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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國歌)와 스포츠

미국 볼티모어 근처에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볼티모어 항을 방어하기 위해 지어진 맥헨리 요새(Fort McHenry)라는 곳이 있습니다.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일으킨 1812년 전쟁의 후반부였던 1814년 9월 13일, 영국 해군 함대는 볼티모어 항을 공략하기 위해 맥헨리 요새에 포격을 퍼붓습니다. 요새 곳곳이 불에 타고 잿더미가 됐지만, 끝내 미국군은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워싱턴DC 출신의 변호사이자 시인(詩人)이기도 했던 프란시스 키(Francis Scott Key)는 초토화된 요새 성벽 위에서 쓰러지지 않고 펄럭이고 있는 미국군의 별이 박힌 깃발을 보고 감격에 차 시를 씁니다. “맥헨리 요새를 수호하다(The Defense of Fort McHenry)”로 이름붙여진 시 구절은 지금의 미국 국가(國歌, The Star-Spangled Banner)의 가사가 됩니다.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유별난 편인 미국에서도 일상에서 국가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 미국에서 군인 말고 민간인들이 국가를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곳은 바로 야구장이나 미식축구장 등 스포츠 경기장입니다. 오죽하면 국가의 마지막 가사 두 마디가 “경기 시작!(Play Ball)”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죠. “The Star-Spangled Banner”는 1931년에 의회의 비준을 받아 정식 국가가 되었는데, 야구장에서는 이보다 훨씬 앞선 1862년부터 연주됐습니다.

1931년 이전에는 사실 “The Star-Spangled Banner” 곡을 비롯해 국가에 버금가는 곡들이 야구장에서도 번갈아 연주되곤 했는데, “The Star-Spangled Banner”가 국가로 뽑힌 결정적인 일이 일어난 것도 야구장이었습니다. 세계 1차대전 막바지에 열린 1918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다투던 두 팀은 보스톤 레드삭스와 시카고 컵스였습니다. 1차전 7회 스트레칭 타임에 악단이 “The Star-Spangled Banner”를 연주하자 군인으로 복무하다 월드시리즈에 맞춰 휴가를 내고 경기에 참가하고 있던 레드삭스의 3루수 토마스(Fred Thomas)가 성조기를 향해 거수경례를 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손을 가슴 위에 얹고 경건한 표정으로 노래를 듣습니다.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호응을 얻었고, 2차대전을 지나며 아예 스포츠 경기의 의식으로 굳어집니다.

미국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국가를 자기 스타일에 맞춰 바꿔 불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수들이 야구장이나 슈퍼볼이 열리는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목청을 뽐내거나 지나치게 흥에 취해 노래를 고무줄처럼 늘여 부르곤 합니다. 원래 곡의 템포대로라면 후렴구의 뒷부분 가사인 “the home of the brave” 부분까지 2분 정도에 도달해야 합니다. 지난해 슈퍼볼에서 국가를 부른 알리샤 키스(Alicia Keys)는 후렴구까지 가는 데 무려 2분 36초가 걸렸습니다.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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