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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셔머 칼럼] 영원한 평화

세계 제 1차대전이 벌어진 지 100년이 지난 올해에도 우크라이나, 시리아, 가자에서는 전쟁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사람들은 전쟁이 문명의 필연적인 요소인지를 궁금해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1795년 “영원한 평화”라는 에세이에서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은 전쟁을 하려는 정부를 원치 않을 것이며 그 이유로 “전쟁은 전쟁의 비참함을 국민들에게 안겨주기 때문” 이라고 말했습니다. 칸트의 이 “민주주의 평화 이론”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왔습니다. 1989년, 룻거스 대학의 정치학자 잭 레비는 “전쟁의 이유”라는 에세이에서 “민주국가사이에 전쟁이 없었다는 것은 국제관계에서 실험적인 법칙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회의적인 이들은 그리스와 카르타고의 전쟁, 미국과 영국 사이의 1812년 전쟁, 미국의 남북전쟁,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전쟁을 언급할 겁니다. 누가 옳을까요? 과학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요?

2001 년 정치학자 브로스 러셋과 존 오닐은 자신들의 책 “평화의 삼각구도(Triangulating Peace)”에서 1816년에서 2001년 사이의 2,300개의 군사적 충돌을 회귀모델을 이용해 분석했습니다. 이들은 충돌한 국가의 민주주의 점수를 정치적 과정, 공정한 선거, 권력의 균형과 투명성 등을 평가해 1점에서 10점까지 나누었습니다. 이들은 양 국가의 민주주의 점수가 높을 경우 충돌이 일어날 확률이 줄어드는 반면, 한 국가가 낮은 민주주의 점수를 가지거나 독재정권일 때 그 확률은 올라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칸트는 또한 국가간의 교역이 경제적인 상호의존성을 만들어 전쟁이 일어날 확률을 낮출 것이며, 또 국제사회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더 투명하고 책임감있는 모습을 보이게 됨으로써 분쟁의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러셋과 오닐은 자신들의 모델에 국가간의 교역량을 포함했고 교역량이 늘어났을 때, 그 다음 해 그 국가가 분쟁의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두 국가가 같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기구의 수를 분석에 고려했습니다. 그리고 이 수가 클 수록 전쟁의 가능성이 낮아 진다는 것 역시 발견했습니다. 이들의 책 제목인 삼각구도는 곧 민주주의, 교역, 그리고 국제기구 참여 입니다. 그리고 만약 두 국가가 이 세 분야에 모두 10점을 받는 경우 다른 평균적인 국가에 비해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은 81% 낮아짐을 보였습니다.

이들의 책이 나온 2001년 이후의 세계는 어떨까요? 뉴스는 항상 전쟁의 소식으로 끊이지 않고, 세계 평화는 위기에 처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느낌과 데이터는 다릅니다. 논문집 “평화연구(Journal of Peach Research)”의 2014년 특별호에 실린 웁살라 대학의 허바드 헤그레는 민주국가 사이의 분쟁확률은 그렇지 않은 국가에 비해 낮으며, 같은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서도 민주주의가 잘 지켜지는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더 적은 분쟁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반면 토마스 프리드먼이 맥도널드가 들어간 두 나라는 싸우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만들어낸 “갈등 예방의 황금 아치 이론(Golden Arches Theory of Conflict Prevention)”에 대해서는 두 나라가 모두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경우, 곧 경제적 의존성만으로는 전쟁을 막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모두 설명하는 다른 근본적인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요소들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성이자 우리의 기호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는 이 과정에서 즐겁게 따라오는 부산물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전쟁이 줄어드는 이런 경향은 바람직한 것입니다. 프리덤 하우스의 자료에 따르면, 보편적 참정권이 주어지는 선거민주주의를 가진 국가의 수는 1900년에는 0이었지만 1990년에는 69개로 늘었고 올해 2014년에는 122개에 이릅니다. 이는 전 세계 195개국의 63%에 달합니다. 이것은 정신적인 진보입니다. 물론 나머지 37%에는 핵무기를 원하는 종교 독재 국가들이 있으며 우리는 계속 이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칸트의 책 제목 “영원한 평화”는 자칫 무덤위에 세워진 팻말의 의미를 띄게 될 겁니다. 이성적인 존재들이라면, 그런 영원한 평화를 추구해서는 안되겠지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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