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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맹(Memory Blindness)을 아시나요?

생각해봅시다.

당신은 범죄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본 것을 경찰에게 그대로 진술했습니다.

며칠 뒤, 당신이 쓴 진술을 누군가 수정하거나 부분적으로 다시 썼다고 해 봅시다. 과연 당신은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까요?

지금 영국에서는 이 문제가 뜨거운 이슈입니다. 1989년 축구 경기장에서 96명이 사망했던 힐스보로 참사에서 경찰이 고의로 목격자의 증언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최근 발견되었습니다.

올해 초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발표한 한 연구는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자신의 첫 진술이 변경되었을 때 이를 잘 눈치채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보였습니다. 심지어 변경된 진술은 그들에게 새로운 가짜 기억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원래 기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을 연구진들은 “기억맹(memory blindness)”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자신의 앞선 선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를 일컫는 “선택맹(Choice blindness)”에 빗대어 만든 단어입니다. 즉, 연구진은 선택맹 현상이 목격자의 기억에서도 발견되는지를 확인한 것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박사과정에 있는 케빈 코크란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시행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연구에서 그들은 186명의 사람들에게 여성이 세 명의 사람과 이야기하다 그 중 한 명에게 지갑을 소매치기 당하는 슬라이드를 보여주었습니다. 15분 뒤, 이들은 경찰이 목격자에게 하는 것과 비슷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질문 중에는 좀도둑이 입고 있던 옷의 색깔과 좀도둑의 키와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15분 뒤, 이들은 질문과 자신이 답한 내용을 연관짓는 메모리 게임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과 답의 쌍 중, 답 세가지는 원래 그들이 한 답이 아니라 임의로 변경된 것이었습니다. 즉, 좀도둑이 입고 있던 옷의 색깔에 원래의 답이 아닌 다른 색깔을 알려준 것입니다.

15분 뒤, 이들은 다시 첫 번째 했던 것과 같은 내용의 질문에 답해야 했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이 얼마나 잘못된 정보를 자신의 기억으로 믿게 되는지를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간단한 조작이 사람들의 기억을 바꾸게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가자의 상당수가 기억 게임에서 자신의 답이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이들은 두 번째 질문 때 그 조작된 내용을 답했습니다.

두번째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379명의 참가자에게 위와 비슷한 실험을 시행했습니다. 단, 두번째 실험에서는 도둑이 자동차에서 라디오를 훔치는 슬라이드 쇼를 보여주었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는 대신 일렬로 늘어선 용의자들 중 도둑을 찾아내게 했습니다. 그 후, 그들에게 실제로 그들이 고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그들이 골랐다고 알려주었고, 다시 잠시 후 도둑을 찾게 했습니다.

두번째 실험에서 첫 번째 고른 도둑이 아닌 다른 도둑을 고른 이의 비율은 53.7%나 되었습니다. 이는 과반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나중에 고른 사람이 처음 고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결과는 2014년 마스트릭트 대학의 연구결과인, 대다수의 증인들이 기억맹 현상을 겪으며, 특히 48시간 이후 사람의 얼굴에 대한 기억은 더욱그렇다는 결론과도 일치합니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이런 기억맹 현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거짓 이야기를 받아들이며 조작된 기억을 진짜 기억으로 믿는 것이지요.

이런 인간의 특성은 목격자의 진술에 가장 크게 의존하는 오늘날의 법정에서 특히 문제가 됩니다. 위의 실험에서 본 것처럼 목격자는 잘못된 정보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바꾸게 될 수 있습니다. 법정은 이런 증거를, 특히 힐스보로 참사에서와 같이 경찰이 목격자의 진술을 조작할 수 있는 과정이 있을 때에는 더욱 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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