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를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행위가 만연하면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조세피난처에 자산을 빼돌리고, 개인들은 소득내역의 일부를 고의로 누락합니다. 한 통계 자료는 조세망을 빠져나간 자산의 총액이 미국에서는 400조 이상, 영국에서는 70조 이상이 될 것이라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납세 부조리 문제를 혁파하기 위해서, 정부는 회계감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위반자에 대해 벌금형을 부과하며, 부가세와 같이 회피가 쉽지 않은 세목들을 설정해왔습니다. 소위, 당근과 채찍질을 병행하는 전략인 셈이죠. 행동 경제학자들은 이외에도 납세 순응(Tax Compliance)을 촉진하기 위한 한 가지 방안이 더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심리적 환기(Psychological Nudge)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행동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심리적 환기란 납세를 강제하지 않고 관련된 심리 혹은 감정 요인만을 자극하여 자발적으로 납세 순응률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일찍이 에너지 절약이나 노후대비 촉진 운동에서 널리 사용된 것처럼, 충실한 납세 행위를 애국심 혹은 시민의 책무와 연관시키거나, 탈세 행위를 비도덕적 행동 혹은 죄책감과 연결시키는 방법인 것이죠. 행동 경제학자들은 심리적 환기는 세수 증대에 도움이 되면서도 납세 집행과 관련된 행정비용을 동시에 아낄 수 있는 일석 이조의 방법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미경제조사회(National Bureau of Economics Research)에 발표된 한 연구는 심리적 환기 기법을 통해 납세 순응률이 향상될 여지가 있음을 증명해보였습니다. 세금체납자 10만명을 대상으로 행해진 실험에서, 연구원들은 4개의 실험군에 각기 다른 납세 고지서를 배부 한 뒤 납세 순응률에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A실험군에는 표준문안으로 작성된 납세고지서가, B실험군에는 “90%의 납세자들이 기한내에 납부의무를 이행하고 있다.”라는 문구가, C 실험군에는 “체납자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문구가, D실험군에는 “납부된 세금은 의료보험이나 도로 건설 및 유지 보수에 사용될 예정입니다.”라는 문구가 추가된 고지서가 배부되었습니다. 그 결과, B,C,D 실험군 모두에서 납세 순응률이 상승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구체적으로, B와 D실험군의 경우 납세 순응률이1.3%~2.1% 상승했고, C실험군에서의 상승률은 5.1%에 이르렀습니다. 심리적 환기 효과를 지니는 문구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납세 순응률이 꽤 상승하는 결과가 도출된 것입니다.
조세 체계에서 납세자들간의 형평성 조율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조세 체계를 무한정 조밀하게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수반되는 막대한 행정비용이 조세 수입보다 많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심리적 환기 기법은 행정가들에게 아주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행정비용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만족스런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세 제도와 납세 집행 과정 역시 인간의 심리와 행동 체계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유념해야겠습니다. (The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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