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세계칼럼

N.D.B. 코놀리, “볼티모어 사태는 흑인들의 문화 탓이 아닙니다.”

옮긴이: 미국 볼티모어에 위치한 존스홉킨스 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N.D.B. 코놀리 교수가 볼티모어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과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우리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편견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담은 칼럼을 뉴욕타임즈에 보내왔습니다.

미주리 주 퍼거슨(Ferguson)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던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지고 이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일 때 많은 사람들은 퍼거슨 시 정부의 선출직 공무원들과 경찰들 가운데 흑인을 찾기가 거의 어렵다는 사실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연방 법무부도 보고서에서 백인들로 가득한 퍼거슨 시 의회가 시 정부 살림을 꾸려나갈 수입원으로 공공연하게 흑인들에게 각종 벌금을 물린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볼티모어에서 25살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Freddie Gray)가 경찰에 석연찮은 이유로 체포되고 압송되는 과정에서 숨졌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어느덧 공식처럼 굳어진 상황을 떠올렸을 겁니다. 백인 경찰이 큰 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흑인 청년을 불심 검문하거나 과잉 대응해서 폭력을 쓰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겠지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아마 경찰 수뇌부나 시 정부도 결국 죄다 인종차별주의 성향이 있는 백인들로 가득할 거라고 말이죠. 그런데 볼티모어의 상황은 그 공식과 사뭇 달랐습니다. 우선 시장이 백인이 아니라 흑인 여성입니다. 시 경찰청장도 흑인이고, 시 의회 의원들 가운데 가장 많은 인종 역시 흑인입니다. 흑인들이 정책을 비롯한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해 온 볼티모어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백인들이 압도적인 권력 구조가 아닌데 이런 일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다른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흑인들의 문화가 저급하거나 폭력적”이라는 주장입니다. 경찰의 과잉 진압과 무능한 시 정부의 초기 대응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시위를 벌이다 상점을 약탈하고 경찰차에 불을 지르는 모습이 TV 뉴스를 통해 보도되자, 흑인들이 받아온 차별에 공감해온 사람들도 저건 좀 지나친 거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여기에 흑인인 롤링스블레이크(Stephanie Rawlings-Blake) 볼티모어 시장이 거리에 나선 시위대를 “폭도(thugs)”라고 부르고, (역시 흑인인) 오바마 대통령이 “범죄자(criminals)”라는 표현까지 쓰자 사람들은 저들의 분노를 이해는 하지만 그를 표현하는 방식이 지나쳤다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롤링스블레이크 시장은 이내 자신의 발언이 경솔했다며 사과했습니다. 실은 그녀와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흑인 엘리트들이 흑인 문화가 열등하다는 편견과 지난한 싸움을 벌여왔기에, 이번 소요 사태를 흑인들의 문화 탓으로 돌리려는 시각에 반발하는 마음에서 나온 발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사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칭송했던 사람 한 명을 꼽으라면 토야 그래햄(Toya Graham) 씨일 겁니다. 싱글맘인 그래햄 여사는 시위대에 서 있는 아들을 보고 격분해 머리채를 끌어잡고 아들을 매섭게 다그쳤죠. 그녀는 젊은 혈기에 시위대와 함께 있었을 아들을 잃기 싫었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볼티모어 경찰청장은 “자식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어머니의 참 모습”이라며 그녀를 추켜세웠지만, 이 뉴스는 마치 성난 흑인들을 잠재우려면 힘으로 찍어누르는 수밖에 없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흑인들을 잠재적 폭도로 상정한 듯한 경찰들이 흑인 학생들이 모여있던 쇼핑몰 주위를 사실상 포위한 채 이들을 필요 이상으로 압박했다는 사실은 이런 보도로 잊혀지기 딱 좋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번 사태는 흑인들의 문화 탓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퍼거슨과 볼티모어, 아니 미국 어디라도 다를 바 없는 잘못된 정책과 정치 제도 탓입니다. 인종 차별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프레디 그레이가 마약을 소지하거나 유통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기까지의 환경, 그가 죽은 뒤 일어난 시위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공권력의 강경 진압과 체포를 비롯한 일련의 과정은 여전히 피부색을 따라 미국인들은 다른 혜택을 누리고 다른 사회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흑인들을 인간이 아닌 재산으로 여겼던 노예제의 역사적 경험에서 인종 차별이 비롯됐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노예제는 사실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한 제도인 동시에 다른 사람을 하나의 상품이자 재산으로 여겼던 제도입니다. 노예가 대출의 담보가 되고, 직접 꿔주고 받는 현물이기도 했었죠. 이제 더 이상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재산으로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법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대신 집과 같은 부동산이 많은 사람의 재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죠. 노예제가 있을 때 국가가 재산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노예에게 상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처럼, 오늘날의 국가는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된 흑인들이 사유 재산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흑인들이 주로 모여사는 볼티모어 서쪽 빈민가에서 이들의 생명에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위협과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점점 벼랑으로 몰리며 받아온 점진적인 사회와 자본의 압박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건 상점을 약탈하는 폭도들의 자극적인 영상이니까요.

시민들의 소득, 재산이 충분치 않아 세수가 부족한 지방 정부들이 빈민가에 경찰력을 집중해 불법주차 범칙금을 비롯한 각종 벌금을 매기고 이로부터 부족한 세수를 메우는 방식은 미국 곳곳에서 흔한 일입니다. 흑인들은 대표적인 희생양입니다. 볼티모어가 있는 메릴랜드 주도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는 대폭 감면해주면서 부족한 세수는 빈민가 흑인들의 주머니에서 채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선거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는 정책은 웬만한 용기를 갖지 않고는 내기 어려운 정책이라 더 그렇습니다.

공권력과 정부 당국이 당장 일어나는 폭력 시위를 방관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개인의 비행이나 특정 인종의 문화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빈곤층이 일상에서 겪는 박탈감과 생존의 위협에 대해 차제에 광범위하게 짚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인종별, 사회 계층별로 갈수록 뚜렷하게 일어나는 주거지역 분리 문제와 슬럼화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더 공정한 세제를 도입하며, 공공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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