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말레이시아항공 소속의 MH17 여객기가 반군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지대공미사일에 격추된 뒤 많은 의문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사실상 교전지역이나 다름없는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 위를 민간 여객기가 지나간 것 자체가 너무 무모한 선택 아니었냐는 것이었습니다. MH17 여객기 사고 이후 우크라이나 상공의 항로를 이용하는 민간 항공기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사고 이전에는 어땠을까요?
만의 하나 있을 사고 위험 때문에 우회 항로를 택하면 이동거리가 늘어나는 만큼, 연료도 더 쓰게 됩니다. 항공사들은 항로상에 위험 요소가 거의 없다고 판단하면 그 항로를 이용합니다. 분쟁 지역이라고 해도 민항기가 다니는 항로가 반드시 위험한 건 아닙니다. 실제로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도 아프가니스탄 상공에는 민간 여객기들이 별 탈없이 오갔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L980 항로 역시 말레이시아항공 외에도 유럽과 동남아시아의 주요 도시들을 오가는 여러 민간 항공사들이 이용하던 항로입니다.
물론 최근의 리비아나 과거 이라크처럼 군사작전을 위해 모든 비행기들의 진입을 금지하는 비행 금지구역이 선포되기도 합니다. 또한 유엔 산하기구인 국제민간항공기구(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sation)나 각국의 항공 당국이 위험지역에 대해 각 항공사에 사전에 고지를 하기도 합니다. 이를 ‘항공 정보(NOTAM, Notice to Airmen)’라고 하는데, 최근의 항공 정보는 우크라이나 동쪽 지역에 대해 공군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으니, (민간 여객기는) 고도 32,000피트 이하로 운항하지 말라고 지적했습니다. 사고 당시 MH17기의 운항 고도는 33,000피트였습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몇 주 동안 해당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 수송기나 헬리콥터가 격추된 적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또한 MH17기가 악천후를 피해 항로에서 북쪽으로 조금 이탈한 것도 사실이지만, 당시 MH17기가 운항하고 있던 고도는 민간 여객기들이 이용하도록 국제적으로 약속된 고도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상공을 우회하지 않은 것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 이상 안전수칙을 어겼다고 보기 어렵지만, 누군가의 실수 또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이런 참사가 일어난 겁니다. 이스라엘 국적기인 엘알항공사(El Al)는 모든 비행기에 미사일 레이더망의 목표물로 조준이 되는 경우 이를 감지하는 장치를 달고 다닙니다. 이번 사건으로 항공업계가 충격에 빠지긴 했지만, 엘알항공사와 같은 안전장비를 너도나도 도입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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