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Alee)의 꿈은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훌륭한 축구 선수를 꿈꾸는 청춘은 많지만 누구에게나 이는 결코 꿈만 꾼다고 되는 일이 아니죠. 그런데 알리에게는 축구를 하는 데 몇 가지 걸림돌이 더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인 18살 알리는 독일 함부르크에 살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함부르크에 사는 것을 허락받은 게 아니라 난민 지원센터 혹은 보호 시설이라 부를 만한 곳에 머물고 있죠. 알리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유럽으로 건너온 난민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아직 집이라 부를 만한 곳이 없는 철저한 이방인이라 할 수 있죠.
“저는 축구를 정말 좋아합니다. 특히 공 차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여기 지역 클럽에서는 축구를 할 수 없어요. 아직 저의 난민 지위가 정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든요. 주소가 없어요.”
대부분 지역 축구 클럽들은 선수 또는 회원을 받을 때 주소 혹은 주거 증명을 요구합니다.
람페두사 축구단(FC Lampedusa)은 달랐습니다. 전원 망명 신청자 혹은 난민들로 구성된 FC 람페두사의 구성원은 대개 서아프리카 출신으로 리비아에서 일하다 내전과 함께 몇 년 전 리비아를 빠져나온 난민들입니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처음 다다른 곳이 이탈리아의 람페두사라는 섬입니다. 이들은 한동안 유럽연합의 지원으로 운영되던 난민 수용시설에서 지낼 수 있었지만, 이내 유럽연합의 지원이 끊겼고 이탈리아 당국은 난민들에게 거주 자격과 돈 몇 푼을 주는 대신 수용시설에서 떠나야 한다고 통보했습니다.
300명 남짓한 람페두사 난민들은 2012년 독일 함부르크로 왔습니다. 처음에는 머물 곳이 제공됐지만, 이내 함부르크 시 정부는 난민들이 이탈리아로 돌아가야 한다고 알려왔습니다. 난민들은 그럴 수 없다고 버텼고, 이들의 바람을 담은 구호는 자연스레 이들의 축구팀 구호로 정착됐습니다.
“여기가 우리집이다. 여기서 축구를 하자. (Here to stay, here to play.)”
난민들은 지역 프로팀으로 현재 분데스리가 2부리그 소속인 FC 상파울리(FC St Pauli)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상파울리는 인종차별을 배격하고 파시즘에 맞서싸웠던 전통을 스스로 자랑스레 여기며 간직해온 팀입니다.
FC 람페두사의 코치진 다섯 명은 모두 여성입니다. 그뢰테케(Hagar Groeteke) 코치는 대부분 축구 클럽들이 난민들을 받아들이기를 꺼리거나 주저한다고 말합니다. 독일어를 할 줄 모르는 선수를 받아들이면 소통이 쉽지 않기도 하고, 축구화를 비롯한 장비를 살 돈이 없는 선수를 지원하는 것도 부담이며, 난민들이 하루아침에 추방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난민들은 말 그대로 모든 걸 잃은 사람들입니다. 집, 가족, 일상적인 삶이 무너진 사람들이니 축구화가 있을 리가 없었죠. 우리는 이곳에서 함께 살기 위해 어떤 대단히 엄격한 증명서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축구를 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죠.”
FC 람페두사는 지역의 동호회 리그에서 경기를 합니다. 주로 상대는 다른 난민 축구팀들 혹은 인종차별 반대를 슬로건으로 삼은 팀들입니다. 실력을 선보이고 정식 축구 선수가 되기에는 척박한 환경이지만, 그뢰테케 코치가 젊은 선수들 몇 명에게 정식 클럽에서 축구를 하고 싶지 않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의외였습니다. 선수들은 대개 입을 모아 지금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과 공을 차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돈이 없는 것도, 축구화도 변변치 못한 것도, 집이라 부를 만한 곳이 없는 것도 다 똑같은 동료들과 공을 차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죠.
알리는 정식으로 망명을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일 말고 사실 알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가족이 잘 지내는지, 특히 어머니가 안전한 곳에서 잘 지내고 계신지가 가장 궁금하고 걱정이라고 말합니다.
“신의 가호가 어머니와 늘 함께하기를 기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답답하죠. 그래도 FC 람페두사에서 공을 찰 때는 외롭거나 불안하지 않아요. 저와 비슷한 친구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알리는 최근에 지역 축구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거의 경기당 한 골을 몰아치며 갈고 닦은 기량을 뽐냈습니다. 그 대회에서 공을 찼던 기억은 알리가 독일에 건너온 뒤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남아있습니다.
유럽에 최근 들어 유례를 찾기 힘든 난민위기가 불거지면서 자연스레 유럽 곳곳에서 난민들의 축구팀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프랑스 리옹에서 난민들이 축구팀을 꾸렸고, 스페인, 오스트리아에도 난민 축구팀, 리그들이 속속 생겨났습니다. 난민들을 받아주는 축구 클럽 목록을 모아둔 데이터베이스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을 난민들은 지구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축구를 통해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난민 축구팀 가운데 하나인 리베리 난떼스(Liberi Nantes)의 구호는 “모두가 자유롭게 공을 찰 수 있는 곳(free to play)”입니다. 지난 7년간 리베리 난떼스는 난민 수용시설 60여 곳과 힘을 모아 로마를 중심으로 난민들에 대한 지원 체계를 확충하고 난민들의 건강을 증진하는 데 힘써왔습니다. 축구를 가르치고 함께 훈련하는 것은 기본이고, 산악회를 조직해 등산을 가기도 하고 어학당을 개설해 이탈리아어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리베리 난떼스의 다니엘라 콘티(Daniela Conti) 회장은 난민들이 필요한 지원을 조금만 받으면 놀랍게도 이내 수많은 잠재력이 발현된다고 말합니다.
“저희 팀의 거의 모든 선수들은 팀을 가족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일부 선수들은 지역 내 다른 정식 축구 클럽에서 선수로 뛰게 되었고, 다른 이들은 리베리 난떼스의 코치가 되기도 했습니다.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감비아(Gambia)에서 나고 자란 얌쿠바(Yamkuba)는 10살 때부터 축구를 했습니다. 이후 리비아에서 일을 하고 내전을 피해 위험을 무릅쓰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건너오는 동안에도 얌쿠바는 축구화의 끈을 풀지 않았습니다. 2011년에 이탈리아에 도착한 얌쿠바는 난민 지위를 신청했습니다.
“당시 난민 수용시설에 열 달간 머물렀어요. 그 동안에도 축구를 계속했죠. 밤이고 낮이고 틈만 나면 개인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난민 수용시설에 머무는 동안은 돈을 벌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에도 상당한 제약이 따릅니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지가 결정되기까지 사실상 방치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얌쿠바는 이 시간을 축구를 하며 버텼습니다.
현재 26살인 얌쿠바에게 정식 프로 선수로 뛰는 꿈을 여전히 갖고 있냐고 묻자, 그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겠죠. 말로 이렇다 저렇다 할 게 아니라 저희가 훈련할 때 제가 공 차는 모습을 한 번 보시죠.”
스코틀랜드(영국) 글래스고에 있는 유나이티드 글래스고 FC의 비공식 구호는 스와힐리어 “투코 파모자”입니다. 문자 그대로 옮기면 “우리는 하나다(We are as one)”이지만, “우리는 함께한다(We are together)”고도 해석됩니다. 스코틀랜드의 젊은 노동자들이 (아마도 입에 잘 붙지 않을) 스와힐리어 구호를 외치는 모습은 보기에도 꽤나 어색하겠지만, 팀을 창단한 알란 화이트(Alan White) 회장은 난민과 망명을 신청한 사람들을 지지하고 그들과 연대하며 구단이 성장해 왔다고 말합니다. 2011년 운동을 하고 싶어도 번번히 거절당하는 난민들에게 함께 모여 땀을 흘리고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뜻에서 시작한 유나이티드 글래스고 FC는 지금은 산하에 여자팀을 포함해 무려 네 팀을 운영하고 있는 어엿한 축구단으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유나이티드 글래스고 FC에서 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이트 회장과 구단은 특히 운동을 하고 싶어도 이런 저런 이유로 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축구도 중요하죠. 하지만 구단이 다양한 구성원들 모두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으로써 제 역할을 다 하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난민들은 마음 놓고 공을 차며 영어도 배우고 새로운 친구도 사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청년들에게 다양성을 가르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는 게 화이트 회장의 생각입니다.
“스코틀랜드 젊은이들 가운데 다른 문화, 다른 나라에 대해 사실상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화이트 회장은 지금 구단 구성원들이 각각 어느 나라 출신인지, 난민 지위 신청이 어떻게 진행돼 현재 정확한 신분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릅니다. 사실 꼭 그 사실을 낱낱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출신 배경에 대해 구단에서까지 캐물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들은 여기서 함께 땀을 흘리고 공을 차러 온 것이잖아요.” (Qu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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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정부가 찾아주지 못하는 행복과 협동심을 구기 종목 스포츠인 축구로 느낀다는 게 참 웃픈 이야기 인 것 같네요.
정식 축구 팀에서 공을 차고 싶지 않느냐고 하는 질문에 의외인 답변을 보니 놀랐습니다. 공을 차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는 말.. 돈이 없는 것도 장비가 없는 것도 이러한 걱정들이 공을 찰 때 만큼은 편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나는 무엇을 할 때 돈 걱정 없이 그 자체로 행복해 할까 라는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사실 살아가고 있는 자체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벅찬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