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 과학자, 선교사들이 전 세계 곳곳을 ‘발견’하던 대항해시대, 프랑스 왕정은 1566년 선포한 물랭 칙령(the edict of Moulins)을 통해 국가의 유산은 어떠한 경우에도 양도할 수 없다(inalienability)고 선언했습니다. 국가의 유산에는 탐험가와 선교사들이 선물로 받아온, 또는 훔치거나 약탈해 온 문화재도 포함돼 있습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들어선 공화정도 정치 체제는 바꿨을지 몰라도 이 전통은 고수했죠. 절대로 양도할 수 없는 공공의 재산에는 약탈 문화재가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프랑스로 들어온 문화재는 모두 프랑스의 재산이라는 원칙을 향한 비판이 고조되자, 프랑스 정부도 조금씩 태도를 바꿔왔습니다. 지난 2010년 한국에 (장기 임대 형식으로) 반환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는 이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라고 해서 외규장각 도서처럼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사료나 예술품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네덜란드에서 발굴했던 바다도마뱀 화석이나 알제리 수도 알제 항구를 방어하는 데 쓰던 대포도 프랑스로 흘러들어와 있습니다.
문화재나 역사적 유물을 돌려달라는 요구는 말그대로 곳곳에서 빗발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런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파리 자연사박물관도 최근 법무팀을 신설해 문화재 반환 요구나 이를 둘러싼 논란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발굴하면 표본만 채집해서 가져올 필요 없이 이를 통째로 본국으로 가져왔죠. 하지만 이제는 식물학자도 2010년에 발효된 나고야 협약에 따라 해당 유전 정보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나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표본을 채집하거나 연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서 걸림돌이 되는 건 뭐든지 파괴하고 파헤치던 고고학(archaeology)에 대한 정의가 완전히 새로 내려진 셈이죠.
문화재와 문화유산에 대한 소유권을 둘러싼 포괄적인 논의는 1970년 유네스코 회의에서 처음 시작됐습니다. 당시 회의 결과 각 회원국은 서로의 문화유산에 대한 소유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이 공표됐으며, 불법적인 경로를 통한 문화재 유출, 반입이 금지됐습니다. 다만 회의가 열린 시점 이전에 일어난 도굴, 약탈 등에 대해서는 원칙을 소급 적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 이집트 정부가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테타키(Tetaki) 벽화가 도굴꾼들에게 도난당한 것이라며 반환을 요구했을 때도 루브르 박물관측은 처음에는 문화재가 프랑스로 건너온 것이 1970년 이전이었다고 주장하며 버텼습니다. 이후 테타키 벽화는 1980년경 도굴꾼들에 의해 도난당해 불법적인 경로로 프랑스로 흘러들어간 사실이 밝혀지자 꼬리를 내렸죠. 이어 1995년에는 도난, 약탈 문화재에 대한 국제법 조약이 통과됐습니다. 이 조약은 문화재를 사는 사람이나 박물관 측에도 해당 문화재가 불법으로 발굴되고 유통되는 것이 아닌지를 증명할 책임을 지우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조약을 비준한 나라가 전 세계에 35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프랑스도 아직 이 조약이 의회에서 비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조약은 법원의 판례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문화재와 문화유산에 대한 사고방식이 바뀌면서 국가 뿐 아니라 이 문화를 주창하고 보존해오던 사람에 대해서도 그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8년 공표된 유엔 헌장에는 원주민(indigenous people)의 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보호 의무가 명시돼 있고, 국가가 이런 문화가 파괴될 경우에는 이를 막거나 적절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02년 사르지에 바트만(Saartjie Baartman)의 유물을 원래 고향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반환했습니다. 사르지에 바트만은 1810년 유럽인들이 납치해 호텐토트의 비너스(Hottentot Venus)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회에 세웠던 사람입니다. 2006년 루앙(Rouen) 시 박물관이 소지하고 있던 뉴질랜드 마오리 족의 두상을 루앙 시장이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을 때, 박물관 측과 문화계는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루앙 시장은 의회의 지지를 얻어 뉴질랜드 대사관과 협의를 진행했고 끝내 2011년 문화재를 뉴질랜드에 반환했습니다. 이 문제는 각각의 사례마다 몇 년은 족히 걸릴 만한 논쟁이 뒤따르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원래 주인을 가려내는 것부터 쉽지 않은 경우도 많죠. 하지만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는 물론 프랑스 안에서부터도 바뀌고 있는 건 분명한 추세입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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