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 세계에 돈과 이윤이 몰려있고 다른 쪽 세계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이런 체제는 끝나야 합니다.” 세계 최대 초콜릿 제조업체 배리샐라보의 회장 안드레아 야콥의 말입니다. “가난한 농부를 무한정 착취하고 있을 순 없어요. 농부에게 품격있는 삶을 줘야 합니다. 5천만 명에 달하는 코코아 농부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다국적 소매업체 유니레버의 CEO 폴 폴만의 말입니다.
이 두 사람은 시민단체나 인권단체 활동가가 아닙니다. 굴지의 기업가 대표가 코코아 소작농의 삶을 걱정하는 게 사뭇 이상해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당장 초콜릿 산업이 처한 현실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코코아 생산은 여전히 후진적인 플랜테이션 방식에 머물러 있고, 그 때문에 초콜릿 노동자와 다국적 기업 모두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5년째 초콜릿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습니다.
“코코아 원료 없이는 초콜릿을 만드는 게 불가능해요. 원료 부족 사태가 초콜릿 산업에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배리 샐라보 CEO 쥐르겐 스타인만의 걱정입니다.
코코아 원료 가격이 매년 50% 가까이 오르자, 미국 최대 초콜릿 회사인 허쉬 사는 지난 여름 상품 가격을 8% 인상했습니다. 스니커즈와 M&M로 유명한 경쟁사 마스도 평균 7% 가격을 올렸습니다. 몬델레즈 같은 유명 과자 회사는 올해 2/4분기 유럽 지역 수익이 1.9% 떨어졌고 다른 유통회사들은 가격 상승에 항의하며 관련 초콜릿 상품 판매를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코코아 원료 부족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컨설팅 회사 KPMG의 존 앤드루 모리스는 “2020년까지 코코아 수요량이 공급량보다 1백만 톤 이상 초과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2013년-2014년 전 세계 초콜릿 생산량이 4백10만 톤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이 부족분은 엄청난 양입니다. 신흥 경제 개발 국가에서 초콜릿 소비가 늘어난 게 주요 원인입니다. 골드만 삭스의 다미엔 쿠발랭은 2020년이 되면 이 신흥 시장의 초콜릿 제품 수요가 선진국 시장을 능가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대표적인 신흥 시장인 브라질 하나만 봐도, 2017년이 되면 초콜릿 수요가 18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미국 시장 전체와 비슷한 규모입니다. 중국에서 초콜릿 수요는 매년 6.8% 성장하고 있습니다. 코코아 생산을 7% 늘리려면, 농부는 63만8210 헥타르에 달하는 땅을 더 경작해야 합니다. 이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네덜란드 바게닝겐 대학 디쿠이젠 알트 교수는 “향후 40년 간 예상 식량 수요량는 지난 8천 년 동안 인류가 생산한 식량을 모두 합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계 식량 소비량은 2050년 두 배로 커지고, 그 성장분의 90%는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차지합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농지는 점점 부족해지고 희소해지고 있습니다. 가격 상승이 불가피합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세계 코코아 생산의 90% 가까이를 맡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왜 초콜릿 대기업 경영자들이 소작농의 삶을 걱정하는 지, 왜 그들이 계속 코코아 농장을 지키기를 바라는 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 초콜릿 생산의 55%를 담당하고 있는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와 가나에선 벌써 농부 수천 명이 코코아 나무를 없애고 대신 고무 나무를 심었습니다. 코코아를 경작하면 1헥타르당 연간 수입이 1천525 유로에 불과하지만, 같은 땅에 고무나무를 심으면 연 수입이 5천800 유로로 뜁니다. 게다가 코코아 농장 1헥타르를 관리하는데 농부 3명이 필요하지만, 고무나무 농장 3헥타르를 관리하고 수확하는 데는 농부 한 명만 있으면 됩니다. 계산이 간단히 나옵니다.
이 모순을 해결할 방법은 코코아 산업을 현대화시키는 것입니다. “엄청난 낭비이자 진짜 자살 행위입니다.” 아이보리코스트 국제 코코아 협회(ICI) 조직부장 로발레 카고히는 탄식합니다. 그는 코코아 노동자의 근로 조건과 임금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코코아 농업이 코트디부아르 경제에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코코아 농부 수입은 너무 적습니다. 또 코코아 농장 인부 가운데 35만 명은 어린이 입니다. 농부들은 아직도 낫이나 칼 같은 것으로 경작을 합니다. 50년이 지나도록 변한 게 없습니다……”
농부는 대개 물도 전기도 없는 판자 오두막에서 살고 누더기 옷을 입은 아이가 일을 돕습니다. 이런 후진적 농업 방식이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주변에 나무가 다 없어졌습니다. 한 때 이 곳은 코끼리와 침팬치가 놀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나무가 다 베어졌지요. 그러자 침식이 진행됐고 경작 가능한 땅이 홍수로 사라졌습니다.” 초콜릿 기업 배리 샐라보의 산 페드로 지역 감독관인 쿠아됴 고란의 설명입니다.
젊은 세대가 코코아 경작을 포기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젊은이는 부모 세대처럼 가난하게 살기 보다는 도시로 나가 살기를 바랍니다” 가나 코코아 이사회(Cocobod) 집행위원 스테픈 오푸니의 말입니다.
코코아 나무는 대부분 늙고 병들고 관리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시급한 일은 늙은 나무를 어린 것으로 바꾸는 일인데 작업 규모가 엄청납니다. 골드만 삭스 전문가는 “2050년까지 코코아 경작지를 50만 헥타르를 넓혀야 겨우 수요를 맞출 것”이라고 추산합니다. 매년 2억 그루의 코코아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대안은 접붙이기를 하는 것으로 연간 코코아 생산량을 300kg에서 1300kg으로 늘릴 수 있습니다. 배리샐라보 사는 ‘매직 포션’이라고 하는 자연 농법을 개발했습니다. 이 기법은 발효기간을 단축시키고 발효될 때 생기는 20% 가량의 코코아 손실을 막아줍니다. 가나 같은 몇몇 국가에선 무료로 비료를 공급해줍니다. 다국적 초콜릿 대기업은 농부를 훈련시키는 데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배리샐라보 사는 최근 파카보라는 외딴 마을에 30헥타르 규모의 코코아 농업훈련소를 세우고 기술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만 1500명이 여기서 농학을 공부했고 300명이 현장에서 코코아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카카오 관련 과학 기술은 정체돼 있습니다. 옥수수의 경우 1헥타르 당 생산량이 1940년대 500 파운드에서 지금은 3톤으로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코코아의 경우는 80년이 지나도록 400 파운드에 머물러 있습니다. 초콜릿 대기업은 코코아 연구를 위해 투자를 시작했지만, 쉽지 않습니다. 코코아를 구성하는 성분 가운데 겨우 20%만이 화학식이 알려져 있습니다.
상황이 시급해지자, 지난 5월 세계 5대 초콜릿 기업이 모여 “코코아액션”이라고 불리는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이 재단은 농부를 훈련시키고, 코코아 병충해를 치료하고, 코코아 농부의 노동 조건과 삶을 개선시키는 등의 일을 하게 됩니다. 2020년까지 ‘코코아액션’은 40만 명이 넘는 코트디부아르, 가나 농부 를 도울 예정입니다.
“좋은 시도입니다. 하지만 상황을 개선하려면 수혜자가 40만 명이 아니라 400만 명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옥스팸 어메리카’의 조나단 자코비의 조언입니다. 그는 특히 문제의 본질을 강조했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옥스팸(Oxfam) 조사결과 초콜릿 최종 판매가 가운데 겨우 3%만이 코코아 생산 농부 몫으로 돌아갑니다. 이런 형편없는 분배 구조 때문에 농부들은 가난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코트디부아르의 커피&코코아 위원회 집행위원 마산지 투레-리츠는 “농부들이 코코아 산업에서 소외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이 바뀌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돈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라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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