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와 사회운동가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이야기겠지만, 찬반이 첨예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토론을 통해 누군가의 의견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보도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한 동성애자 인권 단체가 집집마다 사람을 보내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한 것이죠. 실험을 수행한 두 정치학자는 가가호호를 방문한 결과 972명의 대상자 가운데 상당수가 의견을 바꾸었고, 그 효과가 지속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연구들과 대치되는 결과였기 때문에 발표 즉시 <사이언스>지에 실리기도 했죠.
뭔가 희망이 보인다구요? 낙관하기는 이릅니다. 이 실험은 엉터리였던 것으로 판명되었으니까요. 충격적인 결과에 놀란 대학원생 두 명이 이 실험을 재연하기 위해 첫 단계인 사전 설문 조사를 했는데, 도저히 비슷한 수치를 얻을 수 없어 원 연구자에게 연락을 했지만 “우연히” 사전 설문 조사 결과를 삭제해버렸다는 답을 얻은 것이죠. 실험 결과를 분석하자 수상한 점이 발견되었고, 이후 <사이언스>도 게재를 철회합니다.
물론 이 실험이 엉터리였다고 해서 쌍방향 대화가 전혀 효과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이 실험이 엉터리인줄 모르고 참여했던 인권 단체는 설득을 위한 대화법을 자체적으로 개발해냈고, 그 효과를 믿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소리내어 말하다보면, 그 의견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고, 생각보다 반대 의견에 마음이 열려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는 이론에 기반한 대화법이죠.
그러나 기존의 연구들이 갖는 무게는 상당합니다. 의견이 양극화된 사안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에게 말로 설득하는 것은 거의 소용이 없고, 오히려 반대 의견을 듣고 나서 더욱 자기 신념을 굳힌다는 것이 정설이니까요.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미국 내 동성 결혼에 대한 여론은 어떻게 빠른 시일 내에 크게 달라진 것일까요?
이번주 갤럽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내 동성 결혼 지지율은 작년보다 5%p 올라 역대 최고인 60%를 찍었습니다. 2004년과 2008년, 2012년 대선 때 약간 주춤했지만, 1996년 이후 엄청난 상승세를 탔죠. 비슷하게 첨예한 사안인 사형 제도나 임신 중절에 대한 여론에서는 이런 추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특이한 현상입니다.
벽장 속에 있던 동성애자들이 세상으로 나오면서 동성애자인 가족과 친구를 접한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충분한 설명은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커밍아웃을 했대도 지난 10년 간 동성 결혼 지지자가 37%에서 60%로 늘어난 것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죠. 게다가 신념이 확고한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 중에 동성애자가 있어도 이들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믿기도 하니까요.
뉴욕대의 사회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판단의 목적은 진실 추구보다는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에 자신의 믿음을 정당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의견을 갖는 데도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죠. 만일 사람들의 도덕적 입장이 빠르게 변했다면,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다른 의견이 용인된다는 시그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임신 중절, 사형제도, 이민, 기후 변화와 같은 미국의 정치적 사안들은 일종의 그룹 역학을 보입니다. 리버럴한 민주당 지지 세력과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 세력 사이의 싸움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한 쪽에 속한 사람은 자신의 입장을 쉽게 바꿀 수 없죠. 동성 결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민주당 내 동성 결혼 지지세가 상승하는 동안, 공화당 내부에서는 거의 여론 변화가 없었죠. 그러나 2009년부터 상황은 크게 달라집니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20% 안팎에 머무르던 공화당 내 지지율이 2014년에는 30%에 달하게 된 것입니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생각이 달라진 데는 개인의 성생활에 대해 국가가 간섭할 수 없다는 리버테리안적 사고, 매스미디어의 영향, 생각이 다른 젊은 세대의 부상 등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2008년 전에도 있었지만 거의 영향력이 없었죠. 결정적인 사건으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2008년 대선입니다. 2008년 대선 패배로 인해 공화당이 이데올로기적 격변을 겪게 된 것이죠.
이 격변의 시기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의료 보험과 기후 변화와 같은 사안에서는 티파티의 부상으로 당의 보수적인 경향이 오히려 강해지기도 했지만, 대외 정책과 동성 결혼의 경우에는 묻혀있던 당내 이견들이 튀어나오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부시 대통령 때 법무차관을 지낸 씨어도어 올슨이 캘리포니아의 동성결혼 불법화 법안에 소원을 제기했고, 2010년에는 공화당 전국의장을 지낸 켄 멜맨이 벽장에서 나와 동성 결혼 지지 캠페인을 시작했죠. 청년층의 표를 잃지 않으려면 당이 이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의견은 공화당 선거 전략의 핵심이었던 기독교인들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졌지만, 2008년 대선 패배로 인해 선거 전략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재고가 이뤄진 것입니다.
최근 미국 사회의 경험을 통해 드러난 것은, 말로 설득해 의견을 바꾸기 어렵다는 가설이 개인 간 대화에는 적용될지 몰라도 집단의 문제에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집단이 한꺼번에 마음을 바꾸는 일은 일어난다는 것이죠. 동성 결혼에 대한 미국의 여론이 크게 달라진 것은 개개인이 한 사람씩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이라기보다, 공화당이라는 거대한 이념 집단 내부에 큰 균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 집단에 속해 있던 사람들은 균열 덕분에 다른 생각도 용인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일어나면 여론이라는 것은 아주 빠르게 바뀔 수도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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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글이네...
이런 얘기의 실제 예를 신문에서 관찰하면 재미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