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마이스터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이번 재연 실험의 결과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곧, ‘글자 e’과제가 연구마다 다르게 수행되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은 이렇게 실험을 진행했다고 말했습니다. 먼저 참가자들에게 e가 포함된 모든 글자를 고르도록 하여 이를 습관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다음 그는 두 번째 규칙, 곧 앞뒤로 두 글자 안에 모음이 없는 e에 대해서만 그 단어를 선택하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더 많은 자제력을 사용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컴퓨터가 아닌 종이와 연필을 사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경우 팔을 크게 움직여야 하므로 그저 키보드를 클릭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제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바우마이스터는 이번 재연에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로, 심리학 분야에서 컴퓨터가 과도하게 사용되는 것을 꼽았습니다. “과거에는 실험을 진행하는 어떤 기술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직접 상대해야 했고, 그들을 원하는 심리적 상태로 만든 후 그 결과를 측정해야 했지요. 요즘 사람들은 모든 실험이 온라인을 통해 자동으로 되었으면 하는 것 같아요.” 그는 갈수록 이 행동 과학 분야에서 실제 행동을 보는 경우가 적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지문을 읽게 할 뿐입니다.”
나는 이번 재연 실험의 실패에 바우마이스터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편입니다. 그의 말대로, 실험에 사용된 과제가 잘못되었을 뿐, 자아의 고갈은 실재하는 현상이라고 해 봅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자아의 고갈이 생각만큼 확실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사실 이 아이디어가 널리 퍼진 이유가 바로 이 아이디어가 매우 다양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초콜렛 칩 쿠기와 무 뿐만 아니라, 단어 게임이나 백인과 흑인의 대화, 그리고 비누를 살지 말지, 심지어 개의 행동을 설명하는 일에도 이 개념은 사용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수행된, 그 많은 연구들이 다 틀린 것일 수 있을까요?
적어도 우리는 이제 이 개념이 매우 불안한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실험 도구를 연필과 종이에서 컴퓨터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사라질 수 있을 만큼 민감하기도 하고요. 만약 그렇다면, 위의 모든 다양한 상황이 이 효과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 ‘대단한 아이디어(Big Idea)’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이는, 이 분야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자아의 고갈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저 실제 효과를 관측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수의 실험대상만으로 실험을 하는 것이 이 분야의 문제라고 여기거나, 또는 과학자들이 자신이 원할 때까지 통계를 주무르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수가 한 분야 전체에 발생할 확률은 낮으며, 따라서 자아의 고갈 효과는 존재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결과가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면, 정말 이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겠지요.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반론이 있습니다. 이들은 잘못된 결과 하나가 다른 잘못된 결과를 양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곧, 자아의 고갈은 단순하면서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며, 따라서 사람들은 수천 가지 방법으로 이를 실험했을 것입니다. 쿠키를 굽는 대신, M&M을 한 소쿠리 가득 담아둔 이도 있습니다. 다른 인종과 대화를 시키는 대신, 인종 차별의 피해자가 되었던 경험을 떠올리도록 유도한 실험도 있습니다. 같은 패러다임 아래서 조금씩 다른 수많은 실험들이 모두 같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게 ‘대단한 아이디어’의 특징일 겁니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 개념을 조금씩 바꿔가며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실험을 계속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런 경우라면, 이 실험이 원래의 개념을 확인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수많은 방법을 시도한 끝에, 자신의 가설이 성립되는 실험을 찾은 것에 불과하지요.
물론 이번 APS의 ‘등록 재연 보고서’가 우리가 생각하던 의지력에 대한 모든 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자제력은 당연히 줄어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자제력이 언제, 왜 감소하는지를 모르는 것일 뿐입니다. 심지어 바우마이스터의 원래 주장, 곧 사람들의 정신력은 일정한 양이 있고 이를 사용할 때마다 줄어든다는 그 주장이 실제로 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단지 바우마이스터와 타이스가 20년 전 고안한 그 실험 방법이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분야는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이제부터가 제대로 된 시작’이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할겁니다.” 토론토 대학의 마이클 인츨리흐트는 단지 이번 자아의 고갈 연구만이 아니라 사회심리학 분야 전체에 이런 감정을 느꼈었다고 말합니다.
과거의 모든 연구들이 의심받고 있습니다. 한때 다수의 연구를 평가하는 표준으로 여겨졌던 메타-분석 연구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메타-분석은 쓰레기예요.” 인츨리흐트는 내게 경고했습니다. 곧, 200건의 엉성한 연구를 모아봤자 그 결과는 엉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바우마이스터는 자신의 방법으로 재연 실험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하면서도 정직한 방법으로, 20년 전에 보였던 것 같은 방식을 통해 이 사태를 원점으로 되돌리려 합니다. … 한 분야를 무너뜨리는 내용을 출판하는 것은 그 분야를 세우는 것보다 더 쉬운 법이지요.” 그는 피곤한 듯 말을 이었습니다. “좋은 때는 아니에요. 즐거운 일은 아니지요.”
자신이 일생동한 했던 일을 의심받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이 분야를 미심쩍게 바라보던 이들도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인츨리흐트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 “내가 딛고 있는 땅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실이 아닌지 더 이상 알 수가 없구나.”
(슬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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