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정치칼럼

역사적인 정치인이 와도 쉽사리 극복하지 못할 미국의 이념 양극화

[이글은 밴더빌트 대학의 마크 헤더링턴 (Marc Hetherington) 교수와 일리노이 주립대학의 토마스 루돌프 (Thomas Rudolph) 교수가 가디언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주 연두교서에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제 임기를 돌아볼 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민주, 공화) 양당 사이에 불신과 적대감이 계속 쌓였고, 관계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됐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링컨이나 루즈벨트 같은 위대한 대통령이었다면 이 깊은 골을 메우는 일을 저보다 훨씬 더 잘했을 겁니다.”

최저임금 인상,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점, 취임 전보다 나아진 국제 질서와 안보 상황 등 자신의 임기 동안 이룩한 치적과 앞으로의 목표를 나열한 뒤, 이 모든 건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때만 달성할 수 있다며 한 말입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주체 간의 신뢰가 아주 중요하고, 정치인들이 악의를 갖고 문제를 처리하려 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겁니다.

오바마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에서는 경쟁하는 정당들 간에 의견이 다르고 해결책이 달라도 각각 국익을 위해 일한다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는 말은 원칙적으로 맞습니다. 그런데 미국 정치권을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민주, 공화 양당 간의 불신은 도가 지나쳐 서로를 극명하게 미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불신과 혐오가 민주주의를 옥죄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진단은 맞았지만, 다른 정치인이 지금 대통령 자리에 있었더라면 초당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거라는 말은 정확한 분석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선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맨에 어울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루즈벨트나 링컨이 되살아나 지금의 백악관을 이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개인의 정치력보다 정치 문화와 구조를 아우르는 정치적 맥락을 읽어야 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20세기 최고의 대통령 가운데 한 명으로 칭송 받습니다. 그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 한번 추진한 일은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완수해내는 뚝심 등 개인으로서 매우 높은 정치력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루즈벨트가 수많은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루즈벨트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때로 전체 의석의 3/4 가까이를 차지했던 압도적인 여당 민주당 덕분입니다. 루즈벨트는 쉽게 말해 야당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재임 당시 의석 구조가 그랬습니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분점정부(여소야대) 상황에서 공화당을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의회의 다수당인 공화당으로선 오바마의 정책에 힘을 실어줄 유인 동기가 전혀 없습니다. 의원들은 모두 자신의 지역구가 있는 반면 대통령은 전국 투표로 뽑힌 사람입니다.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거나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당장 욕을 먹는 자리도 아무래도 대통령입니다. 공화당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오바마의 발목을 붙잡고 깎아내리는 것이 상책인 셈입니다.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 오바마 대통령의 연임을 막는 것이다.” 당시 상원에서 소수당이었던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맥코널이 2010년에 한 말입니다. 당시 상원에서 절대다수인 60석에는 미치지 못했던 다수당인 민주당의 정책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발언이기도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의 정치력도 언급했습니다. 링컨은 나라를 둘로 나눌 정도로 정치적 이견이 양극단으로 치닫던 때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1860년 자신이 대통령에 뽑히자 남부 주들이 아예 연합을 이뤄 미합중국에서 탈퇴했고, 이어 남북전쟁이 일어났으니까요.

링컨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탁월한 지도력을 갖춘 사령관이자 훌륭한 정치력을 지닌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링컨에게는 정작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상황에서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정치를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미 손을 잡을 수 없던 양쪽이 전쟁으로 치달은 것이죠. 오바마의 정적들은 의회에서 다수당 지위를 갖고 오바마의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데 정치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반면, 링컨의 정적들은 아예 의회를 박차고 나와 새 나라를 만들어버린 셈입니다.

루즈벨트나 링컨보다 오히려 제대로 된 비교가 가능한 인물을 꼽으라면 레이건 대통령일 겁니다. 레이건 역시 개인적으로 정치력이 대단히 뛰어났던 인물입니다. 루즈벨트처럼 생각이 다른 이를 설득하는 능력도 탁월했고,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작고 부수적인 것은 양보하며 협상을 이끌어가는 일도 잘 했습니다. 레이건의 경제 개혁은 좌우 양쪽으로부터 모두 우려를 샀지만, 그는 이를 끝내 이뤄냈습니다.

레이건은 야당인 민주당이 하원의 다수당이던 집권 1기 분점정부 시절 자신의 경제정책을 뒷받침하는 법안을 대부분 통과시켰습니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인 팁 오닐의 지지가 필요했는데, 오닐이 매사추세츠 출신의 진보적인 정치인임을 고려하면 대규모 감세를 골자로 하는 레이건의 정책은 통과가 어려워보였습니다. 하지만 레이건과 오닐은 서로를 존중하고 좋아하며 협의를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레이건 역시 지금의 오바마보다는 우호적인 상황에서 정책을 펼쳤습니다. 즉, 오닐 원내대표는 분명 진보적인 색채가 짙은 정치인이었지만, 당시 민주당의 당내 기류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중도 성향에 가까워 레이건의 보수적인 정책과 접점을 찾기가 쉬웠습니다. 오닐은 레이건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노골적으로 반대를 일삼다가 정부가 아예 원내대표를 우회하고 민주당 의원들과 직접 교섭하게 되면, 자신이 정치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민주당도 공화당도 이른바 중도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갈수록 이념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초당적인 협력을 하려 해도 공통 분모를 찾고 접점을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정치력, 인간적인 매력 모두 협상에서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이는 당연히 협상 테이블에 앉을 상대방이 있어야 소용 있는 일입니다. 오바마에겐 레이건의 팁 오닐이 없습니다.

이는 의회 안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의원들이 결국 유권자의 손으로 뽑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실제로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념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걸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은 갈수록 서로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공화당원들은 민주당원보다 오히려 무신론자에게 더 호감을 느끼는 정도입니다.

서로를 싫어하다 보니 불신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2010년 한 설문조사에서 “현재 (민주당) 정권이 제대로 된 정책을 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공화당원들은 절반 이상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고 답한 공화당원은 2%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50년 중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도 공화당원의 약 30%는 대개 정부를 신뢰한다고 답했던 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민주당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다 보니 자연히 유권자들은 자기 손으로 뽑은 공화당 정치인이 어떻게 해서든 민주당의 걸림돌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오바마와 협상하는 정치인은 필요없다는 겁니다.

대통령의 정적은 어떻게 해서든 교착상태를 만들고 이를 장기화시키면 득을 봅니다. 정치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결국 유권자들은 정점에 있는 대통령을 더 탓하기 때문입니다. 2010년 어떻게 해서든 오바마의 연임을 막자고 부르짖던 미치 맥코널은 그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2012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에서도 다수당이 되며 상원 다수당의 원내대표로 격상됐습니다.

오바마 개인의 정치력이 루즈벨트나 링컨에 비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뿌리 깊은 불신과 양당 간의 혐오는 개인의 정치력으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일입니다. 아마 역사적인 대통령, 위인의 반열에 오른 정치인이 오더라도 지금의 이념적 양극화는 쉽사리 극복하지 못할 겁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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