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 중에 맥도날드 직원이 주문을 받고 햄버거를 내주는 계산대가 무엇인지 모르는 세대가 곧 등장할 것입니다. 사람이 주문을 받는 대신 터치스크린을 통해 주문부터 결제까지 마치고 기다리면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 시스템이 보편화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맥도날드는 최근 영국 대부분 매장에 이같은 터치스크린 계산대를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1950년대식 미국식 패스트푸드 체인에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지만, 기술의 발전이라는 시대의 흐름은 맥도날드도 비켜가지 않은 셈입니다.
그런데 단지 기술의 발달이나 편리함만을 논하기엔 이 계획이 경제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큽니다. 임금이 무척 낮은 저숙련 노동자들과 그들의 단순한 반복 업무를 기계로 대체하고 자동화해야만 정보기술의 발달로 마련된 토대를 활용한 새로운 산업혁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노동자들의 임금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이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경제 보고서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모건 스탠리의 경제전문가들이 작성한 보고서인데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기업의 이윤은 대개 노동시장의 공급 초과 덕분에 계속해서 올랐다. 서구의 베이비부머, 개발도상국에서는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등장한 값싼 노동력들, 그리고 여성이 노동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시장에는 전반적으로 공급이 늘 충분했다. 최근 들어 개발도상국의 도시화가 정점을 지나고, 각국의 출산율이 낮아지며 노동력이 조금씩 부족한 영역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전반적으로 노동자들의 협상력과 임금을 높여주었다. 맥도날드가 터치스크린을 도입하는 것은 노동력의 공급 부족에 대비하는 기업, 자본의 전형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자본과 노동 사이의 균형이 새로 맞춰질 것이고, 1989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값싼 노동력에 기초한) 기업의 이윤은 줄어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토마스 피케티 교수가 예측한 21세기의 불평등 심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보고서는 다보스 포럼에 모인 기득권들에게는 (아마도 피케티의 주장을 반박했기 때문에) 찬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적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에게도 이 보고서가 예측한 미래가 결코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그 전에 정치인, 기업인, 자본가 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 소비자들의 대대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시장 경제주의자들은 여전히 고용 안정(job security)이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노동법과 시장의 관행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도, 해고하는 것도 쉽고 간단하게 하는 쪽으로 변해 왔습니다.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거나 갑자기 일자리를 잃을 염려를 하지 않도록 안전 장치를 요구하는 일은 갈수록 꿈 같은 일이 됐습니다. 일한 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불하면서 일감이 없어 아무 일도 못하면 임금을 한푼도 지급하지 않는 시간제 계약(zero-hours contract)은 이러한 노동시장 유연화를 상징하는 계약입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보다 더한 악조건도 감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기간제 노동(temporary work), 단시간 노동(part-time work), 일주일에 고작 4시간만 일한다는 계약이 만연하고, 심지어 제대로 된 계약도 없이 일하다가 아무런 예고 없이 해고를 통보받는 일이 흔합니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 비정규직(precariat)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전체 노동 인구의 25%가 비정규직이기도 합니다.
(옮긴이: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위태롭다는 뜻의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한 조어로 그대로 옮기면 상당히 위태로운 처지에 있는 노동계급 정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노동법상 기간제/단시간/파견 근로자를 합해 일컫는 비정규직이 프레카리아트와 부합한다고 생각해 이 글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옮겼습니다)
델프트대학의 경제학자들은 비정규직이 만연한 상황에서 모두가 치러야 하는 사회적인 비용을 계산했습니다. 계약직 노동자, 단시간 노동자, 파견 노동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자연히 이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관리직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일자리에 대한 불안은 신뢰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떨어뜨립니다. 결국 소련의 경제를 풍자한 격언처럼 노동자들은 그저 일하는 척만 하고, 기업은 (혹은 정부는) 임금을 지불하는 척만 하는 극도로 비효율적인 상황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용과 해고가 쉬워지면서 우리가 잃은 것은 많다. 조직적인 학습이 불가능해졌고, 조직 내부에서 지식과 경험을 쌓고 전수하는 일이 어려워졌으며 이는 혁신을 가로막고 노동 생산성을 떨어뜨렸다.”
이 꽉 막힌 상황을 타개하고 다시 노동자들의 임금을 현실적으로 올리는 정책의 성패는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데 달려있습니다. 지난 5년간 영국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계속 하락했습니다. 이제는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인들이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이 쉽지 어떻게 임금을 올릴지 그 방법은 여전히 묘연합니다. 노동조합에 힘을 실어주는 일, 노동자 대표에게 기업 이사회의 한 자리를 주는 일은 모두 그 효과가 제한적일 겁니다. 맥도날드를 생각해보세요. 노동자가 고객들에게 충분히 친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때로는 지나치게 깐깐한 고객이 매장에 대한 불평을 억지로 지어내 투고라도 했다가는 온 매장 직원의 보너스가 한순간에 깎여버리는 살벌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노조도, 이사회 자리도 근본적인 해결책에는 한참 못미칩니다.
1960년대와 70년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일터의 문화와 노동자들의 인식이 바뀌면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였던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가 조롱해 마지 않던 물질주의의 노예로 전락한 노동자들이 1969년 역사적인 총파업이었던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을 앞장서서 이끌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습니다.
고용주에게, 자본에 빼앗겼던 임금과 고용 안정을 요구할 권리를 노동자들이 되찾아오는 데 필요한 작업으로 크게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기업을 철저히 규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며칠 동안 계속되는 페스티벌에 고용된 마스코트 아르바이트들에게 식대나 숙박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이들이 공원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 이슬을 맞으며 잠에서 깨어나도록 방치하며 일을 시키는 기업은 노동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합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구조적으로 유린하는 고용주는 어떤 형태로든 법의 처벌을 받도록 노동자들의 집단 소송을 장려하는 일도 시급합니다.
영국 노동당과 보수당은 너도나도 (유권자의 대다수인) 노동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알리기 바쁩니다. 공허한 구호 말고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진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노동과 자본의 오래된 힘겨루기에서 노동자들에게 좀 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이 거시적인 흐름을 읽지 못하는 기업은 50년 전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에 그랬던 것처럼 곤경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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