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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자살: 어떻게 사회적 완벽주의는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가(3/4)

사회적 완벽주의자는 자신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기대를 가집니다. 그의 자존감은 때로 불가능한 수준의 성공을 유지하기를 요구합니다. 여기에 실패할 때 그는 스스로 무너지게 됩니다.

자신의 목표나 역할, 열망에 집착하는 이들이 사회적 완벽주의자만은 아닙니다. “개인 계획(personal projects)” 연구로 잘 알려진 케임브리지 대학의 심리학자 브라이언 리틀은 우리가 자신의 계획을 곧 자기자신으로 여길 때 역시 이런 자신의 목표와 역할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버드 수업에서 종종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계획이 곧 여러분들입니다.”

리틀에 따르면 세상에는 다양한 계획(projects)이 존재하고 각각의 계획은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닙니다. 개를 운동시키는 것, 교장이 되는 것, 성공적인 아버지와 남편이 되는 것 모두 개인 계획에 속합니다. 놀랍게도 이 계획들이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는 자신의 행복에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이 계획이 성취 가능한 것인지가 우리의 행복에 훨씬 더 큰 영향을 줍니다.

이런 개인 계획이 실패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대처해야 할까요? 여기에 어떤 남녀간의 차이가 발생하고, 이 때문에 남자가 더 자살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남자가 자신의 실패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감정적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더 어려워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는 그들이 자신의 개인 계획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리틀은 그의 책 “나, 나 자신 그리고 우리(Me, Myself and Us)”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여성들은 자기 계획의 현재 상황과 어려움을 밝히려 하는 반면, 남성들은 이를 숨기려 하는 경향이 있다.”

고위 임원들에 대한 연구에서 리틀은 남녀간의 또 다른 명백한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남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물을 맞닥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우선시 합니다. 반면 여자들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 곧 조직의 분위기를 가장 우선시합니다. 이들이 사무실 바깥의 인생에서도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을 수 있겠지요. 나는 스테레오타잎을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조사결과는 매우 분명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UCLA의 셀리 테일러가 2000년 발표한 스트레스에 대한 생물-행동학적 반응 연구 역시 이 결과를 지지합니다. 그들은 남자들은 잘 알려진 “투쟁 혹은 도피(fight or flight)” 반응을 보이는 반면, 여자들은 “배려와 친교(tend and befriend)”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여성들 역시 자살을 매우 진지하게 고려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회적 관계 때문에, 곧 ‘애들은 어떡하지? 엄마는 어떻게 해?’와 같은 생각을 떠올림으로써 자살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게 됩니다.” 반면, 남자들에게 죽음은 “도피(flight)”의 궁극적인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도피의 극단적 형태는 결심을 필요로합니다.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토마스 조이너는 자살을 고려한 이들과 실제로 자살을 행동으로 옮긴 이들의 차이를 연구해 왔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이를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그 부분에서 남녀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조이너는 CCTV에 잡힌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에 대해 묘사했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자신의 목숨을 끊겠다는 듯이 행동하지만, 마지막 순간 두려움으로 잠깐의 주저를 보입니다. 그 주저함이 결국 그들의 목숨을 살립니다.” 그렇다면 남자들이 덜 주저한다는 말인가요?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서구의 국가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자살 시도를 더 많이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 가지 이유는 자살 시도를 한 남자들은 실제로 죽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목을 매거나 총을 사용하는 반면, 여자들은 약을 먹고 자살하려 합니다. 자살 방지를 목적으로하는 단체인 사마리탄의 심리학자 마틴 시거는 이런 자살 방법의 차이가 결국 남자들의 자살 의도가 더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택하는 방법이 곧 이들의 심리를 반영합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데니얼 프리먼은 자해를 시도했던 환자 4,415명에 대한 연구에서 역시 남자들의 자살 의도가 훨씬 더 높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가설은 아직 증명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분명하게 밝혀졌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물론 이를 보이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려운 일일겁니다.”

오코너 역시 이 의도의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건 매우 어려운 문제이고 어떤 최신 연구가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거는 이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에게 자살은 곧 처형과 같습니다. 곧, 자신을 세상에서 제거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패배감과 부끄러움만이 이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남성은 다른 이들을 보호하고 아끼며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낍니다. 여자들 역시 직장을 잃었을 때 이를 고통스러워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자아나 여성성을 잃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남자들은 직장을 잃었을 때 자신이 더 이상 남자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이는 유명 심리학자 로이 바우메이스터의 이론인 자살이 곧 ‘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립니다. “자신의 가족을 책임질 수 없는 남자는 어떤 면에서 더 이상 남자가 아니게 됩니다. 여자는 어떤 경우에도 여자이지만, 남성성은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이죠.” 바우메이스터의 말입니다.


중국에서 부패한 공무원이 자살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이는 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치욕을 피하기 위한 것이지만, 또한 가족을 불명예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뇌물 혐의로 고소되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살한 것입니다. 조사를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죠 [라고 그는 생각한 듯 합니다.]” 김의철 교수의 말입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수치심은 자살의 주요 원인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한국과 다른 나라와의 차이입니다. 애틀랜타 에모리 대학의 인류학자 치카코 오자와-데 실바는 일본의 경우, “한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바침으로써 명예가 회복되거나 또는 가족이 수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김 교수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 또 다른 짐으로 작용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수치심은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유교 사회에서는 범죄자의 3대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에서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는 “사람 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서구보다 자아에 대한 관념(sense of self)이 불분명합니다. 오히려 자신이 속한 다양한 그룹으로 쉽게 확장됩니다. 이는 다른 이에 대한 책임감을 더욱 크게 느낀다는 사실을 말해주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자살을 더 진지하게 고려하게 됩니다.

오자와-데 실바는 일본의 경우 자아는 곧 그의 사회적 역할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 앞에 직업을 붙여 소개한다고 말합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데이빗이라고 합니다’ 대신에 ‘안녕하세요, 저는 소니에서 일하는 데이빗이라고 합니다’가 되는 것이죠. 아주 가벼운 만남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러나 경기가 나빠질 때 이런 직업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매우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자살은 수십 년, 아니 수 세기 동안 도덕적 가치를 가진 행동으로 여겨져왔습니다. 아마 사무라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회사를 가족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회사의 대표는 ‘이 회사를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같은 말을 하며 자신의 목숨을 끊습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이 언론에서는 명예로운 행동으로 보도되곤 합니다.” 일본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높습니다. 2007년 일어난 자살 중 2/3가 남자들이었습니다. “부계 사회에서 책임은 물론 아버지의 것이지요.”

4부로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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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t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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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는 남자들을 보기가 참으로 힘들어 졌지요. 남자는 세 번 운다 이런 말은 다시 해석되어야 합니다. 울지 않아야하는게 아니라 울음이 그만큼 진하다란 뜻으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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