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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의 부재,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걸림돌입니다

아크라 도심 금융 지구에 위치한 커피숍 풍경은 세계 여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습니다. 유리 외장의 고층 건물이 즐비한 도심 한복판에서 미국식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라떼를 마시며 서류를 훑어보고 있으니까요. “가나에서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풍경이에요. 정말 어마어마하게 달라졌습니다.” 현지 금융업계 종사자의 말입니다.

한때 전쟁과 기아, 빈곤의 동의어로 여겨지던 대륙에서도 이제는 경제 성장과 도시화에 힘입어 중산층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등장은 민주주의, 법치의 확산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산층이 생겨나려면 소수의 지배층이 부를 독점하는 대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 기회가 돌아가야 하니까요. 또, 이렇게 생겨난 중산층은 다시금 정부에 청렴성과 투명성을 요구합니다. 옥스퍼드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케냐에서는 부유한 사람일수록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야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어캣처럼 드문드문 솟아있는 고층 건물에서 몇 발짝만 벗어나면, 아프리카에서 중산층이 얼마나 희귀한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크라만 봐도, 금융지구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업 폐기물 쓰레기장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쓸만한 중고 부품을 얻기 위해 해로운 연기를 마셔가며 버려진 전자 제품을 태우고 있습니다. 도시를 벗어나면 중산층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의 상황이 비슷합니다. 퓨리서치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하루에 10-20달러를 벌어 중산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6% 뿐이고, 이 수치는 2001년부터 2011년 사이에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코노미스트>의 자매 회사인 EIU 캔백(EIU Canback)의 데이터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아프리카인의 90%가 하루에 10달러 미만을 벌고 있습니다. 2004~2014년 10-20달러를 버는 중산층은 4.4%에서 6.2%로, 하루에 20-50달러를 버는 중상층은 1.4%에서 2.3%로 늘어났을 뿐입니다. (남아공 제외)

지난 10년간 아프리카는 인구 성장률의 두 배인 연간 5%대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처럼 중산층이 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경제 성장의 과실이 매우 불평등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에서는 빈부 격차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애초에 빈곤의 정도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조금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여전히 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구도 많고, 최근 경제 성적도 좋은 에티오피아가 좋은 예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2004년부터 2014년 사이 하루 10달러 이상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수가 10배나 늘었지만 인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2%에 불과합니다.

수입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하루에 10-20달러를 벌어도 여유로운 삶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전자제품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는 아왈 이브라힘은 컴퓨터에서 구리선을 잘라내 하루에 5달러를 법니다. 그는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낄까요?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다면 다른 일을 하겠죠.”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시아와 달리 아프리카는 급여가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산업을 키워내지 못했습니다. 가난을 피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와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노동집약적 산업에 종사하게 되죠.
떠오르는 아프리카 시장에 투자하고 싶은 외국인들은 이런 점을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품 시장 붐은 이미 끝났고, 경제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돈 있는 사람들은 지갑을 닫습니다. 경제 성장에 따라 소비자의 구매력도 크게 늘어나리라 기대했지만 성장세는 너무나도 더딥니다. 제 2의 아시아를 예상하고 아프리카에 진출했던 다국적 대기업들 가운데는 아예 철수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물론 아프리카 시장에 최적화된 전략으로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소비자들을 노리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나이지리아의 한 식품회사는 저렴한 소시지빵을 만들어 수퍼마켓에 진열하지 않고 버스 정류장에서 창문을 통해 팔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터운 중산층의 부재는 분명 큰 문제입니다. 가까스로 중산층에 발을 걸치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작은 타격에도 다시 빈곤층으로 밀려날 수 있고, 사회 개혁의 동력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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