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어려운 과학 용어를 사용해 사람들을 홀리는 이들은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양자(quantum)”라는 단어가 좋은 예일 겁니다. “양자 치료(quantum healing)”라는 단어는 그저 영기치료(reiki)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습니다. 입자 물리학의 용어가 세제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뇌를 설명하는 데 쓰이기도 합니다. “양자 의식(quamtum consciousness)”이라는 단어는 십여 년 이상 진지하게 토론되었지만, 내게는 이 단어 역시 “잘 모르는 무언가로 다른 잘 모르는 무언가를 설명하는” 그런 일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뇌과학(neuro)”이나 “나노(nano)”가 한때 사람들을 유혹했던 것처럼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지금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후성유전학 역시 다른 단어와 마찬가지로 생물학의 매우 중요한 한 분야입니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를 볼 때, 이 단어는 곧 새로운 “양자”의 위치에 오를 것 같습니다.
인간의 모든 세포에는 동일한 22,000개의 유전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유전자가 모두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각 유전자는 필요한 시간에, 적절한 세포 내에서 활성화됩니다. 이는 우리의 게놈 안에는 정밀한 제어 시스템 역시 프로그래밍되어 있음을 말해줍니다. 후성유전학은 이런 제어 시스템 중의 하나입니다. 어원 그대로 “유전학에 추가된 것들”을 말하며 유전자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서 DNA에 변화를 일으키는 제어 시스템입니다. DNA를 오케스트라의 악보로 생각한다면, 후성유전학은 악보에 적힌 음들을 바꾸지 않으면서, 어떤 소리가 나야 하는지를 여백에 적어놓은 악상 기호와 같습니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자신들만의 기호를 악보에 적게 되며, 이를 통해 모든 공연은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조금씩 다르게 연주됩니다.
유전자 역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조절됩니다. 곧, 유전자에 의해 발현되는 특성들이 이 조절 시스템에 의존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발견한 지 이미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암컷 쥐는 새끼들을 핥으며, 어미가 핥아준 쥐는 스트레스를 덜 받습니다. 그리고 이 쥐들은 스트레스와 관련된 유전자에 후성유전학적 영향을 받습니다. 더구나 후성유전학에 의한 변화는 성장과 함께 바뀔 수 있습니다. 즉, 환경이 유전자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포유류에 있어 이런 종류의 변화는 대체로 세대를 넘어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에게서 아이에게 전달되는 몇몇 흥미로운 예들이 있습니다. 이미 쥐의 경우 여남은 가지가 발견되었고, 사람에게도 그보다는 적은 수이지만 분명한 예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예는 스웨덴 외버칼릭스(Överkalix) 지역의 주민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들은 지난 100년 동안 몇 번의 힘든 기근을 겪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춘기 이전에 기근을 겪고 이를 견뎌낸 사람들의 손자인 남자들은 평균 수명이 매우 길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그 기근에 의해 어떤 능력이 생겼으며, 또 그 능력이 유전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세대간 연구의 기준이 되고 있는 “에이본 모자 종단연구(Avon Longitudinal Study of Parents and Children)”를 조사한 브리스톨의 과학자들 역시 사춘기 이전에 흡연을 시작한 남자들은 사춘기 이후에 흡연을 시작한 이들에 비해 더 뚱뚱한 아들을 낳았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 결과 역시 무언가가 바뀌었고, 그것이 유전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쥐의 경우, 단순한 관찰이 아닌 직접적인 변화를 가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공포나 스트레스가 만든 행동 역시 새끼들과 그 후대의 새끼들에게까지 전달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험과 그 결과들은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아직은 더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 것들입니다. 과학은 안타깝게도 유행에 민감하며 아직 후성유전학이 더 엄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만약 실제로 한 세대가 겪은 변화가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소식입니다. 하지만, 아직 쥐 연구는 한 두 세대까지의 전달만을 보여주며, 이 자체로도 흥미로운 것임은 분명하지만, 이를 혁명적인 발견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창조론자들은 후성유전학을 다윈이 틀렸다는 증거로 이용하며, 후성유전학이 라마르크가 이야기한 “획득 형질의 유전”을 보여준다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후성유전학이 만드는 변화는 자연선택의 기반이 되는 유전자의 변화를 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실제로 후성유전학의 표지가 영원히 유전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이 효과의 크기는 진화의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후성유전학으로 유전되는 특징의 종류와 다윈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특징의 종류는 그 수를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뉴에이지 전도사인 디팍 초프라는 후성유전학을 삶을 바꾸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유전자를 운명이라고 잘못 전제한 뒤, 명상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후성유전학 변화를 만들어 “주어진 운명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사실과 다릅니다. 유전자는 운명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평소에 먹는 음식 만으로도 우리가 가진 유전자의 표현형은 바뀔 수 있습니다. 또, 알려진 후성유전학의 몇 안되는 예들을 볼 때, 후성유전학이 우리에게 좋은 변화만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며, 같은 환경의 변화에 의해 동일한 변화가 항상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외버칼릭스의 후손 중 그 할아버지가 기근을 견뎌낸 남자들은 평균 수명이 길어졌지만, 할머니가 기근을 견뎌낸 여자들은 오히려 수명이 짧아졌습니다. 아직 우리는 이 분야에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합니다.
후성유전학은 흥미로운 분야이지만, 이제 막 시작된 분야일 뿐입니다. 이는 기존의 학설을 뒤엎는 이론이 아니며, 다윈의 주장과 반대되는 주장도 아닐 뿐 아니라, 인간에게 초능력을 부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저 인간에게 주어진 끝없는 운명과 같은, 우리 스스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호기심의 여정에 나타난 하나의 이정표일 뿐입니다. 흥분이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며, 신비주의는 우리가 가장 피해야 할 적입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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