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풀베다의 뛰어난 기술과 렌돈의 정치를 향한 원대한 비전이 의기투합해 진가를 발휘한 곳이 바로 멕시코입니다. 이는 특히 야당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수권 정당이 되고자 하는 제도혁명당(PRI)이 자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국민행동당(PAN, Partido Acción Nacional)의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은 70년 넘는 제도혁명당의 선거 독재를 끝내고 야심 차게 임기를 시작했지만, 이내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특히 마약 범죄를 억누르지 못해 마약 조직이 활개를 치면서 대낮에 길거리에서 총격전이 일어나고 상대편 조직원을 살해한 뒤 목을 베 거리에 걸어놓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등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제도혁명당은 주지사로서의 임기를 훌륭히 마친 젊은 정치인 페냐 니에토를 후보로 추대합니다.
세풀베다는 사실 멕시코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공적인 영역에 발을 담그는 게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렌돈은 그런 세풀베다가 멕시코에 직접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는 가능한 한 일정을 짧게 잡도록 했고, 오갈 때마다 자신의 전용기를 내주며 세풀베다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세풀베다가 무더운 멕시코만의 타바스코라는 곳에서 한 정치인의 계정을 해킹했는데, 알고 보니 이 정치인은 마약 조직과 한통속이었습니다. 마약 조직의 세풀베다 암살 계획을 눈치챈 렌돈 휘하의 보안팀은 세풀베다에게 그날 밤 호텔 방에서 자는 대신 방탄 차량에 숨어있으라는 지시를 내리고 다음 날 몰래 세풀베다를 멕시코시티로 귀환시켰습니다.
멕시코 정치는 사실상 삼당 체제입니다. 페냐 니에토는 좌우 양쪽에서 공격을 받았습니다. 제도혁명당보다 더 보수적인 국민행동당은 사상 첫 여성 대통령 후보로 호세피나 바즈케스 모타(Josefina Vázquez Mota)를 내세웠고, 좌파 정당인 민주혁명당(PRD, Partido de la Revolución Democrática)은 멕시코시티 시장 출신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를 내세웠습니다.
초반 여론조사에서 니에토 후보는 다른 후보들보다 지지율에서 20% 이상 앞선 선두를 지켰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습니다. 세풀베다와 해커들은 민주혁명당 선거사무소의 인터넷 라우터에 스파이웨어를 설치했습니다. 이로써 세풀베다는 민주혁명당 선거 캠프 전체의 모든 통화, 이메일을 자기 집 안방 들여다보듯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국민행동당 캠프에도 마찬가지로 스파이웨어를 설치한 세풀베다는 상대편 후보가 주요 연설문을 작성하고 수정하는 내용을 실시간으로 받아봤습니다. 참모들의 다음번 회의 일정, 후보의 동선까지 캠프 내에서 공유되기도 전에 세풀베다가 먼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써도 됐습니다. 한번은 애플, 블랙베리, 안드로이드 전화기를 해킹하는 데 특히 효과가 좋다고 알려진 러시아산 소프트웨어를 5만 달러에 현찰로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소셜미디어 여론을 조종하는 데 꼭 필요한 트위터 계정들 가운데 소위 A급 유령 계정으로 분류되는 계정을 사들이는 데도 돈을 물 쓰듯 썼습니다. A급 계정이란 적어도 생성된 지 1년이 넘은 계정으로 봇이나 누군가가 조종하는 듯한 티가 나지 않는 계정을 말합니다.
세풀베다는 그런 A급 계정 수천 개를 모아 관리하며 니에토 후보가 마약 범죄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같은 주제를 갖고 실제로 토론을 벌이는 것처럼 꾸며 이슈 몰이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실제 소셜미디어상에서 주고받는 토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여론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정교하게 사람을 흉내 낼 필요가 덜한 일에는 3만여 개 트위터 봇을 이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좌파 오브라도르 후보의 지지율이 높아질수록 멕시코 통화인 페소화 가치가 떨어진다는 주장을 제기한 뒤에 이 주장을 띄우고 재생산하며 퍼뜨리는 데 봇을 활용한 겁니다. 통화 문제는 오브라도르 후보 측이 스스로 약점으로 여기고 있는 분야였습니다. 세풀베다는 이런 사실을 선거 캠프 내부 메모를 빼돌려 알아낸 뒤 적극적으로 공략한 겁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니에토 후보와 제도혁명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세풀베다는 그야말로 물불 안 가리고 다 했습니다. 할리스코(Jalisco) 주의 주지사 선거는 끝까지 향배를 알 수 없는 접전이 펼쳐졌는데, 세풀베다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투표 당일 새벽 3시에 ARS로 녹음된 내용의 메시지를 담아 수만 건의 전화를 유권자들에게 걸었습니다. 발신자는 좌파 후보인 엔리케 알파로 라미레즈(Enrique Alfaro Ramírez) 후보로 표시됐습니다. 곤히 자야 할 새벽에 전화를 받은 유권자들은 당연히 화가 났고, 알파로 후보는 간발의 차로 패했습니다. 타바스코 주지사 선거에서는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들의 지지를 받던 국민행동당의 헤라르도 프리에고(Gerardo Priego) 후보를 공격했습니다. 유령 페이스북 계정으로 동성애자가 프리에고 후보를 지지한다는 페이지를 만든 겁니다. 보수적인 지지층이 흔들렸습니다. 세풀베다와 해커들이 어떤 식으로 선거에 개입했는지 알게 된 프리에고 후보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쩐지 무언가 너무나 미심쩍었어요.”
5월에 페냐 니에토는 멕시코시티의 이베로아메리칸 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젊은이들로부터 인기가 많지 않았던 그를 향해 야유와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자리를 지키기 난처해진 니에토는 경호원의 비호를 받으며 근처 건물로 숨어야 했습니다. 항간에는 급히 화장실로 몸을 피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습니다. 니에토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사건이었고, 오브라도르 후보의 지지율이 급등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세풀베다는 또 한 번 반전의 카드를 물어옵니다. 오브라도르 캠프가 고용한 컨설턴트가 기업인을 만나 오브라도르 후보 측이 돈이 없으니 600만 달러를 후원해달라고 부탁하는 영상이 공개된 겁니다. 선거법을 위반했을 소지가 다분한 대화 내용이었습니다. 이 영상을 빼돌렸다는 해커도 원본 영상이 언제 어디서 촬영됐는지는 모른다고 말했지만, 세풀베다의 해커들은 이미 몇 달 전부터 문제의 컨설턴트 루이스 코스타 보니노(Luis Costa Bonino)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앞서 2012년 2월 렌돈은 세풀베다에게 보니노의 이메일주소 세 개와 전화번호가 담긴 이메일 한 통을 보냅니다. 이메일 제목은 “일거리(Job)”였습니다)
세풀베다는 해당 컨설턴트의 개인 홈페이지를 마비시켜버린 뒤 홈페이지를 찾아오려는 기자들을 다른 유사 사이트로 유도했습니다. 그 사이트에는 코스타 보니노가 써놓은 것처럼 보이는 장문의 해명 글이 올라와 있었는데, 우루과이 출신인 그가 멕시코 선거 캠프에서 일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며칠 뒤 코스타 보니노는 오브라도르 후보 진영에서 떠났습니다. 최근 그는 당시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감시받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어디까지 자신을 감시하고 감청하고 있었는지는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상대편이 우리 편 주요 인사의 휴대전화 통화 내용을 엿듣는 건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누구나 다 하고 있으니까요. 선거 캠프에서 일할 때는 전화상으로 하는 모든 대화를 상대편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다 듣고 있다고 가정하고 통화했습니다.”
페냐 니에토 후보 측의 공보팀은 이 문제 관해 입을 닫았습니다. 제도혁명당 대변인은 렌돈이 페냐 니에토 혹은 다른 제도혁명당 후보를 도와 일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렌돈은 2000년 8월부터 지금까지 16년 동안 멕시코 제도혁명당 후보들의 선거를 도왔다고 말합니다.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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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흥미로운 자료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본도 읽어봤는데 시사점이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