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도 익명성을 누릴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흉악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는 판결이 영국에서 항소법원에서 나왔습니다. 앤드루 콜은 지난 1996년 5월, 전 여자친구와 그 애인을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휘발유와 성냥, 부엌칼, 장갑, 밧줄 등을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 범죄였고 이별을 고한 전 여자친구를 무려 52차례, 그녀의 새 애인을 38차례나 찌른 끔찍한 범죄였죠. 콜은 자신이 정신병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으니, 언론과 대중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수감 중 정신병 판정을 받은 후 보안이 느슨한 치료 시설로 이감되었고, 마침내는 동행없는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자 익명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심에서 패소한 콜이 항소했으나, 항소 법원도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죠.
항소심에서 콜의 변호인은 범죄를 저지른 정신병 환자의 경우, 신분이 노출될 경우 언론의 괴롭힘 등으로 치료에 지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익명성을 보장받는다며, 그가 저지른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범죄인지와는 관계없이 그도 정신질환자로서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형기를 마친 범죄자가 언론으로부터 생활을 침해당하거나 신체적인 위협을 당할 가능성 등이 익명권 주장에서 고려되어야 할 사항임은 분명하나, 콜이 처하게 될 상황은 악명높은 살인자나 성범죄자가 풀려났을 때 처하게 되는 일반적인 상황보다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없으며, 이는 그의 정신병 유무와 관계없다고 판결했습니다.
판결이 난 후 크리스 그레일링(Chris Grayling) 법무장관은 이번 사건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이라면서, 모든 익명권 관련 재판에서는 해당 사례의 개별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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