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친구들끼리 혹은 혼자 온 이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광장에서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고, 몇 분 정도 머물다가 간 이들도 있습니다. 몇몇은 프랑수와 올랑드와 조니 할리데이(옮긴이 : 72세의 프랑스 록 가수, 지속적인 탈세와 정치적 성향으로 그의 추도식 참여에 대한 샤를리 테러 희생자 가족들의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가 있었던 오전의 공식 추모식에 참석했고, 몇몇은 반대로 이를 피해 오후에 광장을 방문했습니다. 작년 1월 11일, 백만 명이 넘는 이들이 샤를리 엡도 테러 희생자를 위해 행진했던 파리의 공화국 광장(레퓌블리크 광장)에 지난 1월 10일 일요일, 수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필로멘느 쥐예(Philomène Juillet)는 딸아이 레오니(Léonie, 9세)와 함께 광장에 도착하여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초를 두 개 밝히고, 이어서 광장에 세워진 현판과 그 옆의 참나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레오니는 1월 7일이 생일입니다. 2015년에는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이 이 날을 잊을 수 없는 날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작년 1월 11일에는 원래 레오니 생일 기념 가족 식사가 계획되어 있었는데, 결국 제 어머니와 함께 거리에서 행진하느라 식사를 포기했었죠.”라고 필로멘느는 기억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아이와 함께 여기 와서 그 날 왜 파티를 할 수 없었는지 설명해주고 또 조금은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려고요. 그 행진에는 … 꼭 가야만 했어요. 생사가 걸린 일은 아니었지만, 공화국을 사랑하는 마음에서요.”
작년에 행진하는 동안 필로멘느는 슬픔, 감동, 그리고 종국에는 큰 희망을 차례로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나 1년 후의 마음은 더 이상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전 같지 않을 것 같아요. 2015년 1월 11일에 저는 두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11월 13일의 일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어요.” 1월, 필로멘느는 “풍자만화가도, 유대인도, 경찰도” 아니었고, 스스로가 직접적인 테러의 대상이라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작년 1월 11일에는 “정치적인 이유뿐 아니라 인권의 문제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위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지난 가을, 파리 10구역에 거주하며, 테라스에서 와인을 한 잔 마시고, 간혹 바타클랑에서 콘서트를 보는 것을 즐기는 이 39세의 여성은 “내가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요일,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광장으로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에요!”
일요일에 광장에 있었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베로니크 카를르(Véronique Carles, 66세)도 1년 전 파리의 행진에 있었습니다. “오늘보다 20배는 사람이 더 많았을 거예요! 누군가를 잃어버린 모든 이들을 위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 옆에 있던 릴리안느 디 지롤라모(Liliane Di Girolamo)는 한 마디 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에요!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었다는 말이에요?” 실비 라르보르(Sylvie Larvor, 53세)는 “안타까운 일이죠”라고 한 마디를 남기며, 왜 자신들의 친구들조차 이곳에 오지 않았는지 자문하였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11월 13일 이후의 국가 비상사태가 우리들의 표현의 욕구를 꺾어버리지 않았나 싶어요. 아마도 여러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요. 아니면 지난 테러가 거리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두려워해서 그럴 수도 있을까요? 비슷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는 것이 두려운 걸까요?” 지난 바타클랑 극장과 파리의 거리에서 있었던 테러 공격의 다음날인 11월 14일에도 자발적인 연대로 공화국 광장에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지만, 몇 차례의 폭발음이 들리자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구역에 거주하고 매일 이 거리를 지나는 카미유 마르케(Camille Marquet, 26세)와 로르 부르구왕(Laure Bourgoin, 26세)도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기억하기” 위해 일요일 잠시 시간을 내어 광장에 들렀습니다. “저희가 테러가 있었던 레스토랑 바로 옆에 살 때에는 그 일에 대해 아예 생각하지 않고 정말 정상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했어요.”라고 카미유는 설명합니다. 그들은 설명할 수 없는 질서 같은 것을 느꼈던 지난 1월 11일의 믿을 수 없는 행진을 떠올립니다.
군중이 모여 맹종하는 분위기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로르 또한 당시 “정말 대규모 군중이 모인 집회였지만, 좋았어요.”라며, 당시 군중 속에서 마치 모두를 하나로 이어주는 것 같이 확산되어 나가던 박수소리를 떠올렸습니다. “그곳에 증오는 없었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당신들을 지지한다고 말하기 위해 샤를리 뒤에서 행진했어요. 그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였죠.” 이들은 결국 “이념”, 표현의 자유 혹은 짧게 ‘자유’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11월의 사건은 무엇보다도 우리 중 누구라도 대상이 될 수 있는 ‘폭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폭력은 우리가 연대하고 행진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핵심적인 단어, 이상향을 찾아내기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슬프게도 바타클랑의 희생자들은 그들의 용기로 인해 살해당한 것이 아니에요.” 지난 1월 로르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지만, 오늘 느끼고 있는 것은 슬픔이라고 합니다.
이 일요일, 촛불과 희생자들의 초상을 마리안느 동상의 발치에 맞아주며 추모 장소가 된 광장에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외치기보다는 묵상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르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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