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알파벳과 숫자를 볼 때 그에 해당하는 고유의 색을 느끼는 공감각자였습니다. 이와 같은 공감각을 지닌 이들을 색-자소 공감각자라 부릅니다. 색-자소 공감각은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공감각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으로 자주 발견되는 공감각은 색-청 공감각으로서 특정한 음계나 소리에서 색을 느낍니다. 공간-시간 공감각자들은 요일이나 열두 달이 그들 주변을 둥그렇게 둘러싼 것처럼 느낍니다.
부인과 자녀가 그 자신처럼 모두 공감각자였던 나보코프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내 아들 드미트리가 라일락색으로 느끼는 글자는, 내겐 분홍색이고 내 아내에겐 파란색이지요. 그게 알파벳 M입니다. 어쩌면 그 보라색은 분홍과 파랑의 조합일 수도 있겠습니다. 마치 유전자가 수채화를 그리는 것만 같죠.”
공감각은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 중에서도 가장 주관적이면서도 선천적인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공감각자들이, 그들이 매일 체험하는 감각 경험이 이상하다거나 독특하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런 경험을 입밖에 꺼낸 공감각자들은 보통 친구들의 놀라는 반응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뭐, 내 이름에서 콩 수프 맛이 난다고?”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공감각은 한때 여겨졌던 것처럼 특정 사람들만의 능력은 아닌 듯합니다. 공감각자들이 지닌 풍부한 색채의 팔레트와 그에 뒤따르는 선명한 감각은 실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행동실험의 결과를 볼 때, 온타리오 맥마스터 대학의 발달심리학자인 마우러 박사는 영아의 뇌가 성숙하면서 신경연결망이 (기능에 따라) 간추려지고, 그 과정에서 공감각 역시 줄어들거나 사라진다는 가설을 내놓았습니다. 오레곤 대학의 신경과학자인 헬렌 네빌은 1995년, 6개월 된 영아에게 말소리를 들려주자 뇌의 청각영역과 시각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세 살이 되자 그러한 현상은 사라졌습니다. 동일한 말소리를 들려주자 오직 청각영역만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처럼 감각과 감각간의 상호작용이 가능하고, 그러한 상호작용이 극대화된 형태가 공감각이라면,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감각은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가령 높게 들리는 ‘톡’ 소리는 낮게 들리는 ‘그르렁’ 소리에 비해 좀더 작고 부드러운 모양을 연상시킬 것입니다. 시카고의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는 실험의 참가자에게 ‘밀’과 ‘말’이라는 뜻 없는 두 소리를 큰 탁자와 작은 탁자에 각각 연결시켜 보라고 했습니다. 한 명을 제외한 참가자 전원이 ‘밀’을 작은 탁자와 연결지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런 식의 상호작용이 연속적인 현상이 아닌지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공감각에 뒤따르는 풍부한 감각을 공감각자 아닌 이들은 약하게, 상대적으로 공감각자들은 강하게 느끼는 식입니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신경과학자 에드워드 허버드 박사는 말합니다. “사실 세상에서 오는 경험이란 게 서로 다른 감각기관들로부터 들어온 정보를 지속적으로 조합한 결과물이지요. 공감각은, 그러한 결과물의 강화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인 심리학자 해리 맥거크가 1976년에 발견한 <맥거크 효과>가 가장 유명한 예일 것입니다. 반복해서 ‘바’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반복해서 ‘가’라고 발음하는 영상과 함께 들으면 그 소리는 ‘바’와 ‘가’의 연속선상에 있는 ‘다’라는 음절로 들립니다.
보통 아이들과 자폐아들에게 이러한 맥거크 효과를 실험했습니다. 보통 아이들과 자폐아 모두 반짝이는 불빛과 휘파람 소리처럼 뜻 없는 자극은 정확히 지각했지만, 자폐아의 경우 ‘가’ 로 발음하는 영상과 ‘바’ 로 발음하는 목소리를 함께 보여/들려 줬을 때 대부분의 자폐아들이 ‘다’대신 ‘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실험을 주도한 스티븐슨 박사는, 자폐증을 지닌 아동들은 특히 말소리의 경우, 그들이 본 것과 들은 것을 결합하는 데 일반 아동보다 느리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를 돌아볼 때, 우리 모두는 하나로 이어지는 공감각의 스펙트럼 위에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자폐증에 가까울수록 공감각을 지각하는 능력은 좀더 줄어들겠지요. 공감각은 한 개인의 마음 속 감각들을 하나로 연결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을 연결합니다.
역자 주: 한편, 자폐증을 지닌 이들이 공감각자일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약 세 배 정도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바론-코헨 연구팀은 2013년, 자폐증이 있는 성인과 일반인 집단에게 공감각 검사를 실시했는데, 자폐증 집단에서 공감각자가 발견된 비율이 세 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발견된 공감각의 종류는 가장 자주 발견되는 색-자소 및 청-자소 뿐 아니라 맛, 냄새, 통증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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