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에서 시속 300km를 웃도는 초고속 열차 시대가 열린 지도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초고속 열차는 안전을 신뢰할 수 있을 뿐더러 가격도 경제적인 이동 수단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때문에 지난 13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암트랙 열차 탈선 사고가 났을 때, 해당 열차가 초고속 열차도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란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것도 뭐든지 다 가장 빠르고 가장 최신식일 것 같은 미국에서였으니까요.
존 뵈이너(John Boehner) 하원의장은 사고 직후 의회에서 철도 관련 예산을 줄인 것과 사고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다고 보는지 묻는 기자를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바보 같은 질문 하지 말라면서 말이죠. 이달 초 미국 하원 세출위원회(House Appropriations Committee)는 암트랙 관련 예산을 24억 5천만 달러로 늘려달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요구를 반토막내 돌려보냈습니다. 현재보다도 오히려 예산을 2억 5천만 달러 가량 줄인 11억 달러로 줄이겠다고 한 겁니다. (이번 사고로 인해) 다음달 본회의에서 다뤄질 암트랙 예산 책정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철도 교통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뵈이너 하원의장의 비아냥보다는 기자의 질문이 더욱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철도 안전은 돈 들이는 만큼 향상됩니다.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 비해 철도 시설 전반에 돈을 훨씬 덜 썼습니다. 여객 열차 노선을 비롯한 시설 자체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적음에도 안전 사고가 훨씬 빈번하게 일어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열차사고 사망률은 유럽이나 한국보다 두 배 가까이 높고, 호주보다는 무려 세 배나 높습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기차가 (미국보다) 훨씬 더 안전한 것도 정부가 꾸준히 예산을 배정해 선로를 점검하고, 전자 제동 장치 등 새로운 안전 기술을 도입해왔기 때문입니다. 유럽 승객 연맹(European Passengers’ Federation)의 어윈(Christopher Irwin) 부회장은 “끊임없는 투자와 개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인 투자 액수를 비교해봐도 미국과 다른 나라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납니다. 미국은 지난 2013년 철도 시설에 전체 GDP의 0.1%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는 영국의 1/4, 프랑스나 호주의 1/6 수준입니다. 소위 선진국들 뿐 아니라 인도, 러시아, 터키 등 다른 나라들도 미국보다 (GDP 대비) 훨씬 더 많은 예산을 썼습니다. 국민 1인당 지출을 비교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011년 미국은 철도 시설에 국민 1인당 35달러를 썼습니다. 일본이 1인당 100달러 가량 쓰고, 유럽연합 대부분 나라들도 비슷한 수준입니다. 51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사망 사고나 탈선 사고를 일으키지 않은 일본의 초고속열차 신칸센이나 30년 넘도록 큰 사고 없이 운영되고 있는 프랑스 TGV는 투자의 중요성을 직접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대형 사고가 일어났던 스페인이나 중국을 봐도 전반적인 열차 안전 지수는 세계적으로 낮은 편에 속합니다.
국제 교통 협의회(International Transport Forum)의 스티븐 퍼킨스(Stephen Perkins)는 유럽과 미국에서 각각 교통 수단이 발달한 과정에서도 차이가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유럽 각국은 19세기 넓은 땅을 승객을 실어나르는 기차와 철도를 짓는 데 할애했습니다. 철도는 이내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세금을 들여 시설을 현대화하고 확장하는 계획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철도가 중요했기 때문에 초고속 열차 개발과 도입도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초고속 열차 선로는 물론이고, 기존 선로의 주요 구간에도 연속 감시기(continuous-monitoring systems)를 비롯한 새로운 안전 장치가 설치됩니다.
미국은 달랐습니다. 우선 19세기 미국은 철로보다 도로를 짓는 데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국민들도 도로를 늘리는 방안을 전반적으로 선호했고, 한 번 발을 들여놓지 않은 곳에 새로운 철로를 까는 일은 지난한 일이기 때문에 당시 노선이 오랫동안 굳어집니다. 제때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 쌓아두면 나중에 한꺼번에 문제를 고치려 할 때 돈이 훨씬 많이 들기 마련입니다.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려 25조 원이나 들여 가까스로 끝마쳤던 보스톤의 빅딕(Big Dig) 고속터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난 2008년 미국 의회는 각 선로에 자동 속도 제어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을 통과시킵니다. 법대로라면 올해 말까지 모든 선로에 이 장치가 설치되어야 하지만, 아마도 수많은 구간이 의무 사항을 이행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장치는 유럽 대부분 나라의 주요 선로에 설치돼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현재 약 15,000km 구간에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설치돼 있는 자동 속도 제어장치를 오는 2030년까지 75,000km로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근처에서 지난 2013년 일어났던 끔찍한 탈선 사고도 자동 속도 제어장치가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습니다. 속도를 줄여야 했던 곡선 선로 구간에서 규정 속도보다 훨씬 빠른 시속 190km로 달리다가 탈선한 사고였으니까요. 경고음이 울렸을 땐 이미 늦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도 마찬가지였죠. 기계가 알아서 브레이크를 잡았다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안전 시설을 강화한다고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안전 점검과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 나라에서도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스페인이 그렇고, 일본에서도 지난 2005년 오사카 근처에서 탈선 사고로 106명이 숨졌습니다. 중국에서는 지난 2011년 신호 체계 고장으로 열차 두 대가 서로 충돌해 40명이 숨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이 지난 2008년부터 새로 증설한 철로 구간의 길이를 모두 더하면 장장 16,000km가 넘습니다. 전 세계 다른 모든 나라가 같은 기간 동안 새로 지은 선로보다도 길죠. 때문에 중국도 전체 통계를 내보면, 열차 사고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 나라에 속합니다.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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