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미국인들이 루게릭병 연구 기금을 조성하기 위한 얼음물을 뒤집어쓰기 열풍에 빠져있을 때, 일부 “의식 있는” 사람들은 그 장면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문제”라고 단언한 사설도 있었고, 물 낭비라는 비난에서부터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더 중요한 일에 쓰일 수 있는 돈이 한쪽으로 몰린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곧 아이스버켓 챌린지는 게으른 사회 운동, 즉 슬랙티비즘(Slacktivism)의 상징으로 떠올랐습니다. 진정한 변화에는 관심도 없는 이들이 값싼 자기만족을 위해 이벤트에 참여한다는 비판이 계속되었죠.
하지만 1년이 지난 오늘, 아이스버켓 챌린지의 긍정적인 효과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진은 당시 조성된 기금을 받아 루게릭병뿐 아니라 다른 여러 질병 치료에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냈고, 이달 초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습니다. TDP-43이라는 단백질이 특정 환경에서 뇌나 척수의 세포사(死)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특정한 형태의 단백질을 주입해 세포를 정상으로 돌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연구진은 현재 쥐 실험을 진행 중이며, 쥐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곧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시험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연구진은 같은 원리를 루게릭병뿐 아니라 치매나 알츠하이머, 근육 약화를 가져오는 여러 질병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암이나 면역계 질환에도 TDP-43과 같은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있는지를 다른 연구팀과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아이스버켓 챌린지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물론 유명인사들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이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에 올라간 1,700만 개의 아이스버켓 동영상들은 총 100억 번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인 돈이 6주 만에 총 1억 1,500만 달러에 달했고, 아이스버켓 챌린지로 기부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후에도 여러 번 기부를 했습니다. 2014년 구글에서 루게릭병이 검색된 횟수는 그 전 10년간 검색 횟수를 합친 것보다 많았죠. 존스홉킨스대학팀의 연구는 그 전부터 진행 중이었지만, 아이스버켓 챌린지 이후 큰돈을 지원받아 “고위험 고수익형” 실험도 과감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슬랙티비즘이 실패하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보코하람에게 납치된 소녀들을 구하자는 캠페인도 인터넷상에서 꽤 화제가 되었지만, 소녀들은 아직 실종 상태죠. 우간다 반군 지도자인 조셉 코니를 규탄하는 “스탑 코니 운동”도 있었지만, 조셉 코니는 여전히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 덕분에 미국 정부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관심이 높아졌고, 2011년 이후 코니 일당이 저지른 살해 건수는 90% 감소했습니다.
그러니 거실 소파에 편히 앉아 운동에 참여하는 슬랙티비즘을 일종의 관문형 마약이라고 보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호기심에 참여했다가도, 그 덕분에 세상과 여러 가지 명분에 눈을 뜨게 되고 계속해서 사회 운동에 참여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분명한 것은 아무리 게으른 형태의 사회 운동이라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2015년 아이스버켓 챌린지에 참여하고 싶지만 “알지도 못하면서 재미로 저런다”는 시선이 두려워 망설이고 계신 분들, 걱정하지 말고 참여하세요. 사회 운동이 재미있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뉴욕타임스)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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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저런 얄팍함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반대로 '춤이 없으면 혁명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시민운동하는 사람들은 분명 이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