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작가 사망 후 70년이 지나면 저작권이 사라집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도 예외가 아닙니다. 1945년 이래 <나의 투쟁>의 독일어판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바바리아 주 정부는 책의 출판을 거부해왔지만, 내년 1월 1일이 되면 누구나 책을 펴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투쟁> 번역본을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외부인들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겠지만, 독일에서 <나의 투쟁> 저작권 소멸은 여러 논쟁을 낳고 있습니다. <나의 투쟁>의 저작권이 풀리는 이 시점에 독일에서 히틀러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나의 투쟁>은 1923년 정부 전복 시도에서 실패를 맛본 히틀러가 비교적 수월한 수감 생활을 하면서 쓰기 시작한 자서전 겸 선언문입니다. 제목의 “투쟁”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몰라도, 문법과 표현면에서 고군분투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죠. 서툰 사회 진화론과 반유대주의가 거칠게 뒤섞인 글에서는 잔혹한 면모도 드러납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독일인들이 <나의 투쟁>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이 책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습니다. 2차대전이 끝난 시점에서는 약 1300만 부가 시중에 나와있었죠. 전쟁이 끝난 후, 이 책의 운명은 미군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히틀러의 마지막 주소지가 뮌헨이었기 때문이죠. 이후 독일연방공화국이 탄생하자 미국은 저작권을 바바리아 주 정부에 넘겼고, 바바리아 주는 출판을 금지합니다. 이는 히틀러와 관련된 모든 것을 금지시켜 다시는 독일이 나치 시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한다는 독일의 전후 정책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40년대 말에서 50년대에 걸쳐,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아예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입은 독일인들은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도 꺼릴 정도였죠. 대신 독일인들은 현재에 집중해 바쁘게 살면서 기적같은 경제 성장을 일구어냈습니다. 많은 독일인들이 여전히 속으로는 홀로코스트를 부인했고,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지만 않았다면 훌륭한 지도자로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60년대가 되자 사회 분위기가 바뀝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이 붙잡혀 재판을 받으면서 홀로코스트의 무시무시한 내막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독일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는 다시 저녁 밥상의 주제로 등장했고 가족들을 갈라놓았습니다. 젊은이들은 부모와 선생님들의 안일한 태도를 비난했고, 나이든 사람들은 끔찍한 일들을 부인하며 자신의 인생 경험을 세탁하려 했습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때 독일인들이 “애도할 능력을 상실”했고, 정신적, 도덕적 위기가 지속되었다고 표현합니다. 독일 정부는 두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선 동독은 정의로운 공산주의자들이 내내 파시즘과 투쟁해왔다는 소설을 써내려갔습니다. 반면 서독은 죄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죄했습니다. 서독은 “평화 국가”가 되었고, 승전을 거둔 연합국의 “전쟁 영웅 문화”와 대비되는 포스트 민족주의적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독일인들은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에서 국기를 휘날리거나 국가를 큰 소리로 부르지도 않았고, 젊은이들은 독일이라는 국가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또는 유럽 대륙을 정체성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70년대에 접어들자 독일 사회에서는 히틀러에 대한 울분이 새삼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전기 두 권이 출판되었고,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죠. 미국산 TV 시리즈 <홀로코스트>가 독일에 방영되면서 독일인들은 다시금 충격에 빠져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역사적인 1985년 연설에서 말한 것 처럼, 독일인들은 1945년 5월 8일을 패전의 날이 아닌 해방의 날로 보게 됩니다.
1990년 통일이 되고 냉전이 종식되자, 독일인들은 히틀러와 히틀러의 시대를 열심히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히틀러는 1990년대에 주간지 <슈피겔>의 표지를 무려 16차례 장식했습니다. 보통의 독일인들도 히틀러의 적극적인 조력자였다고 주장한 미국인 역사학자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SS 친위대가 아닌 보통 군인들도 홀로코스트에 개입했다는 내용을 담은 전시회도 히트작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히틀러 포르노”, 또는 “히틀러 키치”라고 불리는 트렌드가 생겨납니다. 히틀러가 일종의 마케팅 수단이 된 것이죠. 80년대에 한 잡지가 나중에 가짜로 알려진 히틀러의 일기를 실어 큰 화제가 된 이후, 90년에 이르자 역사 채널은 밤마다 히틀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 시작합니다. 히틀러의 여자, 히틀러의 개, 히틀러의 마지막 날들, 히틀러의 식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소재가 되었습니다. 칫솔 모양의 콧수염을 기른 키 작은 남자의 이미지는 마치 폭력이나 섹스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런 추세는 독일인들이 히틀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느끼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때쯤 되어서는 히틀러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을 가진 사람이 거의 남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죠. 히틀러에 대한 풍자라는 장르가 등장하게 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이 부문에서 가장 최근에 히트를 친 작품은 <누가 돌아왔나 볼까(Look Who’s Back)>이라는 소설입니다. 현대의 독일에서 깨어난 히틀러가 어처구니없는 언행으로 모두를 웃기다가 마침내 코미디언으로 성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이처럼 오늘날 독일 젊은이들에게 히틀러는 빠져들면 위험한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너무 먼 과거의 인물, 나아가 우스꽝스러운 인물입니다.
히틀러와 결부된 금기들도 하나씩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공공 장소에서 국기를 흔들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금기는 완전히 깨졌습니다. 독일의 국기 뿐 아니라 모든 월드컵 참여국의 국기가 길거리를 장식하며 하나의 축제가 되었기 때문에, 독일 국기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올해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인이 독일하면 떠올리는 것 1위는 폭스바겐이었고, 괴테와 앙겔라 메르켈, 국가(國歌), 국가 대표 축구팀, 빌리 브란트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히틀러는 겨우 7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70%의 독일인들이 국가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답했고,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독일은 관용과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이고 있으며 죄책감과 수치심을 버릴 때가 됐다고 답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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