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공동체를 되찾자”.
지난달 영국 런던 이스트엔드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거리에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한 비싼 가게들을 향해 적의를 드러냈습니다. 지난 세월 아일랜드계, 유대인, 방글라데시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들이 처음 자리를 잡던 이스트엔드는 최근 들어 웬만한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가격의 값비싼 아파트와 고급 주택이 들어서면서 경제적인 지위에 따른 분리(economic segregation)가 심화됐습니다.
런던이 불평등한 도시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전체 도시의 60% 부동산은 가장 부유한 상위 10% 시민들의 재산입니다. 상위 10% 시민들이 사는 집값은 하위 10% 시민들이 사는 집값보다 보통 4.5배 더 비쌉니다. 하지만 최근 델프트대학과 세인트 앤드루스대학의 마르텐 반햄(Maarten van Ham)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이 유럽 주요 13개 도시를 대상으로 소득, 직업, 교육을 비롯해 다양한 분리 요인에 따른 각 도시별 분리 정도를 측정한 결과, 런던은 지난 2001년부터 2011년 사이 경제적인 분리가 덜해진 도시로 꼽혔습니다. 아마도 원인은 2001년 이전에도 이미 경제적인 불평등이 심했고, 그에 따른 분리가 뚜렷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런던 시내 중심부는 이미 집값이 매우 비쌌고,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미 경제적인 분리가 뚜렷했습니다.”
반햄 교수의 설명입니다.
조사 대상 도시 13곳 가운데 2000년대 첫 10년간 경제적 분리가 심화되지 않은 곳은 런던(영국)과 암스테르담(네덜란드) 두 곳뿐이었습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도 북유럽식 사회복지 모델이 점차 제 기능을 못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스톡홀름(스웨덴)에서는 공공주택이 민간 부문에 팔리는 추세가 뚜렷해졌고, 대단히 평등한 도시로 유명한 오슬로(노르웨이)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이들이 각기 도시 내 다른 곳에서 다른 경험을 하며 사는 게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발트해 건너 빌뉴스(리투아니아)나 탈린(에스토니아)은 1990년대 초까지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던 소련의 도시였습니다. 소련이 붕괴한 지 20년이 더 지난 지금, 이 도시들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불평등은 유럽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중산층 이상, 전문직 고소득층이 도시 중심부 혹은 부유한 동네로 모여들고, 가난한 이민자들과 저소득층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마치 공식처럼 많은 도시에서 일어났습니다. 반햄 교수는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불평등이 없다면 소득에 따른 분리도 일어나지 않겠죠. 반대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도시에서는 (소득에 따른 경제적) 분리 현상이 덩달아 심화됩니다.”
연구진은 유럽 도시들 안에서 경제적 분리 현상이 가속화되는 이유로 다음 네 가지를 꼽았습니다. 세계화, 경제구조 재편, 정부의 재분배정책 약화, 그리고 공공주택에 대한 투자 감소.
조사 대상에 포함된 유럽 13개 도시 가운데 경제적 분리가 가장 심화한 도시는 마드리드(스페인)였는데, 이는 마드리드로 갑자기 부동산 투기자본이 몰려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현재 소득으로는 집을 마련하는 걸 꿈도 못꾸는 상황인데, 정부는 집값을 낮추거나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부모를 떠나 독립하는 젊은이들이 줄어들었습니다. 비엔나(오스트리아)에는 상대적인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지난 10년간 두 배나 늘었습니다. 그 결과 원래 도심에 살던 서민들은 교외로 밀려났습니다.
10년 전 파리(프랑스) 교외 방리유(banlieues)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을 포함한 시위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경제적 분리는 계속 심화됐습니다.
이는 유럽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지난 30년간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도시 내에서 경제적 분리도 점차 뚜렷해졌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 혹은 빈부 격차를 가장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은 미국의 대학도시(college towns)입니다. 값비싼 등록금을 낼 능력이 있는 학생들은 대개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가정 출신이기 때문에 이들이 모이는 대학도시에 원래 살던 주민들과 빈부 격차가 큽니다.
캐나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불평등과 경제적 분리는 캐나다 원주민들입니다. 위니페그에 사는 원주민 8만여 명은 대개 캐나다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모여살고 있습니다. 집값과 범죄율, 도시 기반시설 등 어떤 지표를 통해 보더라도 원주민들의 삶은 계속 나빠졌습니다.
유럽과 북미 대륙을 벗어나면 사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로 훨씬 더 심각하게 분리된 도시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원주민들은 교외의 황무지에서 전통식 천막인 게르를 아무렇게나 쳐놓고 가난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반면 급속도로 발전한 울란바토르 도심은 고급 백화점과 비싼 가게가 즐비한 딴 세상입니다. 드러내놓고 흑인과 백인을 차별하던 정책이 사라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에는 여전히 감시카메라가 끝없이 설치된 높다란 장벽이 부유층과 대다수 서민들을 갈라놓고 있습니다.
도시 내의 분리가 반드시 소득이나 경제적 지위에 따른 것만은 아닙니다. 종교 혹은 정치적 이념에 따라 사람들이 나뉜 곳도 있습니다.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자(nationalist)들과 영국 통합주의자(unionist)들의 공존을 기원하는, 하지만 사실상 이들을 분리해놓은 평화의 벽(peace walls)이 있습니다. 2002년 무슬림을 향한 증오범죄가 잇따라 일어난 인도 구자라트 주에서는 힌두교도와 무슬림들이 철저히 나뉘어 살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남녀의 접촉을 엄격하게 금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는 여성 전용 쇼핑몰, 여성 전용 식당이 있습니다. 동물원은 여성들만 갈 수 있는 날을 따로 정해놓기도 합니다.
분리가 얼마나 심한지를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차이 지수(Indices of dissimilarity)가 쓰입니다. 한 지역에 사는 다른 인종, 다른 소득층,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이 얼마나 섞여 사는지, 반대로 얼마나 떨어져 사는지를 측정하는 건데, 미국에서 가장 인종적으로 분리된 도시로 꼽힌 디트로이트의 경우 이 점수가 80점으로 무척 높았습니다. 디트로이트의 흑인들은 대부분 도심 슬럼에 살고 백인들은 대부분 부유한 교외에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사는 대도시에서는 인종별 분리가 오히려 덜해졌다는 사실이 동시에 확인됐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LA인데, 2000년에는 전체 LA 인구의 40%가 분리가 뚜렷한(특정 인종이나 특정 소득계층만 모여 사는) 지역에 살았다면, 이 수치는 2010년에 33%로 떨어졌습니다.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지역의 다양성이 특히 늘어난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럽의 도시들에서는 불평등이 심화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2008년 금융 위기의 여파가 최근 들어 주거지역 분리 등의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반햄 교수는 “불평등의 심화와 실제로 도시에서 그 현상이 눈에 보이는 시기 사이에는 5~10년 정도 시차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도 다른 나라, 도시들에 비하면 유럽의 도시들은 대개 다양한 인종, 소득 계층이 섞여 살고 있는 편입니다. 지난 3년간 몇몇 지표를 토대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로 연이어 꼽힌 산유국 앙골라의 수도 루앙다는 극심한 빈부 격차를 실감할 수 있는 곳입니다. 엄청난 부자들이 철통같은 보안 속에 모여사는 도심의 그들만의 성은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호텔도 가장 싼 방이 하룻밤 숙박비가 50만 원에 육박합니다. 반대로 서민들은 도시 곳곳의 정비되지 않은 구역에 아무렇게나 지어놓은 가건물에 살면서 우유나 토마토 같은 기본적인 먹을거리도 너무 비싸 제대로 사먹지 못합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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