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사람은 인생의 1/3 이상을 직장에서 보냅니다. 따라서 가치 있고 보람찬 진로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는 건강한 사회와 경제를 만드는 데 일조합니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들을 대상으로 한 진로 상담은 여전히 실용적이지 않습니다. 실체를 알기 힘든 열정만을 따르라고 강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일반적으로 진로 선택에 대한 두 가지 조언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높은 연봉’, 둘째는 ‘열정을 가질 수 있는 분야’입니다. 열정을 가질 수 있으면서 물질적인 보상까지 얻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라는 의미이죠.
하지만 이러한 조언의 문제는 대부분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 자신들이 큰 열정을 느끼는지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운 좋게 열정이 느껴지는 분야가 있다고 할지라도 미래에도 이러한 열정이 지속할 수 있을지 쉽게 장담하기 힘들죠. 게다가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하거나 탐색한다고 해서 쉽게 열정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흔히 사람들은 열정이 우리의 마음속 어딘 가에 이미 가공된 상태로 잠재하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열정은 ‘어딘가에 있는 것’이라기 보다 의미 있는 일에 이바지하면서 ‘점점 발달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청년 시절 스티브 잡스를 사로잡은 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오히려 불교였죠.
와튼 스쿨의 아담 그랜트(Adam Grant) 교수는 의미 없는 직업의 공통점은 타인의 삶에 아무런 이바지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연구는 본인이 수행하는 일이 자신보다 타인의 삶에 크게 이바지할 경우 일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타인을 돕는 데서 느끼는 행복이 자신을 위한 일에서 느끼는 행복보다 훨씬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죠.
현실적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이 열정을 느끼는 분야에서만 일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구성원 모두가 각자 어느 분야에서 열정을 느끼는지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타인의 삶에 이바지하는 삶은 모두가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행복은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사회 초년생들에게 무작정 열정을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타인의 삶에 이바지할 수 있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Qu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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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진로선택시 왜 이 일을 하는가란 질문에 나와 가족을 위해서 라고 쓰고나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죠.
혹자는 진로 상담보다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2를 플레이하는게 진로 선택에 도움된다고 하던데, 틀린 표현이 아닌지도.
트럭 운전사 적성 때문에 그러는게 아니라, 직업과 취미의 경계를 체험한다는 측면에서 꽤 적절한듯.
동의하나 남의 삶을 바꾸는데 이바지하는 일의 정의는 더 어려울 수도 있음. 읽으면서 고민해봤는데 어떤 일이든 남의 삶을 바꾸는데 이바지할 수 있음. 진로선택에 도움을 주는 조언이라기 보단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태도나 마음가짐에 대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짐
기사 본문도 맞는 말이고 sj님도 맞는 말인듯 해요. 하나 더 보태자면 자기에게 특화된 분야의 직업을 가진다면 타인에 대한 기여도 더 쉽게 하면서 그에 따른 만족도 쉽게 얻을 수 있겠죠.
음 꽤 타당해요 공감
한국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었으면 좋을듯
열정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점에 대한 지적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타인의 삶에 기여한다거나 어떤 공공선을 추구하는 일이 더 많은 만족을 준다는 관찰결과가 그러한 삶의 당위를 설명해주지는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