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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얽힘은 실재하는가

50년전 아일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은 “Physics, Physique, Fizika”라는 한 이름없는 논문지에 짧고 특이한 논문 한 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당시 연구년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있었고, “피지컬 리뷰(Physical Review)”라는 저명한 논문지에 실을 돈을 동료에게 부탁하기는 너무 수줍었던 것입니다. 그가 투고한 논문지는 몇 년 뒤 사라졌지만 그의 논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그 논문은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벨의 논문은 양자얽힘이라는, 우리의 상식과 크게 배치되는 양자이론 중에서도 가장 기이한 특징에 관한 것입니다. 얽힘(entanglement)이란 과거에 서로 상호작용했던 전자와 같은 작은 입자들이 서로 멀리 떨어진 뒤에도 어떤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한 입자의 위치나 운동량, 스핀과 같은 특성을 측정했을 때 그들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다른 한 입자의 해당 특성이 “즉시” 바뀌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그 변화가 “즉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두 입자의 거리가 은하만큼 멀어진다고 하더라도 한 입자를 측정하는 순간 다른 입자의 변화는 빛보다 빠르게 일어납니다.

이 얽힘이라는 현상은 물리학의 다른 이론과는 맞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이론이 이런 비상식적인 결론을 이야기한다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한곤 했습니다. 그는 1948년 한 동료에게 “유령 같은 원격작용(spooky actions at a distance)”이라고 이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벨은 자신의 논문에서 양자이론에는 얽힘이 있어야만 함을, 즉 이 괴상한 현상이 양자이론의 필연적인 결과임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벨은 자연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함을 실험으로 보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양자이론의 수식에 따르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보였을 뿐입니다. 따라서 질문은 남아있었습니다. 정말 양자얽힘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70년대 초반, 소수의 대담한 물리학자들은 이런 “철학적”연구는 괴짜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연구했고, 그 답이 긍정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 연구자는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젊은 포닥이었던 존 클라우저였습니다. 그는 실험실의 남는 부품과 종이테이프만으로 양자얽힘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냈습니다. 대학원생 스튜어트 프리드만과 함께 그는 수천 쌍의 광자를 양쪽 반대 방향으로 쏘았습니다. 그리고 그 양쪽 끝에서 광자의 특성인 편광을 측정했습니다.

벨은 양쪽의 편광을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따라 두 광자가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한다면 나올 수 없는 특별한 상관관계를 가짐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클라우저와 프리드만은 벨이 예측한 상관관계가 실험으로 나타남을 확인했습니다.

다른 실험들이 이어졌습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알랭 아스펙트는 그 변화가 ‘즉시’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안톤 자일링거는 셋 혹은 그 이상의 입자들이 얾힐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밝혀야 할 일들은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위의 모든 실험들은 양자얽힘이 가능함을 보였지만, 양자얽힘이 아닌 다른 설명, 즉 아인슈타인의 직관에 보다 일치하는 설명으로도 그 실험결과를 해석가능한 여지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스펙트의 실험에서는 측정장치 자체가 한 입자의 정보를 다른 입자에 전달했고 따라서 두 입자 사이에 상관관계가 발생했다는 설명이 가능했습니다.

가장 까다로운 문제는 바로 “실험장치의 독립성”입니다. 나와 자일링거, 앨런 H. 거스, 앤드류 S. 프리드먼, 그리고 제이슨 갈리치오는 피지컬 리뷰 레터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험을 제안하는 논문을 실었습니다.

어떤 얽힘실험에서도 연구자는 자신이 어떤 측정기준을 선택할지를 – 예를 들어 입자의 스핀을 어느 방향으로 측정할지와 같은 – 결정해야 합니다. “실험장치의 독립성”문제란 곧, 연구자는 자신의 측정기준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의 선택에 있어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과거의 어떤 원인에 의해 연구자의 측정기준이 정해져 있거나, 또는 한 측정기준이 다른 기준보다 더 높은 확률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두 입자 사이의 상관관계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미묘한 상관관계를 가정함으로써 우리는 양자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지금까지의 실험결과를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이 설명이 맞다면 양자얽힘은 그저 환상일 뿐인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물론 우리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려 한 것은 아닙니다. 그 대신 우리는 다른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얽힘실험에서 연구자가 측정기준을 선택 하지 않고,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빛이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주 먼 퀘이서에서 오는 빛이 홀수 마이크로초에 오는지 짝수 마이크로초에 오는지를 보았지요.) 이 빛은 수십억년 전에 출발했고, 또 우리가 측정한 그 순간이 되어서야 지구에 도착한 빛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적어도 측정기준에 어떤 인과관계나 편향이 있다면, 그것이 적어도 140억년 전 빅뱅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할 것임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가 우리가 예상하는 것처럼 양자이론과 일치한다면, 우리는 양자이론이 아닌 다른 대안들에 대해 더 엄밀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게 됩니다. 만약 결과가 다르다면, 우리는 새로운 물리학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되겠지요.

어떤 경우이든, 이 실험은 벨의 논문 50주년을 기념하기에 적절한 흥미로운 실험이 될겁니다.

(뉴욕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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