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에 나온 멀 해거드의 노래 <오키 프롬 머스코기>는 “레드 아메리카(공화당 지지도가 높은 지역-역주)”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레드 아메리카”의 주제곡으로 부상했습니다. “머스코기에서는 대마초도, LSD도 하지 않고, 올바르게 살며, 자유를 사랑한다”는 가사가 들어간 노래였죠. 하지만 시절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인구 4만이 채 되지 않는 오클라호마 주 머스코기에는 마약중독자 치료소가 아홉 곳에, 마약사건만을 다루는 법원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2013년 출생한 아기의 62%가 미혼모에게서 태어났고, 10대 임신률은 미국 평균인 천 명 당 29.7명보다 두 배 많은 59.2명에 달합니다. 머스코기는 레이건 때 부터 최근 세 번의 대선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공화당을 지지해온 지역입니다.
갑자기 왜 이 동네 이야기를 꺼내냐구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보수주의자들이 지금 볼티모어를 진보주의와 민주당의 실패를 드러내는 상징인마냥 취급하고 있지만, 머스코기의 상황을 보면 사회 질서 붕괴의 책임이 민주당에만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공화당 성향 노동자 계급이 처한 상황이 악화되는 현실은 보수주의 도덕 아젠다가 미국의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볼티모어 사태가 일어나자, 보수 언론과 논객들은 앞다투어 이 지역에서 민주당이 오랫동안 집권해온 점을 강조하며, 이번 사태는 “진보의 실패”이며 지역사회에서 아버지도, 남성 롤모델도, 규율도, 가치관도 사라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터졌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들이 하나같이 “전통적인 가족상”의 붕괴가 사회 혼란의 원인이라고 꼽은 것이 무색하게도, 전통적인 가족상 붕괴는 민주당 성향의 소수인종 커뮤니티에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백인/공화당 성향의 지역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죠.
일례로 지난 수 십 년 사이 흑인 커뮤니티에서 혼외출생자 비율이 대단히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1980년에서 2013년 사이 증가율은 25%에 지나지 않았던 것에 비해, 백인 혼외출생자는 200% 이상의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통계가 나와있는 30개 주 가운데, 10대 임신률이 가장 높은 곳도 모두 “붉은 주”들 이었습니다. 2010년 백인 10대 임산부 수 미국 평균은 천 명 당 38명이었는데, 미트 롬니 후보를 지지했던 9개 주에서 이 수치가 평균보다 10명 이상 많았습니다.
기독교 우파와 티파티가 세력을 떨치는 곳에서 10대 임신률이 높다는 것은 이들이 설파하는 사회적 보수주의 독트린이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변화를 막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붉은 주”에서 맹위를 떨치는 보수적 종교들은 전 세계적인 현상인 이른바 “제 2차 인구 변천” 앞에서 완전히 무기력합니다. 지금 전 세계는 혼전 성관계와 싱글 부모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가족에 대한 의무보다는 개인의 자율성을 더 중시하는 쪽으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도덕적 가치는 특정한 행위에 낙인을 찍었지만, 도덕적 가치의 통제력이 점점 약해지면서 낙인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현상은 동거 커플이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볼티모어와 무스코기는 둘 다 이런 추세 속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저명한 인구학자 론 레생은 앞으로 흑인과 백인, 붉은 주와 푸른 주 간 결혼과 출산을 둘러싼 여러 통계의 차이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어느 집단에서나 결혼과 출산을 줄고, 동거는 늘어난다는 것이죠.
현재 24개 주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공화당은 이른바 “진보적” 문화 트렌드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임신 중절을 어렵게 만들고, 동성혼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동성애자 고객을 거부할 수 있는 “종교자유법”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볼티모어 시민과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악마로 몰아가는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떠받드는 가치관 역시 변화의 물결 앞에 무력하다는 사실에 눈을 감고 있는 셈입니다. 볼티모어의 흑인 시민들이 겪고있는 문제는, 무스코기의 백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민주당 의원, 페미니즘, 전통적 가족상의 붕괴를 탓하려면, 무스코기 시 내외의 200여 개 교회에도 책임을 물어야지요. 시대의 흐름에 잘 적응하지 못한 노동계급의 어려움을 직시하지 않고, 단기의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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