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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전성기 맞이하는 전통적인 산업들

일반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술의 변화에 덜 민감할 것 같은 로펌이나 대학들도 기술이 주도하는 세계화 시대에 생존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의 시대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전통적인 산업이 있습니다. 스위스 시계, 몽블랑 만년필, 해리스 트위드(Harris Tweed) 자켓, 그리고 구형의 돛단배가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경영 전문가들은 사람들에게 파괴적인 혁신 트렌드를 잘 따라가야 한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몇몇 기업들은 정확히 그 반대로 행동해 왔습니다. 즉, 전통적인 기술과 사업 모델을 지키거나 되살린 거죠. 라이언 라파엘리(Ryan Raffaelli)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재조명을 받은 기술들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가장 놀라운 예는 스위스 기계식 손목시계였습니다. 1970년대에 스위스 기계식 손목시계는 더 값싸고 정확한  디지털 시계에 밀려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계식 손목시계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번창하고 있으며 제약과 기계 다음으로 스위스의 대표적인 수출품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공을 이끌고 있는 주역은 태엽을 감아서 작동시키는 시계입니다.

이렇게 재조명을 받는 산업의 사례는 많습니다. 1950년대에 만년필 매출은 값싼 볼펜이 등장하면서 폭락했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만년필 매출은 꾸준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차(trams) 역시 샌프란시스코나 뉴올리언스와 같은 도시에서 한때는 관광객들이나 찾는 것으로 전락했지만, 오늘날 미국에서만 30여 개 도시가 새로운 전차 시스템을 도입했거나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20세기 초에 가장 빨리 전차 시스템을 폐기했던 도시들인 디트로이트와 로스앤젤레스가 다시 전차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1993년에는 매출이 거의 사라졌던 엘피판이 2013년에는 6백만 장이라는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독립 서점의 숫자 역시 몇십 년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무수한 혁신이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이런 산업들은 어떻게 예전 기술들을 되살려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일까요? 라파엘리 교수는 성공의 핵심은 상품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스위스 시계 산업은 기계식 손목시계를 시간을 알려주는 제품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제품으로 재규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디지털 시계에 비해서 제작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점이 기계식 손목시계에 대한 가치를 높였습니다. 독립 서점들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도심의 전차는 환경 오염과 난개발에 대한 친환경 해결책으로 재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산업의 가치를 재규명하는 것은 전통과 변화 사이에 조심스럽게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요구합니다. 전통적인 기술을 소생시키려는 기업들은 제품을 생산하는 장인들이나 고객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왜냐면 이 관계를 통해서 장인과 고객이 단순히 고용인이나 물건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전통의 가치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기계식 시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경매에서 높은 가격을 지불하면서 구매를 했고, 기술을 가진 장인이 전통적인 제조 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기술을 되살리려는 기업들 역시 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니콜라스 하이에크(Nicholas Hayek)과 언스트 톰케(Ernst Thomke)는 하락세에 있었던 몇 개 기업들을 인수 합병해서 강력한 스와치 그룹(Swatch Group)으로 끌어들이면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 950억 달러 매출을 올린 스와치 그룹은 처음에 스와치(Swatches)를 인수하면서 스위스 시계가 패션 아이템이라고 재정의했고, 브레게(Breguet)나 블랑팡(Blancpain), 오메가(Omega)와 같은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스위스 시계를 명품 아이템으로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기업들의 사례는 우리가 파괴적인 혁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함의를 던져줍니다. 새로운 기술은 단순히 예전 기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돛단배나 종이책과 같은 제품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계속 있을 것이며 스위스 시계와 같은 제품은 그 가치를 새롭게 규정할 수 있습니다. 또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기 때문에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적인 만족감 때문에 혹은 제품 구매 자체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에 물건을 삽니다. 이는 하나의 모순이기도 합니다. 즉 인터넷과 같은 파괴적인 혁신이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증가시킬수록 양보다는 전통과 품질에 중점을 두는 전통적인 산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앞으로 나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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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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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산업들을 살리는 길은 결국 이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독립 서점들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도심의 전차는 환경 오염과 난개발에 대한 친환경 해결책으로 재부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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