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포함해 숙주에 붙어 질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의 역사는 생명체의 역사만큼이나 깁니다. 인간 말고도 기생충과 생사를 건 사투를 벌이는 동물 종들도 많습니다. 고릴라나 침팬지 등 영장류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에볼라 바이러스나 폐렴에 엄청난 타격을 받았습니다. 호주의 한 지역에서는 코알라 개체의 90%가 클라미디아(chlamydia)라는 일종의 성병(sexually transmitted disease)에 걸려있기도 하고, 전 세계 개구리의 1/3은 호산균(chytrid)이 일으키는 전염병인 호산병(Chytridiomycosis) 가운데서도 특히 Batrachochytrium dendrobatidis라는 균이 일으킨 병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기생충은 병을 옮기는 데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습니다. 인류가 의학을 발전시켜온 데 못지 않게 동물도 나름대로 갖가지 방어책을 마련해 왔습니다.
연어의 비늘에만 달라붙는 이(louse)가 있습니다. 다른 플랑크톤과 함께 바다를 떠다니는 이 벼룩 같은 기생충은 연어에 달라붙어 번식하며 연어를 죽이기도 합니다. 연어의 대응책은 청소 물고기를 부르는 것입니다. 주로 양놀래기(wrasse) 과의 물고기들이 연어의 비늘에 있는 벼룩을 비롯한 기생충들을 먹이로 먹고 사는데, 연어는 기생충을 제거하고 청소 물고기들은 먹이를 얻는 공생 관계를 형성한 것이죠. 1990년대 초 노르웨이 수산과학원은 청소 물고기를 양식장에 충분히 풀어놓으면 연어가 병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양놀래기 과 물고기 한 마리가 연어 100마리에 붙어있는 이를 먹어치울 만큼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집 생활을 하는 개미들을 보면 전체가 마치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나 소우주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개미들은 무리의 개미가 죽으면 사체를 무리 밖으로 옮겨놓습니다. 아직 정확히 죽은 개미의 사체에서 어떤 해로운 균이 자라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과학자들은 개미가 사체를 옮기는 이유는 전체 군락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최근 실험에서 붉은 개미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 집단은 자연에서 하듯 사체를 무리 밖으로 옮겨다 버릴 수 있도록 놔두었고 다른 집단은 반대로 이를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 결과 사체를 옮기지 못한 집단에 속한 개미의 생존율이 훨씬 떨어졌습니다. 개미들은 무리 밖으로 사체를 옮기지 못하자, 일종의 대안으로 한쪽 구석에 사체를 쌓아놓고 그 근처를 가능한 한 지나치지 않았으며, 특히 어린 개미와 유충들은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단속을 했습니다.
동물들은 이처럼 청소 물고기를 부르거나 사체를 멀리 내다 버려 기생충을 제거하는 법을 진화를 통해 체득했습니다.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보호색을 발달시킨 것과 넓게 보면 같은 기제인 셈입니다. 이가 없는데도 서로의 이를 잡아주기 위해 털을 골라주는 원숭이들의 습성, 사자나 치타 등 큰 고양이과 맹수들이 서로를 핥아주는 것도 아마 병에 걸리거나 퍼지는 걸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에 익힌 진화의 산물일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인간도 동물처럼 진화를 통해 기생충과 질병에 더 잘 맞설 수 있는 항체를 만들고 습성을 몸에 익혔으리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케임브리지대학 연구팀이 이집트 미라에 화석으로 남은 기생충들의 흔적을 찾은 결과 창자에 기생하는 요충(threadworms)이나 간, 쓸개에 기생하며 병을 일으키는 간 디스토마(liver fluke) 등이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최근 진화의 속도보다 빠르게 약과 치료를 통해 기생충을 제거하는 법을 개발하고 적용해 왔습니다. 박테리아를 잡아내는 항생제, 약, 자외선 치료에 이르기까지 방법도 다양합니다. 문제는 이런 방법이 몸에 해로운 균 뿐 아니라 이로운 박테리아까지 함께 제거해버려 오히려 우리 몸을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박테리아, 기생충, 질병과의 싸움은 아마도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때로는 동물들이 진화를 통해 체득한 방법에서 인류가 배울 것은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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