합니다. 고맙게도 이렇게 축구의 중요한 정신을 살리는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 선수가 바로 페페니까요.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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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이는 짜증이 나고, 당한 선수는 분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게임의 일부분이 아닌가 생각 하게 됩니다.
마치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하듯, 또는 슬쩍 나쁜짓을 하고 아무런 처벌을 안받듯...
예전에 농구코트의 악동 로드니가 생각이 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