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기억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반복 학습을 합니다. 연습이 완벽함을 만든다(Practice makes perfect)는 속담이 의미하듯, 완벽함을 위해서는 연습을 반복하는 일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학습과 기억(Learning and Memory)이란 학술지에 발표된 한 연구는 이 같은 통념이 모든 상황에서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반복되는 학습이 세부사항을 기억하는 능력에는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의 신경생물학자 자크(Zach Reagh)와 마이클(Michael Yassa)은 피실험인들에게 여러 가지 사물에 대한 사진을 보여준 뒤, 이것에 대한 기억력을 시험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가) 실험군에는 원 이미지들을 반복해서 보여주었고, (나) 대조군에는 원 이미지들을 단 한 번만 보여줬습니다. 이어진 기억력 시험 과정에서 자크와 마이클은 피실험인들에게 아주 비슷하지만, 세부사항이 조금씩 다른 ‘미끼’ 이미지들을 원 이미지들과 섞어서 보여줬고, 이들로 하여금 이 둘을 구분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오직 한 차례만 원 이미지를 볼 수 있었던 (나) 대조군과 달리, 반복해서 원 이미지를 학습할 수 있었던 (가) 실험군에서 이미지 식별 성공률이 훨씬 낮게 나타났습니다. 반복 학습이 기억력을 높여줄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반복해서 원 이미지를 학습했던 실험군이 ‘미끼’ 이미지를 원 이미지로 오인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았던 것입니다.
이는 자크와 마이클이 주창한 경쟁적 기록(competitive trace) 이론을 뒷받침하는 결과입니다. 경쟁적 기록 이론에서, 자크와 마이클은 반복되는 학습이 매 순간 비슷하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 기억의 조각들을 생산하고, 이것들이 기억의 인출 과정에서 상호 경쟁하게 됨으로써 세부 사항에 대한 정보는 사라지고 반복적으로 중첩되는 주요 특징들만이 기억 속에 남는다고 주장합니다. 자크와 마이클은 같은 대상을 보고도 제각기 다른 기억의 조각들이 생산되는 이유는 기억절차가 학습자의 감정 상태, 관심과 집중의 정도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결국, 경쟁적 기록 이론으로는 반복적으로 학습했던 (가) 실험군에서 이미지 식별 성공률이 오히려 낮게 나타났던 이유는 매시간 조금씩 다르게 형성된 기억의 조각들이 상호 경쟁적으로 인출되며 세세한 정보가 유실되었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결과가 반복 학습의 효용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연구 결과들은 여전히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반복 학습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지지하고 있으니까요. 자크와 마이클의 실험결과가 던지는 메시지는 보다 세밀한 정보의 진위 여부를 다투는 분야로 향합니다. 법정에서 반복되는 목격자 증언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궁극적으로, 자크와 마이클의 연구 결과는 기억이 뇌세포에 고정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억은 오히려 우리의 의도나 자각에는 상관없이 스스로 변태를 거듭하는 불완전한 생명체에 가깝습니다. (the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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