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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가입률이 높은 지역에서 자란 아이들의 미래가 더 밝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노조원이든 비노조원이든 노동조합이 있는 일터의 임금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더 높고, 노조가 있는 일터에서 각종 차별 행위 등 부당노동 사례는 적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노동조합과 자녀의 경제적 성공 사이에도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의 리차드 프리만(Richard B. Freeman) 교수와 웰슬리대학교의 유니스 한(Eunice Han) 교수, 진보적 싱크탱크인 미국 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의 브렌단 듀크(Brendan V. Duke), 데이비드 매들랜드(David Madland)가 함께 쓴 논문의 결론은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조 가입률(조직률)이 높은 도시 지역에서 태어난 (저소득층 출신) 아이들일수록 나중에 소득 분포상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 확률이 높다.”

소득 상승 폭이 대단히 컸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난 노조 가입률 말고 다른 변수 가운데에는 소득이 늘어나는 것을 잘 설명하는 변수가 없었습니다.

경제적 계층 이동에 관해 많은 연구를 진행한 스탠포드대학의 체티(Raj Chetty) 교수와 하버드대학의 헨드렌(Nathaniel Hendren) 교수, 그리고 UC 버클리의 패트릭 클라인(Patrick Kline) 교수와 에마누엘 사에즈(Emmanuel Saez) 교수는 저소득층 출신 아이들이 자라서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데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다섯 가지를 꼽았습니다. 한부모 가정의 비율, 불평등 정도, 고등학교 자퇴율, 주거 지역의 계층적 혼재 정도(residential segregation), 투표율과 공동체 활동의 참여율 등으로 측정되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입니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상관관계가 높은 요인은 한부모 가정의 비율이었는데, 체티와 헨드렌 교수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한 이번 연구 결과 노조 가입률은 한부모 가정의 비율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 변수와 비슷한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이번 연구에 대해 전 재무부 장관이자 백악관 경제수석을 지낸 래리 서머스(Lawrence Summers)는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상당히 놀라운 발견입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노조 가입률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것을 우리가 왜 우려해야 하는지 근거를 제공해주는 연구이기도 합니다.”

논문 저자들은 노조 가입률과 그 지역에서 자라난 어린이의 미래 소득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노조 가입률이 높은 지역 노동자들의 평균 소득이 높으므로 그만큼 자녀의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하게 되고, 자연히 자녀의 미래 소득이 높아진다는 설명일 겁니다. 또한, 이익단체인 노조가 정부나 정책 결정자들에게 압력을 가해 최저임금 인상이나 지역 학교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정책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설명도 눈에 띕니다. 노조의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 세 도시(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뉴욕)만 봐도 최저임금이 크게 높아진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단, 뉴욕의 최저임금은 패스트푸드 체인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만 먼저 선별적으로 인상.)

저자들은 청소년기에 부모의 소득이 미국 전체 기준 하위 25%였던 이들이 자라서 29~32세가 되었을 때의 기대소득을 살펴봤습니다. 노조가입률이 10%P 오르면 자녀가 소득 분포상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1.3%P 높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노조 가입률이 16%인 한 도시 지역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부모 소득이 미국 전체 하위 25%인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이 29~32세가 됐을 때 소득 분포상에서 평균 하위 40.7%에 위치한다고 합시다. 이때 노조 가입률이 16%보다 10%P 더 높은 26%라면 자녀의 기대 소득이 하위 42%로 1.3%P만큼 높아질 거라는 뜻입니다. 아동 빈곤율이나 주택 가치 등 다른 요인을 통제하고도 이 결과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했습니다.

혜택은 저소득층 출신 자녀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계층을 막론하고, 부모의 소득과 관계없이 노조 가입률이 10%P 높아지면 자녀들의 기대 소득은 3~4.5% 높아졌습니다. 대개 노조 가입률이 높은 곳은 경제적인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곳이기 때문에 자녀들의 소득 증가는 다른 이들의 소득 증가분을 빼앗아온 것이 아니라고 저자들은 덧붙였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 연구는 노조 가입률과 자녀 소득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혔다는 점입니다. 노조 가입률이 높기 때문에 경제적 계층 이동이 활발하다는 식의 인과 관계를 밝혀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저자들은 말했습니다.

“노조 가입률이 높은 곳에서 경제적 계층 이동도 활발하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보수적 싱크탱크인 맨하탄 인스티튜트의 스콧 윈십(Scott Winship)은 이 연구가 놓치고 있는 사안이 있을 수 있다며 반론을 제기합니다. 특히 어떤 요인 혹은 제3의 변수가 특정 지역의 노조 가입률도 올리고 경제적 계층 이동도 활발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지역 변수가 있을 수도 있죠.”

미국 남부의 애틀랜타나 샬럿 같은 도시에서는 노조 가입률도 낮고 경제적 계층 이동도 활발하지 않은데, 두 가지 현상을 지역적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노조 가입률과 경제적 계층 이동 사이의 상관관계는 우리가 크게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윈십은 지역적으로 비슷한 특징을 갖는 도시들 가운데 노조 가입률, 경제적 계층 이동 정도가 다른 곳을 찾아내 관계를 비교해본다면 더 명확한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여전히 노동조합의 부정적 효과만을 언급하는 이들에게 결정적인 반론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노조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판 가운데 하나가 노조 덕분에 임금이 오를지 몰라도 이는 기업이 고용을 주저하게 만들어 실업률이 오르고 결국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주장 자체도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지만, 실제로 고용률이 낮아지더라도 자녀의 미래 소득 상승분이 이를 만회하고도 남는 효과를 낸다는 게 이번 연구의 결론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약 노조가 지역 사회에 끼치는 손해가 가져오는 혜택보다 더 크다면, 애초에 노조 가입률의 상승과 경제적 계층 이동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도 없을 겁니다. 프리만 교수는 이와는 별개로 실제로 노조가 고용률을 낮춘다는 근거를 찾아낸 연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불평등을 줄이거나 고등학교 자퇴율을 낮추는 등의 효과는 차치하고, 경제적 계층 이동에 영향을 미치는 노조만의 비결이 있을까요? 인과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높은 상관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특정할 수 있을까요? 저자들은 이 문제에 답을 찾는 데 너무 많은 품을 들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논문 내 또 다른 데이터를 토대로 진행한 연구 결과에 이에 대한 힌트가 숨어있습니다. 저자들은 부모의 노조 가입 여부와 자녀의 미래 소득 사이의 관계를 살펴봤습니다. 인종이나 교육 수준, 결혼 여부 등 자녀의 소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다른 변수를 통제한 결과, 아버지가 노조원인 경우 자녀들의 미래 소득이 훨씬 높았습니다. 반면 어머니가 노조원인 경우에는 딸의 미래 소득만 올랐습니다.

이 결과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자들도 명확한 원인을 규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사회학적으로 노조원인 엄마를 보고 자란 딸들이 더 자립심이 강하고 자기 일을 스스로 잘 해서 나중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건실한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인 규범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습니다. 저자 가운데 한 명인 미국 진보센터의 브렌단 듀크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라는 것을 전제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쩌면 부모가 훌륭한 본보기가 됐을 수도 있겠죠.”

역시나 가정에 불과하지만, 노동조합은 노동자들과 전체 지역사회에 특정한 규범을 확립시키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더 잘 인식하고, 부당한 처우에 단합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이런 인식과 규범은 비노조원들에게도, 나아가 지역 사회에도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의 확산이 경제적 계층 이동을 촉진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겁니다.

프리만 교수는 단정적으로 결론을 지을 사안은 아니라며 섣부른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어떤 정책과 제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지와 관계없이, 이번 연구는 정책과 제도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모든 이들에게 상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밝혀냈습니다. 래리 서머스 교수는 이번 연구가 던지는 정책적 함의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며 노조가 다음과 같은 선순환 고리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조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뚜렷하다면 이는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는 다시 노조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런 선순환이 계속 오가다 보면, 개개인의 차원에서는 효과가 미미할지 몰라도 전체적인 효과는 훨씬 클 수도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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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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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조는 기본적으로 노조에 가입된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이고 기업의 경영자나 주주들은 노동자의 이익이 아닌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존재입니다. 각각의 이익은 그 자체로 사회내에서 모두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데 만일 (노조의 몰락 등으로) 어느 한쪽으로 균형이 몰려버린다면 당연히 다른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획득할 수 밖에 없고 이는 크나큰 사회문제를 불러올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노조는 노조대로 노동자들만의 고유한 이익을 추구하므로 노조의 힘만이 일방적으로 과도하게 강해진다면 그것도 문제겠습니다만 솔직히 자본주의 역사상 노조가 기업의 소유자나 경영층에비해 힘이 강했던 케이스 자체가 그리 많지않다는것을 생각해보면 최근의 현실은 참 개탄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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