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선거는 안전합니까? (3)
2016년 4월 6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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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풀베다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금은 언제나 현찰로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계약금으로 절반을 먼저 받고 나머지는 일을 다 마친 후에 받는 식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갈 때는 늘 위조여권을 사용했으며, 선거 캠프 관계자와 접촉을 최대한 피하며 호텔에는 반드시 혼자 투숙했습니다. 그가 머무는 방에 들어오는 누구도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를 몸에 지니고 올 수 없었습니다.

대개 의뢰는 직접 전달을 받았는데, 세풀베다는 렌돈이 자신에게 목표 대상과 이메일 주소록, 전화번호 등이 담긴 메모를 전달하는 식이었다고 말합니다. 세풀베다는 그 메모를 들고 호텔 방으로 들어와 암호화된 파일에 해당 정보를 입력하고는 메모가 적힌 종이는 태워버리거나 변기에 물을 흘려 폐기했습니다. 렌돈은 이메일을 보낼 때 암구호를 사용하곤 했는데, 애무를 뜻하는 단어 “caress”는 공격하라는 의미였고, 음악을 듣는다는 의미의 “listen to music”은 전화를 도청하라는 지시였습니다.

렌돈과 세풀베다는 함께 있는 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썼습니다. 둘은 보통 두 달에 한 번씩 전화기를 바꿔가며 추적이 어려운 암호화된 휴대전화로만 대화를 나눴습니다. 세풀베다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일종의 일회용 이메일 계정을 이용해 렌돈이 자신의 컨설팅 회사 내에 지정해놓은 중개인을 통해 렌돈에게 업무 진행 경과를 보고했습니다.

한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때마다 대단히 엄격한 자료 폐기 절차가 뒤따랐습니다. 데이터별로 중요도에 따라 등급이 색깔별로 다르게 매겨져 있었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세풀베다는 우선 빨강 딱지가 붙은 등급의 데이터를 모두 폐기합니다. 이 파일들은 세풀베다와 그 일에 연루된 이들을 감옥에 집어넣고도 남을 만큼 위험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도청한 통화 내용, 해킹한 이메일 내용, 해킹 대상자 명단, 선거 캠프에 비밀리에 보고한 성과를 정리한 파일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전화기, 하드 드라이브, USB 드라이브, 컴퓨터 서버 등 물건들은 모두 물리적으로 부숴놓습니다. 출장 일정표, 급여 내용, 후원금 모금 계획 등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문서들은 암호화된 이동식 드라이브에 저장돼 급여 정산차 일을 맡긴 선거 캠프에 마지막으로 검토를 받습니다. 이 데이터도 일주일이 지나면 물론 깨끗이 지워집니다.

대개 일감을 받은 세풀베다가 직접 사람을 골라 팀을 꾸린 뒤 보고타에 있는 오피스텔이나 아파트에 모여 일을 진행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실력으로는 정평이 난 해커 7~15명 정도를 후보로 두고 일감에 맞춰 골라 썼는데, 출신 국가에 따라 특화된 개인기가 있었다고 세풀베다는 말합니다. 브라질 출신 해커는 바이러스나 스파이웨어를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고,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 출신 해커들은 시스템이나 소프트웨어의 약점을 귀신같이 찾아냈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 해커는 휴대전화 감청의 귀재였습니다. 멕시코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해킹 기술이 뛰어났지만, 말이 너무 많아서 세풀베다는 개인적으로 멕시코 출신 해커들을 잘 쓰지 않았습니다.

며칠 정도면 할 수 있는 간단한 일부터 최소한 몇 달은 잡고 진행해야 할 복잡한 업무까지 일도 다양했습니다. 온두라스에서는 공격보다 방어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세풀베다는 포르피리오 로보 소사 대통령 후보의 웹사이트와 컴퓨터 네트워크 등이 상대편 후보가 고용한 해커들로부터 뚫리지 않도록 보안 업무를 맡았습니다.

과테말라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정, 재계 주요 인사 여섯 명을 감청했습니다. 감청한 내용은 암호화 처리한 뒤 메모리에 담아 렌돈에게 전달했습니다. 세풀베다는 이 정도 일은 매우 간단한 축에 속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감청을 의뢰한 건 과테말라에서 우파 성향인 국민진보당(PAN, Partido de Avanzada Nacional) 관계자로 렌돈의 오랜 고객이라고 세풀베다는 덧붙였습니다. 한편 국민진보당 측은 렌돈과는 어떤 교류도 없었으며, 세풀베다가 말한 관계자도 당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2011년 니카라과에서는 저격수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렌돈을 통하지 않고 직접 일을 의뢰받아 진행한 몇 안 되는 사례이기도 한데, 세풀베다는 삼선에 도전한 좌파 대통령 오르테가를 직접 공격했습니다. 그는 오르테가 대통령의 부인이자 정부의 대변인직을 맡고 있던 로사리오 무리요의 이메일을 해킹해 각종 고급 정보를 빼돌렸습니다.

2012년 베네수엘라 선거판에 뛰어든 세풀베다는 여느 때보다 훨씬 적극적이었습니다. 조심스러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건 아마도 차베스에 대한 개인적인 적대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네 번째 임기에 도전하는 차베스를 떨어뜨릴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노라고 생각한 세풀베다는 유튜브에 당시 국회의장이자 차베스의 측근인 디오스다도 카베요의 이메일을 뒤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올립니다. 사실상의 선전포고였던 셈입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아는 해커들로만 팀을 꾸리던 원래 방식을 버리고 국제적 해커 단체인 어나니머스(Anonymous)에게도 도움을 청해 함께 차베스의 웹사이트에 맹공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카베요 국회의장의 트위터 계정을 해킹한 세풀베다에게 렌돈은 축하 인사로 보이는 듯한 말을 건넸습니다. 2012년 9월 9일 (늘 그렇듯 암호화된 이메일에서) “당신 뉴스 타겠네(Eres noticia).”라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이 해킹을 언급한 것으로 보이지만, 당사자인 렌돈은 그런 이메일을 보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세풀베다는 이메일의 스크린샷 열두 장과 원본 이메일 여러 통을 보여줬습니다. 어떤 정치인, 어떤 후보의 무엇을 해킹해서 어떻게 됐다는 내용의 보고서들은 렌돈의 컨설팅 회사의 간부들에게 가는 내용이었습니다. 각각의 해킹 내용에서 해커들이 쓰는 은어가 꼬리표처럼 붙어있었는데, 예를 들어 어떤 문서 뒤에는 해킹 완료를 뜻하는 “Owned”가 쓰여 있었습니다. 세풀베다는 베네수엘라 대선 2주 전 차베스 대통령의 홈페이지를 해킹해 원하는 시점에 홈페이지를 마비시킬 수 있었다는 점을 입증한 스크린샷도 보여줬습니다.

차베스는 또다시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다섯 달 뒤 암으로 숨졌습니다. 이어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차베스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가 승리했는데, 세풀베다는 마두로의 트위터 계정을 해킹한 뒤 그 계정으로 직접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국외로부터 조직적인 해킹 음모가 있다.”는 비난 성명과 함께 나라 전체의 인터넷을 20분 동안 꺼버렸습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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