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슬로워크
토니 라루사(Tona La Russa). 1979년부터 2011년까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그리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감독을 지낸 메이저리그의 명장입니다. 라루사 감독이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새로운 개념 가운데 하나가 바로 효과적인 불펜 활용법입니다. 15개 안팎의 많지 않은 투구를 던지고 재빨리 다음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기는 형식의 불펜 운용은 이후 모든 팀들에 퍼졌습니다. 타자별로 맞춤형 천적 투수를 올리거나 왼손 타자에게는 왼손 투수를, 오른손 타자에게는 오른손 투수를 대응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원포인트 릴리프(one-point relief) 개념도 라루사 감독의 불펜 운용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류의 문제 가운데 하나겠지만, 선발투수가 100개를 훌쩍 넘는 공을 던지며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는 날이 갈수록 희귀해지면서 구원투수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반대로 구원투수가 효과적으로 상대 타선을 봉쇄하자 선발투수를 혹사시키지 않고 정해진 투구수를 채우면 마운드를 넘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메이저리그 야구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 레퍼런스 닷컴에 있는 1964년부터 올 시즌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불펜의 진화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모았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한 경기당 등판하는 (마무리투수를 포함한) 구원투수의 숫자 변화입니다. 1964년에는 선발투수를 제외하면 팀당 평균 1.58명의 투수가 경기를 책임졌습니다. 이 숫자는 올 시즌 2.92명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반면 구원투수가 책임지는 이닝은 1964년 2.64이닝에서 올 시즌 3이닝으로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즉, 투수 한 명이 경기당 책임지는 이닝이 줄어들었다는 뜻이죠. 어떤 유형의 투수가 구원투수에 적합한지와 관련해서도 한 가지 두드러지는 사실이 있습니다. 시속 95마일(152km)을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는, 흔히 파이어볼러(fireballer)라 불리는 투수들이 점점 불펜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구원투수는 분명 기록상으로 선발투수보다 점수를 덜 내주고 있습니다. 타격의 종합 지표라 할 수 있는 OPS+를 기준으로 봤을 때 구원투수를 상대로 한 타자들의 OPS+는 1964년에 103이었던 것이 올 시즌에는 94까지 떨어진 반면, 선발투수를 상대로 기록한 OPS+는 좀처럼 100 이하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1990년대 이후로 타자들은 구원투수를 상대로 점수를 뽑는 데 애를 먹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불펜의 진화는 투수의 효과적인 분업 체계의 정착 덕분에 가능해졌습니다. 이닝이터 유형의 선발투수와 달리 경기 중간에 나와 강속구를 뿌리며 상대 타선의 흐름을 끊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투수들이 가진 능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죠.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구속에서 만큼은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신시내티 레즈의 채프먼(Aroldis Chapman) 선수를 선발 투수로 쓰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시속 160키로미터를 넘나드는 엄청난 강속구를 경기 막판에 뿌려대는 마무리 역할을 맡기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관리를 받으며 투수로 성장하는 유망주들이 많아지고, 토미존 수술을 비롯해 과거에는 받기 어려웠던 의학적 지원도 훨씬 쉽게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강속구 투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고, 그만큼 투수의 분업과 불펜의 진화 추세도 당분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FiveThirty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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