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단임으로 4년 동안 대통령을 지낸 아버지 부시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전 대통령 중 클린턴을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인기도 1위를 달리고 있죠. HBO와 PBS에서는 우호적인 다큐멘터리를 잇달아 내놨고, 조지 W. 부시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 어린 회고록을 썼습니다. 얼마 전 그가 90번째 생일을 맞이했을 때는 CIA, 해군,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대대적인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올해 5월엔 케네디도서관이 1990년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를 상대로 증세안을 타결한 업적을 칭송하며 부시 전 대통령에게 상을 수여하기도 했죠. 증세는 절대 없다는 공약을 파기한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정치적 향수라는 것은 아주 복잡한 개념입니다. 집단적 기억은 종종 흐릿하기 마련이죠. 1992년에 재선을 앞둔 부시는 증세가 실수였다고 고백했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사람들이 현역시절 비난했던 정치인을 이후에 추켜올릴 때는 사람들이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누구든 아흔 살이 되면 살아서 소식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의 애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부시 붐”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고, 오늘날 미국 정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부시의 어색하지만, 진실성이 묻어나는 캐릭터는 여론조사와 텔레프롬터로 대표되는 매끄러운 정치판에 염증을 느낀 오늘날의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는 구석이 있죠.
당파적 시대에 부시 전 대통령은 양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정책을 폈습니다. 일례로 그가 걸프전 당시에 취한 신속하고도 제한적인 조치에 대해서 우파는 왜 바그다드까지 밀고 들어가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지 않았느냐고 항의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는 감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보수와 민주당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부시는 “저는 그다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물밑에서 통일 독일에 대한 러시아의 동의를 조용히 구하고 있었죠. 오늘날 그가 바그다드를 점령하지 않았다고 탓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외교 전문가들은 부시와 같은 억센 현실주의자를 애타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일견 아들 부시의 경솔함에 대한 반작용이지만, 동시에 오바마 외교 정책의 우유부단함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외교 분야 말고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가족 단위 이민과 숙련 노동자의 이민을 장려하면서도 “마약과의 전쟁” 명분으로 많은 외국인을 송환했죠. 정부 지출에는 인색하면서도 공공 서비스 수호에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시는 22년 전 클린턴과 보수 및 포퓰리스트 진영의 비난 사이에서 재선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다시금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오늘날 미국 정치판에 부시 전 대통령과 비슷한 인물이 등장한다면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어려울 겁니다. 우습지만 그 이유는 오늘날의 공화당이 그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정치적 피를 물려받은 전 플로리다 주지사 젭 부시를 예로 들어봅시다. 이른바 주류 보수는 그를 2016년 대선 주자로 생각하고 있지만, 점차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교조적 보수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민, 교육 정책 등에 대한 젭 부시의 중도 노선을 혐오합니다. 때문에 젭 부시가 대선 주자로 나서게 된다면 상당한 소모가 예상됩니다. 2012년의 미트 롬니도 비슷한 시련을 겪었죠.
지금 부시 전 대통령을 추켜세우고 있는 공화당전국위원회, CIA, 유명 TV 채널, 케네디 일가는 모두 이런 보수의 불신과 미움을 한몸에 사고 있는 대상입니다. 오히려 아버지 부시와 가장 비슷한 사람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일지도 모릅니다. 모범생 스타일의 실용주의자인데다, 외교 정책에서는 현실주의자죠. 하지만 클린턴도 정작 선거에 나서게 되면 민주당 내 좌파 세력에 의해 어떤 지점에서는 타협을 해야 할 겁니다. 이처럼 오늘날 미국 정치판은 구조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중도주의자들이 재계와 공공부문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양 당 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아버지 부시에 대한 향수는 포퓰리즘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예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것과, 그 비슷한 대통령을 다시 선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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