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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쇼(見性): 월스트리트를 호령하는 인공지능 (1/3)

11월 6일 아침. 대니얼 네이들러(Daniel Nadler)는 눈을 뜨자마자 오렌지 주스를 한 잔 따라 들고 랩탑 컴퓨터를 열었다. 곧 있으면 노동 통계청이 월간 고용지표를 발표하는 8시 30분이다. 네이들러는 뉴욕 첼시에 있는 아파트 부엌 식탁에 앉아 초조한 듯 컴퓨터 새로고침 키를 자꾸 눌렀다. 그가 세운 회사의 소프트웨어 켄쇼(Kensho)가 통계청이 발표한 데이터를 모아 한창 분석하는 중이었다. 2분 만에 켄쇼의 분석 내용이 보고서 형식으로 화면에 떴다. 짧은 전체적인 평에 이어 보고서는 과거 유사한 고용지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토대로 투자 실적을 예측하는 도표와 그래프 13개를 정리해 보여줬다.

네이들러가 스스로 미리 꼼꼼히 검토해보려고 했어도 다 훑어볼 수 없을 만큼 수십 가지 다양한 데이터베이스에서 수천 가지 숫자, 자료를 모아 분석한 내용이었다. 8시 35분, 노동 통계청이 자료를 발표한 지 5분 만에 켄쇼가 내놓은 분석은 고객사인 골드만삭스에 제공된다. 켄쇼가 미국인 전체 임금 수준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제대로 분석했는지 정도를 한눈에 확인하는 것이 네이들러가 자신에게 주어진 몇 분 안 되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검토였다.

켄쇼의 가장 중요한 고객인 골드만삭스는 켄쇼의 최대 투자자이기도 하다. 올해 32살인 네이들러는 은행에서 실제로 켄쇼의 보고서를 받아보는 옵션, 파생상품 트레이더, 펀드 매니저 같은 고객들에게 보고서 내용이 어땠는지 확인하며 나머지 아침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점심 약속에 가려고 집을 나선다. 우버를 탄 네이들러의 목적지는 맨해튼의 웨스트사이드 하이웨이 바로 앞에 있는 골드만삭스의 통유리 건물. 이 건물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깔끔하게 다린 셔츠에 정장 차림이지만, 네이들러는 대개 루이뷔통 가죽 샌들에 알렉산더 왕의 단정한 티셔츠와 바지 차림이다. 네이들러네 집에는 이런 조합으로만 신발까지 열 벌이 있다.

이런 꾸밈없는 옷차림과 미적 감각은 하버드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여름이면 찾아가곤 했던 일본에서 배웠다. 네이들러는 일본의 여러 신사를 두루 다니며 명상 수련을 하곤 했다. (켄쇼라는 회사 인공지능 프로그램 이름은 우리말로 음을 달면 견성(見性)에 해당하는 한자어의 일본식 발음이다. 일본 불교의 선 사상에서 사물과 자연의 이치에 대한 첫 깨달음을 얻는 상태 혹은 그 깨달음을 일컫는 말이 켄쇼다) 네이들러는 여러 편의 고전적 연애시를 쓴 시인이기도 하다. 올해 그가 쓴 시를 묶어 파라 슈트라우스&지루 출판사가 책을 펴낼 예정이다.

네이들러를 만나 인터뷰한 날이 바로 노동통계청이 월간 고용지표를 발표한 11월 6일이었다. 인터뷰는 골드만삭스 빌딩 맞은편에 새로 지은 세계무역센터(1 World Trade Center) 건물 45층에 있는 켄쇼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열 명 남짓한 켄쇼 직원들이 큰 방 하나에 자유롭게 흩어져 일하고 있었다. 수족관에 사무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요란한 전자음악까지, 전형적인 스타트업 사무실의 모습이었다. 사무실 한편에 있는 사장실에는 폐기한 전신주를 고쳐 만든 넓은 책상과 겉에 천을 댄 큰 가죽 의자, 그리고 같은 천을 씌운 수납식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사장실 문을 닫고 나서 곱슬머리에 하얀 피부를 지닌 네이들러는 수납식 의자에 앉았다. 발을 뒤로 빼고 앉은 네이들러는 이내 그날 골드만삭스 고객들로부터 받은 평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다음번 보고서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됐으면 좋겠다는 조언도 있었지만, 켄쇼의 가공할 만한 일 처리 속도에 대한 감탄이 대부분이었다.

“와, 저라면 지금 저 정도 일을 하는 데 이틀은 꼬박 걸렸을 거예요.”

“아예 우리 팀에 딱 이런 일만 전담하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냥 이렇게 보고서 만드는 게 그 사람이 하는 일의 다였어요.”

네이들러가 전한 사람들의 반응은 이런 식이었다. 잘난 척하거나 으스대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네이들러는 이런 상황을 진지하게 곱씹으며 켄쇼나 켄쇼를 비롯한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금융업 전반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고 있었다. 앞으로 10년 안에 금융업계 종사자의 3분의 1, 많게는 절반 정도가 켄쇼나 다른 자동화 소프트웨어에 밀려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네이들러는 내다봤다.

주식 시세를 표시하는 일이나 실제 증권을 사고파는 일이 온라인에서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저임금 사무직 직원들이 불필요해져 일자리를 잃었다. 이제는 이런 추세가 시장 동향을 분석하고 예측하며 투자에 관한 조언을 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켄쇼 같은 소프트웨어는 거대한 데이터를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훨씬 정확하게 분석하고 읽어낼 수 있다. 다음 차례는 금융업 안에서도 고객을 상대하는 직종이 될 거라고 네이들러는 말했다. 기계가 훨씬 더 복잡한 분석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금융 고객은 굳이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듣고 조언을 받으려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네이들러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마치 설교하거나 피아노를 치는 듯 팔을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5~10년 안에 이 사람들 대부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건 또 다른 사람들이 아닐 겁니다. 지금부터 10년 뒤의 골드만삭스는 직원 수만 놓고 보면 현재 골드만삭스보다 훨씬 작을 겁니다.”

골드만삭스 임원들은 유능한 새로운 금융 분석 툴이 몰고 올 역경에 관해 이야기하기 싫어한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몇몇 매니저들은 켄쇼 때문에 아직 해고된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 네이들러가 미리 내게 주의를 시킨 그대로였다. 네이들러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아마 자동화, 인공지능 같은 화두를 입에 올리는 순간 모두가 입을 다물어버릴 겁니다.”

사실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동정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편으로는 골드만삭스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인공지능이 가져올 일자리 위기가 어떻게 결판날지 더욱 주목되는 것이다. 만약 골드만삭스의 일자리마저 집어삼킬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면 그보다 규모가 작은, 그보다 덜 복잡한 일을 처리해 온 회사들의 일자리는 더 쉽게 대체될 터. 이는 금융업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도 적용되는 일이다.

2013년 9월, 옥스포드대학 학자 두 명은 “고용의 미래”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에서 현재 미국인의 직업 가운데 47%가 앞으로 20년 안에 자동화되어 기계로 대체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식의 우려 섞인 뉴스가 쏟아져나왔다. 연구진은 아홉 가지 변수를 토대로 직업이 자동화될 가능성을 예측하는 식을 만든 뒤, 이를 노동부의 데이터를 토대로 선정한 702개 직군에 대입했다. 결론은 명확했다. 이제는 로봇이 공장이나 재고 창고에서 일하는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가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이들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사무직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핵심은 연산력(computing power)에 있다. 즉, 예전에는 대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사무직마저 기계가 넘볼 수 있게 된 건 컴퓨터의 연산 능력이 향상됐고 이를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데이터를 스스로 모으고 분석해 이해한 뒤 해답을 내놓는 켄쇼와 같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소프트웨어의 등장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고용의 미래” 보고서와 후속 연구를 보면, 직군에 따라 자동화가 미칠 영향의 정도가 크게 다르다. 예를 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굉장히 중요한 의료보건 분야에서는 자동화된 기계나 소프트웨어가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이 전체 노동시장 평균보다 적다. 반면에 개발이 한창인 자율주행 자동차를 생각하면 택시나 트럭 운전수들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고임금 직종에 속하는 일자리라고 상황이 딱히 낫지 않다. 변호사를 예로 들어보자. 옥스포드 연구진은 높은 보수를 받는 변호사들도 몇 시간은 걸려야 정리할 수 있는 법률 관련 문서를 찾아내 분석, 정리하는 일을 순식간에 해내는 소프트웨어를 사례로 들었다. 오토메이티드 인사이츠라는 사이트는 이미 농구 경기를 분석하는 기사를 알고리즘에 따라 써낸다. 기자들에게는 탐탁지 않을 기술이다. 하지만 금융업에 미칠 파장은 특히 클 것으로 보인다. “고용의 미래”의 예측만 보더라도 금융업 내의 일자리 54%가 자동화로 사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다른 어떤 숙련직종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는 금융이라는 분야 자체가 애초에 디지털화된 정보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바탕 위에 서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예측이다.

“고용의 미래” 보고서에는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대단히 광범위한 분야에 수많은 변수를 토대로 추정치를 내는 일이다 보니 당연히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쨌든 금융업계는 기회이자 위기인,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자동화가 가져올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 금융 애널리스트 몇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금융업 전체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금융공학을 일컫는 신조어인 핀테크(fintech) 업계들은 2014년 총 122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일 년 만에 무려 세 배나 늘어난 액수다. 스타트업들은 쉽게 말해 금융업이 손을 대고 있는 모든 분야에 뛰어들었다. 대출 심사만 해도 신용 등급과 신원 정보를 토대로 사람이 해오던 관행이 바뀌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에 관한 수많은 정보를 여러모로 분석해 대출이 적절한지 판단한다. 로봇 분석원(robo-advisers)이라고도 불리는 소프트웨어는 개인별 맞춤형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준다. 증권 중개나 투자 자문 같은 일을 해온 사람들은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미 대부분 월스트리트의 금융 회사들은 몇 년 안에 소프트웨어로 대체될 것이 뻔한 옛날식 보고서를 사는 데 돈을 쓰지 않는다. 은행들은 대신에 아예 켄쇼와 같은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를 해 사들이는 쪽을 택했다. 켄쇼는 이미 2천5백만 달러를 유치했다.

월스트리트뿐 아니라 사실상 뉴욕시의 경제 전체를 숙련직 노동자들이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금융 애널리스트, 언론, 출판업자,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지금껏 뉴욕시의 경제 구조는 어쩌면 이런 변화에 둔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켄쇼 같은 회사가 몰고 온 변화는 지금껏 자신을 예외라고 여겼던 경제 자체가 직면한 상황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영국의 대표적인 투자은행 바클레이의 CEO 자리에서 해고된 안토니 젠킨스는 지난해 가을 한 강연에서 금융업계 전반에 “우버와 같은 충격(Uber moments)”이 잇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즉, 우버가 택시업계는 물론 물류, 운송업계 전반을 뒤바꿔놓고 있는 것처럼 금융업계도 근본적인 변화가 잇따르리라는 것이다.

“많게는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의 절반 가까이가 일자리를 잃을지도 몰라요. 은행 점포도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겁니다. 아주 보수적으로, 희망적인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고용 규모가 20%는 줄어들 겁니다. 좋은 측면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가장 비효율적인 부분부터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고, 금융 상품의 투명성도 제고돼 고객들에게 부당한 수수료를 덤터기 씌우는 일 같은 건 줄어들 겁니다. 어쨌든 몇 년 전 금융 위기를 일으키고도 여전히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도덕적 해이가 남아있는 듯한 금융업 전반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기계가 먼저 일자리를 대체하는 건 상대적으로 단순한 일을 하는 하급 직원들입니다. 임원들은 제일 마지막에 영향을 받겠죠. 이는 가뜩이나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소득 불평등 문제를 더욱 심화할 것입니다.”

켄쇼에 투자한 벤처캐피탈리스트 가운데는 네이들러에게 잠정적인 일자리 대체 문제를 가급적 꺼내지 않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건넨 이들도 있다. 켄쇼의 주 고객이어야 할 은행의 존폐가 달린 문제를 켄쇼가 일으키는 것처럼 받아들여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네이들러는 이들에게 이 문제는 자신의 지적 양심이 달린 문제라며, 잠재적인 파급 효과를 모른 척할 수 없다고 답했다. 네이들러가 사회적인 안전망을 확충하는 데 힘을 쏟는 정치인을 위한 정치 자금 모금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는 이유도 일자리에 관한 자신의 예측,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켄쇼가 가져올 변화, 즉 켄쇼가 만들어낸 기회와 앗아간 것들을 정확히 알고 행동하는 점이 자신이 궁극적으로 창업가들과 다른 점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업을 하고 있지만, 사업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미래를 좀 더 정확히 예측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분명 다르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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